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주장했던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기간 적용 유예논의가 30일을 넘겨 무산됐다. 오늘부터는 2년 전인 2007년 7월 1일 이후 계약을 했던 기간제 노동자가‘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 법)의 적용을 받는다.
이들은 비정규법 시행이 적용되기 시작한 07년 7월 1일부터 이 법의 적용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기간은 기간제 법 시행 후 근로계약이 체결·갱신되거나 기존의 근로계약기간을 연장하는 경우부터 적용된다.
법대로라면 2년 전인 2007년 7월 1일 근로계약을 체결, 갱신, 연장한 기간제 노동자는 오늘부터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러나 2년 전 오늘 채용된 비정규직은 오늘 정규직이 될 수도 있고 계약해지를 통한 해고가 되거나 무기계약직, 외주화를 통한 간접고용 노동자가 될 수 있다.
선택지는 다양하지만 선택은 전부 기업주 맘이다. 정부는 올 한 해 동안 최소 70만에서 100만 명의 기간제 노동자가 해고 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 기업주는 해고를 선택한다는 전망에서다. 이를 근거로 노동부는 지난 3월 13일 기간제·파견 노동자의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면서 정규직 전환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기간제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이미 상시적 구조조정으로 일상적 해고 중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면 과연 4년 안에 비정규직 해고는 없을까? 또는 아예 기간제를 폐지한다면 기간제 노동자 해고는 없을까? 일하고 싶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기간을 연장하거나 기간제한을 없애주면 그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용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노동계는 ‘대부분 해고 한다’를 답으로 제시하고, 정부는 ‘정규직 전환 부담이 없으니 비정규직을 자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 주장대로 기간제법에 의해 대량해고가 된다면 기간제법 미개정 문제가 심각하겠지만, 노동계는 해고 발생은 기간제 법 미개정이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위성수신기 부품공장 A, B, C 사는 같은 원청으로부터 받는 물량에 따라 상시적으로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고 늘릴 수 있도록 했다. 원청회사가 A 부품공장과 많은 물량을 계약하면 B나 C 회사는 인원을 줄여야 버틸 수가 있다. 원청회사는 그 다음에는 B회사에 물량을 대거 계약한다. A 회사는 물량이 줄어들어 비정규직 인원을 정리해야 버틸 수 있다.
하청회사의 비정규직 계약기간은 결국 원청의 물량계약에 따라 변하게 된다. 그러나 A, B, C사의 비정규직은 물량에 따라 완전히 일자리를 잃지는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물량을 따라 A, B, C사에 단기계약직으로 돌아가면서 채용된다. 일명 ‘동종업계 회전문’ 재취업이다.
비슷한 일을 하기 때문에 기업이 원하는 숙련도엔 문제가 없다. 반면 해고는 항시적으로 가능하도록 3개월이나 6개월 단위로 계약을 한다. 자동차 공장들 역시 최근에는 이런 방식으로 하청업체를 분할해 경쟁을 통해 물량을 자유롭게 한다고 한다.
이 같은 고용관행을 놓고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 철폐연대 대표는 “하청공장에선 일상적 해고가 가능한 단기계약직 채용을 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게 해 놨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고용이 유연화 된 상황에서는 기간제한을 4년으로 연장하거나 혹은 기간제한을 없애도 비정규직 대량해고 사태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고용불안이 일상화 된 상태라는 것. 김혜진 대표는 “기업들은 1년 이상 계약은 하지 않는 관행으로 가고 있다”면서 “계약 기간을 짧게 해야 언제나 인원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구조가 가능하다. 유연화가 기업에는 더 큰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유연화를 막지 않으면 매일 해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김성희 한국 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4년 연장이든 유예든 대다수 비정규직은 단기계약직으로 해고되고 다른 곳에 재취업 되거나 간접고용으로 전락한다”면서 “현행 비정규직 법에서조차도 2년 이내 비정규 노동자에겐 전혀 보호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성희 소장은 “기간제한이 대단한 보호 장치도 아니지만 정부와 기업은 그것조차 없애서 유연화 만능 신화를 이룩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기간연장이나 기간철폐를 통한 고용유연화는 단지 물량만의 문제는 아니다. 비정규직 노조결성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조경배 순천향대 법대 교수는 “기업이 장기근속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해줄 확률은 매우 낮다”면서 “노동법이 기업주에 대한 부담을 통해 노동자의 안정을 꾀하자는 취지인데 기업주의 부담을 전혀 안주는 노동법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기업주의 부담이 없는 법은 노동3권의 보장을 불가능하게 한다. 조경배 교수는 “비정규노조 조직률이 3% 밖에 안 되는 이유는 자기 직장 보장이 안 되기 때문”이라며 “헌법에 보장된 노조가입이 불가능한데 어떻게 단체협약을 맺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기간제 노동자는 자신의 고용을 보장받을 노조도 없어 더욱 해고는 일상적이라는 설명이다.
김혜진 대표는 “문제가 많은 비정규직 법은 놔둔 채 정규직 전환 지원금 마련, 차별시정조 치 강화, 무기근로계약직 권장 모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근로기준법 적용을 통해 모든 노동자가 똑같이 법 적용을 받고 상시적 근로에 비정규직이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