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연 리포트’란 상징으로 남아 있는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은 30년 전인 1979년 문을 열어 이듬해 조사분석서 <교회와 노동자>를 내놓으며 80년대 암흑의 노동운동 공간을 돕는 연구집단으로 자리잡았다. 87년부터 내놓기 시작한 격월간지 ‘기사연 리포트’는 한국진보운동의 여러 동향과 흐름을 짚어 주었다.
이 책은 산재보험이 1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던 85년에 이미 이 나라 비정규직 비율이 전체 노동자의 35%를 넘어섰다는 점에 주목한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10인 미만 사업장까지 합치면 벌써 80년대 중반 비정규직은 40%선에 달했을 것이란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다.
21세기 노동판에선 “노조조직률은 1989년 19.8%를 정점으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이 책은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1975년 18.8%로 치솟다가 1979년 20.2%를 넘었다는 사실도 노동부 통계로 보여준다. 해방 직후 전평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노조 조직율의 정점은 어디일까. 아무튼 1989년 19.8%가 노조 조직률의 정점이 아닌 것만은 사실이다.
이 책은 실업을 ‘상대적 과잉인구’ 개념으로 대체해 실업과 불완전, 불안정 취업을 낳는 상대적 과잉인구의 창출 메커니즘을 밝히고자 했다. 전형적인 노동자 계급외 빈농, 도시빈민층도 상대적 과잉인구 개념 틀 안에서 함께 분석했다. 빈농과 도시빈민층까지 확대한 연구진들의 시각은 지금의 비정규직 개념보다 더 넓고 깊다.
이 책은 “80년대 중반에서야 주목받기 시작한 실업문제는 사실상 80년대초부터 서서히 표면화됐다. 전경련은 80년 3월 24일 80년도 기업 신규채용 인원이 79년 대비 평균 46.1%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60-70년대 한국의 자본 축적과정에서 형성된 한국 자본주의의 재생산 구조가 70년대말부터 80년대에 봉착한 내외적 제조건 속에서 어떻게 자본축적의 위기에 직면하고, 이런 위기의 한 형태로 고용문제가 어떻게 제기되는가를 전체로 파악해 본다. 고용정세가 전체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도 분석한다”고 밝혔다.
이 책은 당시 국제경쟁력을 상실해가는 섬유, 봉제, 합판, 신발 등 노동집약적 업종이 사양산업에서 휴폐업, 조업단축 등이 이루어지면서 대량으로 실직당하는 사태가 벌어지는데 주목했다. 동시 이 책은 제조업 등 공업부문 실업문제에 머물지 않고 농업부문까지 시야를 확대했다.
80년대 이후 만성적 불황 하에서 가장 대규모로 평창해 누적된 것은 불안정, 불완전 취업자다. 독점 대기업은 중소 영세기업을 매개로 한 수탈 연대 고리로 노동자계급에 희생을 전가해 불황을 모면하려 하고 있다. 1985년 상반기 중 국내 임금 근로자의 35.7%가 불안정한 임시고, 일고로 일본의 10.3%보다 무려 3배나 많았다. 불완전 취업상태의 가내 노동자나 무급가족 종사자도 전체 위업자의 14.1%를 차지했다.
비정규직 문제는 21세기에 새로 만들어진 단어가 아니다. 우리가 눈을 감고 보지 않았을 뿐 이미 70년대 압축성장기의 말기에 우리 사회 주변을 감싸고 흉측한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