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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지형에서 입체적인 투쟁을

[인권오름] 진보운동에서 용산투쟁의 의미와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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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만에 다시 맡아본 바깥공기

지난 9월 4일 밤 용산참사 수배자 세 사람은 명동성당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날부터 성당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땅을 밟아본 지 6개월도 더 넘어서 여유 있게 땅을 밟아보고, 바깥 공기를 느끼면서 담배 한 대 피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순천향병원 장례식장 4층이라는 공간 속에 갇혔던 6개월여 동안 늘 불안하기만 한 생활의 연속이어서인지 이곳으로 와서 참 맘 놓고 잠도 잤다. 자유, 이 정도의 자유만으로도 난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

그러나 이런 기쁨과 행복도 잠시, 내가 처한 현실은 엄중하다. 8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용산참사 열사들은 순천향병원 영안실 냉동고에 있고, 유가족들은 상복을 벗지 못하고 있다. 철거민 다섯 명이나 희생된 사건인데도 철거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어떤 대책도 마련되지 못하고 있고, 강제철거가 폭력적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불공정하기만 한 재판은 파행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용산참사 문제를 시민들에게 알리려는 추모제와 삼보일배조차 경찰에 의해 원천 봉쇄되고, 폭력적으로 연행되고 있다. 결국 용산참사 문제는 이 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순천향병원에서 명동성당으로, 달라진 투쟁 지형

정부와 서울시와 협상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에 송영길 의원이 한승수 국무총리를 만나서야 ‘정부와 용산범대위가 포함되는 테이블을 만들자’는 정도의 안을 내놓고 있다. 무시와 고립으로 일관하던 태도에서 정부가 용산참사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그를 풀기 위한 테이블에 나오겠다는 것이니 진일보한 태도의 변화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지만, 아직은 그게 결실을 맺을지는 모를 일이다.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용산 4구역에서 철거민들의 생계 대책 마련을 위한 임대상가 보장이라는 요구는 상식일 것인데, 이런 상식이 먹히지 않는 상황이다. 심지어는 쌍용자동차 때와 마찬가지로 상식적인 요구와는 거리가 먼 터무니없는 안을 제시하고, 받지 않을 경우 공권력을 투입하여 수배자들을 검거하겠다는 엄포나 놓고 있던 게 지금까지의 상황이다. 결국은 수배자를 고립시키고, 유가족과 용산범대위의 역량을 용산참사 현장과 순천향병원으로 분산시키고, 압박을 통해서 지쳐서 손들고 포기하겠다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그렇지만 우리가 순천향병원을 나와 명동성당으로 무사히 자리를 옮기면서 지형은 달라졌다. 압박을 통한 참사의 해결은 수배자들이 공권력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피신하게 되어 불가능해졌다. 유가족과 용산범대위는 이제 용산참사 현장에 역량을 집중하여 강제철거와 재개발을 저지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다. 힘으로 눌러서 해결하려는 방법은 이제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이게 우리가 이번에 경찰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탈출을 결행한 이유이며, 지금 이 순간 이 결행은 성공했다.

용산범대위의 입체적인 9월 집중투쟁

그럼 앞으로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투쟁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용산범대위는 9월 8일 대표자회의와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추석 전에 1단계 해결이라는 방향을 천명했다. 1단계 해결이라는 것은 장례를 지낼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정부의 사과와 용산 4구역에서 철거민들에게 임대상가의 보장과 공사 시간 중의 생계대책으로 임시시장을 보장하는 것, 그리고 유가족과 부상자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 등이 우선적인 해결과제다.(물론 그렇다고 다른 요구안, 예를 들어서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등은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1단계 해결을 위해서 용산범대위는 9월 총력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일단 9일(수)부터 11일(금)까지 광화문광장에서 ‘50인-1인 시위’와 촛불추모제를 갖는다. ‘50인- 1인 시위’는 50명이 각자 다른 요구와 주장을 적은 피켓을 들고 진행하게 되며, 그런 뒤에는 촛불추모제로 마무리한다. 서울시청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기 위해 벌였던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일까지 진행되는 투쟁의 연속선상에서 진행된다. 그런 다음에 14일부터는 전국 순회추모제를 통해서 지역까지 용산참사 투쟁을 확산하고, 그런 뒤에 26일에 서울에서 전국 집중의 추모대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9월 26일을 전후하여 종교계, 정치권, 문화예술계, 지식인 사회 등 이 사회에서 용산참사 문제에 관심이 있거나 해결을 위해 같이 할 수 있는 모든 세력들을 결집해내겠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 인사청문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파행적으로 이루어진 재판에서도 본격적인 법정투쟁으로 검찰의 기소 내용을 허물고, 검찰 수사기록 3천 쪽 은폐 문제도 제기하려 한다. 이런 다각적인 투쟁과 함께 한승수 국무총리가 약속한 대화 테이블이 실효성 있게 작동할 수 있도록 협상력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친서민이라는 정부정책의 레토릭을 부수는 싸움

그렇지만 지금까지처럼 우리 뜻대로 용산참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도 많다. 그럴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 이명박 정부가 용산참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중도실용이니, 서민을 위한 경제니, 화합과 통합의 정치니 하는 레토릭들이 기만적이라고 인식하는 국민들의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정운찬 총리가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면서 사과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다시 국회에서 국정감사와 상임위원회 활동을 통해서 정치적 압박 수위를 높이고, 대중투쟁을 전개하면서 이 문제는 피해갈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을 각인시켜나갈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정책전환을 할 수 있는 탈출구는 용산참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밖에는 없다.

진보운동, 용산 투쟁을 비껴서는 앞으로 나갈 자리 없어

진보진영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용산참사 해결을 외면하는 진보운동은 정당성을 얻지 못한다. 일반 민주주의 수준의 인권이 용산 철거민 투쟁에서 모두 부정당하는 현실을 극복하지 않고 진보운동이 설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퇴진 운동도, 민중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도 용산을 외면하고는 불가능하다. 용산참사는 이 시대의 진보운동이 안고 가야할 운명과도 같은 것이지 않는가. 그러므로 인권운동도 용산참사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기획을 갖고 보다 적극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국민법정’을 통해 가해자들을 드러내고, 용산참사의 근본 원인을 제시하는 것, 그리고 권력과 자본의 구조적인 인권침해에 대한 나름의 문제를 이 사회에 던지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다시 8개월, 그리고 추석... 이제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이들에게 영면할 수 있도록 보내주어야 할 때다. 지금도 늦었지만, 이제 유가족들이 상복을 벗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말

박래군 님은 용산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이자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