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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만족 높이려 복장검사하는 농협

이정희 의원 서울축산농협 여성노동자와 점심...“서민 위한 금융제도가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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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에 위치한 ㄱ농협. 창구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3개월 동안 서서 일을 했다. 고객만족도(CS)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임신 중이었던 한 여성 노동자가 창구에서 과자를 한 조각 먹었고, 귀가 잘 안 들리는 할머니에게 큰 소리로 얘기했다는 이유다. 한 사람이 낮은 점수를 받으면 지점 전체에 반영된다.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해당 직원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대신 몇 번째 창구 직원이라고 지목했다. 지목된 창구의 노동자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전국의 농협에서는 CS평가가 진행 중이다.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서비스를 하겠다며 평가 제도를 도입했지만 획일적이고 자의적인 평가기준 등으로 노동자들은 고통을 겪고 있다. 전국농협노동조합은 “고객에게 감동을 주기 이전에 지역 농협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오히려 감시·통제로 스트레스만 쌓이고 노동 강도만 강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축산농협에서 창구업무를 보고 있는 여성 노동자.

끈 있는 샌들에 스타킹을 신어야 고객만족도 상승?

농협중앙회에서 각 지역농협으로 내려 보낸 평가 기준 중 복장 부분은 중고등학교 복장 규율에 버금간다. CS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여성 노동자들은 화장을 진하게 해서도 안 되고 안 해도 안 된다. 끈이 없는 샌들을 신지 않아야 하고 스타킹을 신어야 한다. 통굽 단화는 안 된다. 농협중앙회는 특별히 여성 노동자의 복장 부분만 강조하는 공문을 지난 6월 지역 농협에 내려 보내기도 했다.

고객이 창구에 왔을 때 완전 기립만 인정된다. 반만 일어서면 감점이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이라고 인사해야 한다. 형님 아우 사이로 지내는 지역 단골 고객이 왔다고 ‘형님 어서오세요’라고 인사했다가 모니터 요원에게 들키면 감점이다. 돈 접시에서 통장을 가져갈 때도 꼭 두 손을 이용해야 한다. 한 손으로 집어 가면 성의 없어 보여서 감점이다.

손님을 배웅할 때도 완전 기립해야 한다. 그리고 ‘안녕히 가십시오 고객님’이라고 인사해야 한다. 매장 분위기를 잘 알지 못하는 모니터 요원들은 예시만 보고 예시와 다른 말을 하면 점수를 깎는다.

노동자 끼리 감시하고 비난하게 만드는 CS평가

한 사람이라도 잘못하면 지점 전체 평가 점수가 낮아지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서로를 감시하게 되고 낮은 점수를 받은 노동자는 “너 때문에 그렇다. 쓸모없는 직원이다”는 모욕을 견뎌야만 한다.

서울축산농협에서 일하는 이 모 씨는 “영업을 하기 위한 CS가 아니고 평가를 위한 CS다”고 평가했다. 같은 곳에서 일하는 김 모 씨는 “낮은 점수를 받으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고 전했다. 서울축산농협의 경우 기간을 정해 놓고 하던 평가를 상시 평가로 바꿨다. 노동자들은 “CCTV로 행동 하나하나를 감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정희 의원과 여성노동자들이 점심을 함께 했다.

“고객 불만은 여성 노동자 복장에서 오지 않는다”

21일 오후 12시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CS평가의 문제점을 현장 여성 노동자들과 고민하기 위해 서울 등촌동에 위치한 서울축산농협을 방문해 점심을 함께 먹었다.

최두석 서울축협지부 지부장은 “고객만족도 평가는 획일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황과 조건을 고려해 제대로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며 CS평가 제도의 변화를 촉구했다.

전국농협노조는 “인력 충원으로 업무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낙후된 환경을 개선해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고, 오래된 장비를 교체해 빠르게 업무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환경 개선이 우선임을 지적했다.

점심 식사를 하며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한 이정희 의원은 “고객들의 불만은 여성 노동자들의 복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서민을 위한 금융제도 축소에서 오는 것”이라며 “서민을 위한 금융제도를 강화해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