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낡은책11] 실업문제의 인식

압축성장 끝자리에 불안정 고용 급증, 08년대 중반에 이미 비정규직 40% 육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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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민중사, 1986.5.30, 165쪽)

이 책은 <한국의 상대적 과잉인구와 고용문제>라는 부제를 달아 1986년에 나왔다. 85년까지의 노동통계치를 분석해 조만간 터질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전망했다. 당시엔 ‘비정규직’이란 용어 대신 임시고용, 일용직 등을 사용해 ‘불안정, 불완전 취업자’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이 책은 압축성장의 끝자리에 늘어난 ‘상대적 과잉인구’란 당시로선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다.

‘기사연 리포트’란 상징으로 남아 있는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은 30년 전인 1979년 문을 열어 이듬해 조사분석서 <교회와 노동자>를 내놓으며 80년대 암흑의 노동운동 공간을 돕는 연구집단으로 자리잡았다. 87년부터 내놓기 시작한 격월간지 ‘기사연 리포트’는 한국진보운동의 여러 동향과 흐름을 짚어 주었다.

이 책은 산재보험이 1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던 85년에 이미 이 나라 비정규직 비율이 전체 노동자의 35%를 넘어섰다는 점에 주목한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10인 미만 사업장까지 합치면 벌써 80년대 중반 비정규직은 40%선에 달했을 것이란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다.

21세기 노동판에선 “노조조직률은 1989년 19.8%를 정점으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이 책은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1975년 18.8%로 치솟다가 1979년 20.2%를 넘었다는 사실도 노동부 통계로 보여준다. 해방 직후 전평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노조 조직율의 정점은 어디일까. 아무튼 1989년 19.8%가 노조 조직률의 정점이 아닌 것만은 사실이다.

86년 당시 기사연 원장이던 손학규(전 경기도지사)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실업이란) 과제를 선정한 이유는 조만간 실업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제기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용과 실업 관련한 공식통계의 신빙성 문제도 작업을 어렵게 했다. 이 연구는 실업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하고, 실업문제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의 정립을 시도했다. 이 보고서가 시도한 한국에서 ‘상대적 과잉인구의 계량화’는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 보고서는 정부 공식통계 산정방식을 준용해 공식통계상 상용고용과 구분되는 임시고, 일고를 불안정 취업, 주당 노동시간 36시간 미만의 취업자와 주당 54시간 이상 취업자중 일부 과다 노동시간 취업자를 불완전 취업자로 봤다”고 소개했다.

이 책은 실업을 ‘상대적 과잉인구’ 개념으로 대체해 실업과 불완전, 불안정 취업을 낳는 상대적 과잉인구의 창출 메커니즘을 밝히고자 했다. 전형적인 노동자 계급외 빈농, 도시빈민층도 상대적 과잉인구 개념 틀 안에서 함께 분석했다. 빈농과 도시빈민층까지 확대한 연구진들의 시각은 지금의 비정규직 개념보다 더 넓고 깊다.

이 책은 “80년대 중반에서야 주목받기 시작한 실업문제는 사실상 80년대초부터 서서히 표면화됐다. 전경련은 80년 3월 24일 80년도 기업 신규채용 인원이 79년 대비 평균 46.1%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60-70년대 한국의 자본 축적과정에서 형성된 한국 자본주의의 재생산 구조가 70년대말부터 80년대에 봉착한 내외적 제조건 속에서 어떻게 자본축적의 위기에 직면하고, 이런 위기의 한 형태로 고용문제가 어떻게 제기되는가를 전체로 파악해 본다. 고용정세가 전체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도 분석한다”고 밝혔다.

이 책은 당시 국제경쟁력을 상실해가는 섬유, 봉제, 합판, 신발 등 노동집약적 업종이 사양산업에서 휴폐업, 조업단축 등이 이루어지면서 대량으로 실직당하는 사태가 벌어지는데 주목했다. 동시 이 책은 제조업 등 공업부문 실업문제에 머물지 않고 농업부문까지 시야를 확대했다.

1975-1979년 농가 취업자 감소율은 1.2%에 불과했으나 1980-1984년 사이엔 5.7%나 됐다. 1980-1984년 농가의 취업자 수 감소는 114만4천명인데 반해 이 시기 광공업 부문 고용자 수 증가는 40만명도 안 된다. 유출 농민 중 상당부분은 비경제활동 인구로 편입하거나 도시 내 전근대적 부분이나 3차 산업에 불완전, 불안정 취업해 정체적 과잉인구로 누적됐다. 서비스업종의 불완전, 불안정 취업자 증가에 따른 과잉인구에 주목한다.

80년대 이후 만성적 불황 하에서 가장 대규모로 평창해 누적된 것은 불안정, 불완전 취업자다. 독점 대기업은 중소 영세기업을 매개로 한 수탈 연대 고리로 노동자계급에 희생을 전가해 불황을 모면하려 하고 있다. 1985년 상반기 중 국내 임금 근로자의 35.7%가 불안정한 임시고, 일고로 일본의 10.3%보다 무려 3배나 많았다. 불완전 취업상태의 가내 노동자나 무급가족 종사자도 전체 위업자의 14.1%를 차지했다.

비정규직 문제는 21세기에 새로 만들어진 단어가 아니다. 우리가 눈을 감고 보지 않았을 뿐 이미 70년대 압축성장기의 말기에 우리 사회 주변을 감싸고 흉측한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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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없는 위험성장이 초래한 각종 사회문제들이 서서히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