부산 극단새벽의 외골수 연출가 이성민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처럼 부산경남에서 오랫동안 선보였던 1인극 <어머니 날 낳으시고>(작/연출 이성민, 출연 변현주)를 서울 대학로 판에 올렸다. ‘극단 새벽 창단 25주년 레퍼토리 순회 - 서울지역공연’이다. 서울서 초연하고 지역을 양념처럼 순회하는 고정 레퍼토리를 뒤집었다.
배우 변현주의 1인극 <어머니 날 낳으시고>는 다음달 8일(목) 저녁 8시 대학로 ‘소극장 축제’에서 시연을 시작으로 오는 11월 1일까지 매주 목(20시), 금(20시), 토(16시, 17시30분), 일요일(15시)에 공연한다. <어머니...>는 지난 96년 이 땅의 어머니와 딸들을 위해 배우 윤명숙의 1인극으로 출발해 그 해 국제연극평단이 뽑은 ‘올해의 좋은 연극상’을 받았다.
평론가 김문홍은 “연극은 텍스트로 남아 다시 무대에 오를 날을 기다린다. 2007년 6월 아까운 나이로 타계한 극단 새벽의 1세대 배우 윤명숙이 그렇고, 그녀의 간판 레퍼토리 <어머니...>가 그렇다”고 했다. 김문홍은 지난해 겨울 윤명숙의 후배 변현주가 다시 무대에 올린 <어머니...>를 보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자식을 두고 눈을 감은 배우 윤명숙을 그리며 눈시울을 훔쳤다”고 했다. 윤명숙에 버금가는 순발력과 감수성으로 1인 9역을 너끈히 소화해 내는 변현주의 내공도 내공이려니와 12년 전 초연 당시의 감동에 주눅 들었다.
내달 8일부터 대학로 소극장 ‘축제’에서
<어머니...>는 일란성 쌍둥이 영란, 정란 두 자매의 회고로 가부장제 아래 살다 간, 혹은 살고 있는 이 땅 여성의 삶을 그린다. 언니 영란이 발표한 ‘어머니 날 낳으시고’라는 소설이 신인문학상을 받은 뒤 여성지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시작한다. <어머니...>는 1인칭 화자의 눈으로 다른 역을 연기하는 기존의 1인극과 달리 쌍둥이 자매인 영란, 정란을 교차하면서 9명의 인물을 소화하는 ‘인칭 교차극’이다. 새벽종이 울리면 일어나야 했던 70년대 달동네와 철거민, 80년대 산업 노동자들의 속살까지 드러냈다.
극단 새벽은 서울에 공연만 들고 온 게 아니다. 상업주의 연극운동 판을 바꿀 ‘소극장 네트워크’ 기획도 화두로 던졌다. 대형화된 상업 연예기획사와 재벌을 낀 전주(錢主)들이 깔아 놓은 판돈 위에서 춤추는 가수도 배우도 아닌 탤런트(재능)없는 탤런트(연예인)들의 야바위판이 된 연극운동에 맞설 참신한 기획도 가져왔다. 여전히 ‘현실의 문제’에 착목해 상업주의 제작유통방식이 아닌 독립제작방식으로 ‘유통’을 넘어 ‘소통’을 위해, 관객을 소비자가 아닌 ‘수용자’로 세우는 ‘소극장 네트워크’라는 대안을 내민다.
상업연극 판갈이 할 야심찬 논쟁꺼리도
상업주의 연극의 메카가 된 대학로에서 새벽이 사회성 짙은 작품을 내걸자 주위에서 염려의 목소리부터 커진다. 그러나 대학로의 극단 오늘의 소극장 ‘축제’ 대표인 연출가 위성신과 부산의 극단 새벽의 외골수 연출가 이성민이 의기투합은 대학로에 <어머니...>를 내거는 소통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공연이 열리는 10월에 문화운동의 소통을 주제로 주변의 꾼들을 모아 집단 토론회도 마련한다. 아무튼 화두가 무르익어 생산적 논쟁을 거친 옥동자를 낳았으면 한다. 우리 연극도 이제 150년 전 베를린 민중극단 운동의 전철을 되풀이 하지 않을 만큼의 내공을 갖췄으니.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도시빈민의 삶을 담은 사실주의 연극에서 출반해 어떤 전철을 밟아 상업자본의 노리개로 전락해 갔는지 잘 아는 이들이기에.
소통은 참여와 나눔에서 시작한다. <어머니...>는 관람료의 25%를 연극이 말하는 철거민의 싸움이 진행중인 용산대책위에 내놓는다. 실천이 빠진 대안은 필패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