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대토론회는 강내희 중앙대 교수가 사회를 봤고 보라의 입장에서 고정갑희 한신대 교수가, 적색의 입장에서 이성백 서울시립대 교수가, 녹색의 입장에서 한면희 전북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와 10개의 테제에 각자의 입장을 밝혔다.
녹색의 한면희 교수는 “적색이 노동자 중심주의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전통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이 따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노동운동 진영이 그 부분을 뼈아프게 생각할 때 녹·보·적 삼자간 소통은 원활하게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당을 얘기한다면 적색진영의 노동자계급 중심성이 상당부분 해체되지 않는다면 환경 진영은 함께 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보라색의 고정갑희 교수는 연대를 위해 “사상투쟁에 가까운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며 “사안에 따라 동맹도 가능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치열한 투쟁에 가까운 사상투쟁 필요하다. 그냥 동맹해야 한다나 그냥 접합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고정갑희 교수는 “각 운동의 접점 찾기를 통해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능하고 새로운 운동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고정갑희 교수는 “옛날엔 여성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적·녹·보당이 된다면 과도기 상황에서는 하나의 운동 지점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적색의 이성백 교수는 “노동운동은 80년대 만들어졌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시대적으로 뒤쳐진 노동운동 상태서 못 벗어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것은 활동가에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 문제의 이론가들이 역할을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성백 교수는 세 운동의 소통 확장을 두고는 “운동들이 부문화 되면서 단절된 상황에서 운동속에서 소통을 찾기는 아직 어려운듯 하다”고 진단하고 “일단 연구자 차원에서 같이 할 수 있는 부분과 담론을 실험해보고 운동차원에서 연대와 모색하는 지점까지 가야한다”고 제시했다. 그는 또 “부문에서부터 연대와 중첩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문제를 두고는 “기존의 당 개념보다는 대중이 모이는 정치라는 차원에서 당보다는 밑에서 올라오는 하나의 의견을 만들어 내는 새로운 평의회가 큰 원칙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날 대토론회 전체 토론 질의응답이다.
▲ 왼쪽부터 한면희, 고정갑희, 이성백 교수 |
1. 녹·보·적 삼자를 말할 때 어떤 순서로 쓰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매우 달라진다. 각자 어떻게 쓰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고정갑희: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가 녹·적·보를 제안했을 때는 ‘보라’ 입장에 더 가까운 녹·적·보를 제안했다. 이제 유통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서로 소통한다는 의미다. 녹·보·적이냐, 녹·적·보냐, 적·녹·보냐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진영을 너무 강조하다보면 이런 질문이 나온다. 저희 같은 경우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에서는 일단 적·녹·보라고 쓴다.
-이성백: 녹·보·적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한국 민주화 운동 속에서 노동운동이 가장 커졌고 진보운동이 아직도 노동 패러다임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21세기를 바라보면서 노동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환경과 여성이 대등하게 풀어갈 아젠다, 다양한 아젠다가 전개·연대·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틀로 가야한다는 의미에서 녹·보·적을 선호한다, 노동 중심주의를 벗어나 다른 아젠다로 간다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사회운동 차원으로 전개되어야한다. 해서 노동을 뒤로하고 환경과 여성을 앞에 쓰자 해서 녹·보·적이 바람직하다. 실제 한국에서 환경, 여성운동과 연대할 때, 노동운동 쪽에서 강력한 힘으로 노동중심으로 들어와 옆에서 들러리나 하라 했을 때는 연대가 안 된다. 노동 쪽에서 ‘들어와라’가 아니라 동등한 자격으로 같이 연대하는 수평적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면희: 사회적 조직화가 가장 강고한 적색에서 녹색과 보라를 존중하는 녹·보·적은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수사적 표현이어서는 안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20년 전엔 민주화 운동의 중심인 적색진영에 있었다. 지금은 녹색에 와 있다. 89년 말에 소비에트의 몰락으로 90년대 초반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고민하고 논쟁이 있었을 땐 적색이 가장 중심적인 사회운동이었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적색이상으로 거대한 문제가 녹색이었다고 본다. 그런 선상에서 새로운 녹색진영에 눈을 뜨고 옮겨갔다. 이제 도도하게 녹색으로 가야하는 인류의 문명사적 의미가 다가오고 있다. 이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산업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다. 언어적 표현의 뉘앙스에 따라 입장과 색깔을 달리할 수 있다고 본다.
여성운동에게 녹과 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한 적에게 보라와 적은 무엇을 의미하고 녹에게 보라와 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성백: 녹·보·적 표현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제 입장은 적도 녹도 아니고 보라도 아니고 녹·보·적이 같이 있는 것이다. 적도 녹도 보라도 추구한다. 15년에서 20년 정도 좌파의 한사람으로 비관적이고 수세적이고 패배적인 감성으로 살아왔다. 많이 밀렸던 시기였다. 한 3년 전 부터 제 감성의 전환이 시작됐다. 때가 오고 있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폭발하면서 또 하나의 역사적 대전환의 시기가 돌아오고 있다고 느꼈다. 신자유주의 축적체제가 고갈되고 더 이상 지금 체제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 축적체제를 넘어서는 다른 체제로의 이행의 시대가 오고 있다. 73년 이후부터 보수세력의 헤게모니시대였다면 미국금융위기로 인해 진보세력의 헤게모니시대로 전화해가고 있다고 파악한다. 그렇다면 진보세력의 헤게모니로 넘어갈 때 세계적으로 한국 차원에서도 진보세력이 헤게모니를 열어가기위한 이론과 실천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21세기 한국 좌파들이 기존과 다른 좌파 정치의 상상력을 가동시킬 때가 됐다. 근대정치는 다수대중과의 소통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대중과 소통에 기반한 연대의 정치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에 달려 있다. 그런 아젠다 차원에서 연대가 필요하다. 적이 녹과 보라없이는 적운동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됐고, 녹·적·보가 이론과 실천이 결합되는 방식으로 가야만 거기에서 새로운 좌파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 이론과 실천이 결합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
-한면희: 녹색에서 바라볼 때 보라색, 여성주의운동이 더 친화적이긴 하다. 1970년대 초반에 서구인들이 첫 번째 환경위기를 자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레디컬 에코로지-급진적 생태주의가 트로이카 형태로 부상한다. 낭만적 생태주의에 초점이 맞춰진 인간 개인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에 맞춰진다. 녹색평론이 그런 입장이다. 또 다른 입장은 마르크스와 결별한 아나키즘에서 생태주의를 포용한 입장이 있다. 이 입장은 인간과 자연문제에서 인간중심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사회 내에 이미 계층화되고 층층화 된 문제다. 그래서 계급문제, 여성문제, 환경문제를 일으킨다. 자체로 생태주의는 소셜하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상대적으로 적색과 손잡기는 쉽다. 환경정의 운동은 인권운동에서 환경운동으로 갔다. 환경정의는 적색과 연루될 성격이 강하다. 생태주의는 양쪽과 둘 다 긴밀하게 연결되는 추세다.
-고정갑희: 이론적 바탕으로 봤을 때 페미니즘, 생태주의, 맑스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여성운동에서 신자유주의와 정치의 측면을 확대해서 가사노동이나 노동의 계급 문제를 다른 식으로 생각하고 성계급 같은 생각을 내놨다. 노동의 측면도 진보진영의 노동이 얼마나 협소한가. 노동의 패러다임을 확장해야할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페미니즘, 여성운동의 입장에서는 신자유주의를 포함하는 가부장체제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야 한다. 가부장체제 인식을 기존의 남성중심적인 노동운동, 남성 중심적인 생태와 환경운동에서 가부장 체제에 대한 인식을 필요로 한다. 신자유주의 여성운동 안에서 또 다시 얘기 해야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운동의 가치로서 삼자관계가 재구성 되는 것 자체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활동가들과 소통하고 접점을 형성해야 한다고 보는데, 각 영역에서 어떤 노력과 어느 정도 격차를 확인 했는가? 국제적으로도 사례가 있다면 알려달라.
-한면희: 90년대 후반에 여성들과 환경전문가와 간담회가 있었다. 아토피 문제였다. 그렇게 여성들이 갖는 생활 속 화제를 가지고 환경전문가와 수기로 만든 책이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라는 책이었다. 자연스레 환경과 여성이 만나는 접점이 생겼다. 어머니가 환경문제를 펼쳐가는 것이 좋은 시도였다. 그럼 아버지는 계속 뒷전에서 바치기만 할 거냐의 문제의식이 있었다. 서로 만나는 접점이 조성됐다. 의도적으로 녹색과 적색이 가까워지기를 시도해서 환경정의 운동의 지평을 펼치도록 논의했다. 그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양자, 삼자 간에 자연스레 모임이 된 건 총선연대였다. 잘못된 사회제도와 정책으로 여러 문제가 선거 관련해서 촉발됐고 총선연대에서 3자가 만날 계기가 조성됐다. 이런 운동을 더 벌이게 하기위해 4대강 살리기 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환경문제에 다른 분야인 사회운동이 결합되면서 자연도 지키고 민주주의 회복도 하는 생각을 갖는다.
-고정갑희: 접점이 문제다. 여성운동진영에서 본다면 기존 여성운동이 좌파진보진영의 여성위원회, 할당제, 성폭력 문제를 추동시켰다고 본다. 진보좌파내의 성폭력 문제가 정화되면서 여성, 페미니즘, 성에 문제인식을 조금씩 하는 단계라고 본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페니미즘 이론의 문제의식이 여성운동의 진영까지 소통이 됐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여성운동에서 계급이라는 측면을 좀 더 생각하고 여성적 빈곤 문제 생각 안 한건 아니다. 구조적인 자본주의 문제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환경문제에서는 여성이 많이 동참한다. 여성환경운동도 좀 더 구조적인 측면, 계급의 차원이나 자본주의 문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생태학이나 생태주의를 더 많이 흡수하면서 여성의 환경운동이 더 진전되길 바란다. 여성운동이 확장되다 보면 기존 좌파, 계급운동 내지 노동운동을 다시 보게 만들 것이다. 적·녹·보가 테제또는 인식소로 작동해야 한다.
-이성백: 전반적으로 대화해보면 노동운동은 80년대 만들어졌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시대적으로 뒤쳐진 노동운동 상태서 못 벗어나고 있다. 이것은 활동가에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 문제의 이론가들이 역할을 못했다. 노동쪽에서 이론과 실천이 따로 놀 정도로 괴리된 상태다. 그런 것들이 비정규직 해법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반대투쟁을 넘어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녹·보·적의 지점에서 본다면 노동운동 내부에 있어 가부장주의 문제의 하나로 권위주의 청산문제가 조직적으로 필요한 차원이다. 권위주의가 민주노총이라든가 이런데서 관료주의화 돼서 취약함을 드러냈다. 가부장주의적 양태와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민주노조운동 자체가 밑으로부터 민주적 전환의 개혁이 필요하다. 나아가서 정치운동 차원에서도 강령에 수사학적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진보정당들이 여전히 노동운동의 우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점이 문제다. 노동운동이 환경운동, 여성운동을 포괄하는 틀로 나가야 한다.
삼자관계 재구성의 기획이 학문적 공간에서 이론/담론으로서의 여성주의-생태주의-맑스주의 간의 문제를 다룰 것인지, 아니면 현실 사회운동 공간에서 여성운동-환경운동-노동운동 간의 삼자관계 재구성을 시도하는 것인지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고 보는가. 만약 그렇다면 활동가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
-고정갑희: 처음 적·녹·보라를 얘기 했을 때 보라가 기존의 여성운동이기도하고 페미니즘 진영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인식소로 들어가면 성과 계급과 생태라는 인식소가 있고 그 인식을 가지고 실천하는 주체가 여성, 노동, 환경·생태운동에 있다고 본 것이다. 거기에 이론이 바탕이 될 때는 페미니즘과 맑스주의와 생태주의가 있다고 본다. 세 차원이 있는데 여기서는 계급·노동패러다임을 얘기하면서 여성패러다임을 얘기하는데, 성의 패러다임 임을 확실히 해야 한다. 지구적네트워크를 하면서 적·녹·보를 얘기한 것은 실천하는 운동의 주체가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연구를 하면서 이론가와 활동가가 같이 만나는 공간이 지구적네트워크였고 활동가들을 위한 페미니즘 학교를 생각했고 노동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함께 와서 서로 소통하게 하는 장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론과 현장을 연결하려는 패러다임을 다시 생각하고 있고 현실운동을 바꾸는 것이 목표다. 그런 의미에서 이론가와 실천가가 소통해야할 부분, 이론가들 사이, 실천가들 사이 소통될 부분인데. 현장운동 주체들이 소통하는 부분이 가장 어려울 것으로 본다. 그 부분에서 확장이 어려운데 노동운동하고 계신 분들이 성의 문제에서 접점을 찾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면 확장되는 노동운동 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환경도 마찬가지다.
-이성백: 저도 거의 비슷하다. 덧붙인다면 이 질문은 제가 보기엔 우문이다. 뻔한 대답을 한다면 당연히 사회운동속에서 여성운동, 환경운동, 노동운동이 새로운 진보운동으로 재구성되야 한다. 운동들이 부문화 되면서 단절된 상황에서 운동속에서 소통을 찾기는 아직 어려운듯하다. 일단 연구자 차원에서 같이 할 수 있는 부분과 담론을 실험해보고 운동차원에서 연대 모색하는 지점까지 가야한다.
-한면희: 적색에 가장 친화적인 것이 녹색주의자다. 그러나 운동의 현장이나, 환경·생태진영의 이론적 담론을 보면 아무래도 페미니즘이 친화적이다. 한국은 유독 두드러진다. 한국에는 적색과 녹색사이 거리가 상대적으로 넓다. 통상 좁은 의미의 좌파의미에서 적색진영은 어떤 의미에서는 고착화 되어 있다. 노동자 중심주의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전통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이 따르지 못했다. 그러면서 둘은 자주 교류하는데 적색은 배제되기 쉬운 선상에 있었다. 노동운동 진영이 그 부분을 뼈아프게 생각할 때 삼자간 소통은 원활하게 가능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아직 우리 사회는 지적 식민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부족하다. 각 이론적 영역에서 이론적 식민화와 지식생산구조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무엇인가?
-이성백: 근본적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다. 지적 서구적 식민주의 자체에서 대안세력조차도 대안이론 자체가 서구이론을 쳐다보는 지적 식민주의를 못 벗어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본다. 어떤 이론에 대해 비판할 때 자기비판이 아니라 자기가 따르는 서구이론가의 비판을 끌어온다. 일종의 지적 편의주의가 다시 담론 진영에 팽배한 것이다. 치열하게 뭔가 만들어야 한다. 좌파들 내에서도 지적 편의주의로 그럴싸한 얘기들을 끌어다가 팔아먹는 식이다. 편하게 팔아먹는 식을 넘어서야 한다. 녹·보·적 연대와 관련해서는 서구에서 팔아먹을게 별로 없을 것이다. 이 부분이야 말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새로운 지적 식민주의를 벗어나 자유로운 토론을 했으면 한다.
-한면희: 천박한 지적 풍토를 빨리 벗어나야 한다. 환경문제가 서양의 지배적 세계관에서 비롯됐기에 서양의 지적전통이 아닌 것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자연친화적 문명은 서양을 빼고 대부분 가졌다. 그런 선상에서 김지하는 동학에서 생명사상을 찾고 있다. 저도 작년 여름에 동아시아 문명과 한국의 생태주의, 동양의 자연관 홍익인간 등에 비춰 대안이념을 내놓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다만 이런 것들이 담론의 장에서 다뤄져야 하는데 대개는 서구이론으로 다뤄진다.
-고정갑희: 일정 동의 하지만 달리 봐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라는 것 자체가 한국식인데, 토종은 무얼 의미하는 지 생각해야 한다. 김지하를 말씀했는데 김지하의 율려사상이나 동아시아 문명론을 얘기할 때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전히 남성 중심적 사상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동아시아 문명론이라고 받아들일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적·녹·보라 얘기할 때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한다. 서구 대 동앙시아, 아시아, 한국 대당개념은 위험할 수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얘기할 때 맑스주의든 좌파든 진보든 다 서구사상이다. 서구사상이 한국의 산업화된 사회에 하나의 패러다임을 제공했다면 그것은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적 식민화를 얘기하는 방식보다는 서구의 이론과 운동이 오면서 어떻게 배우고 어떤 문제제기가 있나 검토하고 넘어서는 지식생산이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서구든 어디든 지금까지 지식체계나 생산을 섭렵해야 한다. 어디서 출발점을 찾을 것이냐 인데 현장에서 나오는 의제를 가지고 이론 문제 진행되면 이게 지적 식민화의 문제를 넘어설 것 같다.
삼자관계의 접합과 연대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지역의 경우 존재하지 않거나 불균형 일 수 있다. 수도권과 지역의 차이 및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한면희: 먼저 고정갑희 선생 말씀에 답해본다면 서양 것 가운데 보편적인 것, 우리 것 가운데 보편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 필요하다. 우리 것 가운데 보편화 가능한 것을 찾을 수 있다. 우리 전통에서도 새로운 이념적 틀로 발전할 수 있는 단서가 있더라.
환경분야는 분권화가 용이하게 진행된다. 오히려 지역에서 더 환경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지역운동도 서울의 중앙집중적 단체가 너무 관여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가야한다.
-이성백: 실제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가 지역주의 문제다. 또 하나의 문제다. 녹·보·적 연대가 수도권을 넘어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역주의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정갑희: 지역을 어디로 보느냐가 중요하다. 적·녹·보라 얘기 했을 때, 인식소라 했을 때 성과 계급과 생태문제를 얘기하면 어느 지역이든 생태문제도 있고, 농민문제를 봐도 이경해 열사가 칸쿤을 가는 것이 현재의 문제다. 성과 계급, 생태문제를 지역에서 의제로 삼게 되면 그 지역에서 각 운동이 강하지 않더라도 의제화 하고 고민할 때 이미 적·녹·보로 들어가게 된다. 지역을 한 구역만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녹·보의 패러다임이 한국의 지역을 넘어서서 다른 지역과의 관계로 생각할 때다. 지금까지 일국중심의 운동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생각을 달리해서 연계고민해볼 수 있다,
. 현재의 사회운동의 위기를 넘어설 대안으로서의 적녹보 관계 재구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어느 지역 사회운동의 경우 경험하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녹보간의 관계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가 더 중요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일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성백: 녹·보·적 하면 다른 문제는 빼놓고 생태, 여성, 노동을 중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부문운동에서 부문운동의 틀을 벗어나는 연대운동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기본 취지다. 녹·보·적 외에 다른 문제들 배제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른 문제 예를 들어 인권이라든가 전쟁이라든가, 소수자라든가 이런 부문들이 포괄하는 연대로 가야된다. 녹·보·적에만 중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연대의 이론과 실천이 되야한다.
-한면희: 녹색영역에서 1세대 권리가 자유권적 기본권, 2차적으로 사회권적 기본권이 수용되고, 뉴에이지 운동이후 3번째 권리로 통상 환경·여성·인권·평화로 갔다. 사안별로 만나곤 했다. 민족 간 평화, 인간과 자연의 평화로 넓힐 수 있다. 환경진영은 자세와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고정갑희: 남아공은 인종문제가 중요한 쟁점이다. 여기서 에이즈를 계급의 문제로, 성의 문제로 어떻게, 생태적으로 어떻게 볼지를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지금까지 운동의 방식이나 대안 제시가 달라질 수 있다. 대처방식이나 에이즈 연구자체도 달라질 수 있다. 전쟁도 제국주의 문제를 봐도 미 제국주의 정치군사력만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성과 인구정책을 펼쳤고, 군산복합체는 성의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나오기 시작하면 운동 주체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이번 질문에 답할 때 마지막 질문들도 참고로 해달라. 삼자 간 관계 재구성을 주제로 한 연구물들에서 관계 형태에 관한 표현은 접합과 연대 그리고 동맹등 대략 세 가지와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다. 서로 차이도 있고 동질적인 것도 있지만 핵심은 인식과 방식의 재발견을 촉구하고 있다. 각자 사용하고 있는 표현을 중심으로 새로운 관계를 어덯게 만들것인가? 각 영역에서 볼 때 상대영역의 취약한 부분과 뛰어난 부분은 무엇인가> 연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이며 하나의 당에 녹보적을 아우를 당을 만들 수 있다고 보는가?
-한면희: 적색운동의 취약점은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세력화를 가장 강고하게 도모한 만큼 노동자 계급 중심성 견지가 다른 연대의 장애요인이다. 강점은 조직적 체계화가 잘돼서 맘 먹음으로써 일궈내기가 용이하다. 맑스주의가 내놓은 것은 대안사회 프로그램이 짜임새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여성운동은 절반의 운동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절반이라는 생각이 아니면 연대가 가능하겠다. 절반이라는 것도 일종의 독점이다. 여성운동은 존중과 배려 돌봄이 강점이다. 연대와 동맹을 위해 녹색의 시각에서 얘기한다면 신종플루가 화두가 될 수 있다. 변종 플루는 부자, 가난한 자 안 가리지만 약의 배분은 부자부터 배분이 가능하다. 스모그도 그래서 사회적 약자에게 먼저 간다. 약자의 시각에서 약자가 여성이고 노동자이고 자연일 수 있겠다는 시각에서 문제를 놓고 푼다면 녹색진영이 담당할 고유영역과 약자시각에서 함께할 수 있는 부분에서 같이 할 수 있겠다.
그런 부분에서 정당을 얘기한다면 적색진영의 노동자계급 중심성이 상당부분 해체되지 않는다면 환경 진영은 함께 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근본주의자들이 대부분 나가고 현실주의자들이 남아 현실정치에서 성공을 이룬다. 상대를 인정하면서 가면 동맹 가능할 수 있다.
-이성백: 연대방식이 어떻게 되야 하냐면 가장 느슨한데서 긴밀성으로 나갈 것이다. 한국에서는 하나의 운동에서 핵분열 돼서 부문운동으로 나눠왔다. 자기끼리 살다보니 더불어 사는 것에 뜻을 잃었다. 같이 사는 게 이상해서 같이 사는 법을 잊었다. 연대한다는 것은 가장 느슨한 것부터 하다보면 거부감을 없애고 점차 나갈 것으로 본다. 부문운동이 부문운동으로 가돼 그 부분이 연대운동으로 보완 안되면 그 운동은 취약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부문 운동도 연대운동과 상호 순환 할 때 부문도 살고 연대운동도 새로운 좌파운동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부문에서부터 연대와 중첩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의 문제로만 파악하고 있는데 노동이라는 공간속에 이뤄지는 본질은 여성문제다. 당하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이다. 여성문제가 비정규직의 본질이지 노동문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복합적인 문제다.
당이란 개념 자체부터 재설정해야하다. 연대운동을 포괄할 수 있는 조직으로서는 그렇게 안 된다. 당 개념이 갖고 있던 역사적 규정이 있기 때문에 그런 당 개념은 시야에서 빼놓고 봐야한다. 당 개념을 접어놓고 다른 식의 조직론이랄까... 다른 식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녹·보·적 아젠다 뿐만 아니라 여러 정치, 사회운동단체들을 다 포괄했을때 정치적 조직화 차원에서 어떤 조직화가 필요한가를 고민할 수 있다. 촛불이 나올 때 범좌파든 누구든 촛불을 감당할 정치적 틀이 없다고 느꼈다. 80년대 이후 좌파들은 정치에 대해서 당 정치라는 도식화된 정치 개념을 받아들인 것 외엔 없다. 답습된 개념으로 촛불을 봤을 때 정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새로운 정치를 만드는 것이 문제다. 대안적 서구 모던 소사이어티가 발전하면서 대안적 정치운동의 흐름이 있었다. 대중이 다수를 차지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어떻게 만들것이냐다. 다수 대중을 모으는 정치를 어떻게 찾을 것이냐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녹·보·적 연대와 관련했을 때 민주대연합 같은 것도 기존 틀이다. 제 생각은 진보신당이든 민노당이든 사노준이든 뭘 하든지 갈아엎고 새판을 짜야한다. 당 개념보다는 대중이 모이는 정치라는 차원에서 기존현장에 있는 사회운동세력이 아젠다는 아젠다로, 정치적 입장은 입장대로 내면서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대의체로써 21세기 새로운 소비에트가 필요하다. 당보다는 밑에서 올라오는 하나의 의견을 만들어 내는 새로운 평의회가 큰 원칙으로 필요하다.
-고정갑희: 사상투쟁에 가까운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사안에 따라 동맹도 가능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치열한 투쟁에 가까운 사상투쟁 필요하다고 본다. 그냥 동맹해야 한다나 그냥 접합은 아닌 것 같다. 기존의 여성운동도 마찬가지로 자신만 중요하다는 생각 버려야 가능하다. 연대가 먼저 돼야 사상투쟁도 하고 접점도 찾을 것이다. 접점 찾기가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가야한다. 노동운동이 미친 영향이 큰데 계급과 노동과 생산의 패러다임은 가부장성을 버리면서 달라질 수 있다. 이때 생태사상으로 간다면 생태주의는 자본주의가 만든 것을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사상체계에서 가부장적인 여성에 대한 억압과 같은 것을 봤을 때 다른방식의 운동이 가능하다.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새로운 연대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옛날엔 여성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적·녹·보당이 된다면 과도기 상황에서는 하나의 운동의 지점될 수 있겠다.
네트워크에서는 정치체제 등을 바꾸는 고민을 하는 중이다. 네트워트 방식을 고민인데 접점을 찾으면 새로운 연대의 만남의 장을 만들게 된다면 당이 아닌 다른 것일 수 있다. 갈등의 구조를 넘어서면서 치열한 논쟁과 사상투쟁으로 적·녹·보라당도 가능하다고 본다. 녹색당 가능했다면 그것도 가능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