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
아이들에게 시험 안치는 권리를 알려줬다고 선생을 수십명씩 파면시키는 이것도 나라인가.
결국 시험 치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여중생 네명을 한꺼번에 농약을 마시게 하는 이것도 나라인가.
강남아이들은 서울대를 가고 노동자부모를 둔 아이들은 청년백수가 되는 이것도 나라인가.
살인범의 누명을 쓴 아들의 원한을 풀기위해 이십년을 매달려 겨우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법안을 만들었는데 그 법안을 다시 되돌리겠다는 국회의원에게 항의했다고 칠십 노파를 구속시키는 이것도 나라인가.
인터넷에 글을 썼다고 무고한 사람을 구속시켜 만인에게 뽄때를 보여주는 이것도 나라인가.
아들과 애비가 구멍동서가 되어 어린 여배우를 죽음으로 몰고간 부자지간이 가장 강력한 언론인으로 행세하는 이것도 나라인가.
공정방송을 외치는 언론인을 쫓아내고 결혼을 사흘 앞둔 피디의 손목에 기어이 수갑을 채우고야 마는 이것도 나라인가.
대법원에서까지 복직판결이 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복직을 6년이나 외면했던 동료의 복직을 위해 엄동설한에 굴뚝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를 끝내 구속시키고 마는 이것도 나라인가.
살겠다고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을 하룻만에 불태워 죽인 이것도 나라인가.
힘센 놈 앞에서는 설설 기다가 만만한 사람들 앞에서나 법을 외치고
원칙을 나불거리는 이들이 정치인으로 불리고 판검사로 불리고 언론으로 불리는 이것도 나라인가.
860만으로도 모자라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이것도 나라인가.
저것도 대통령인가.
제 나라 국민들은 째려보다가 미국에 가서야 만면에 화색이 돌고 파안대소를 하는 저것도 대통령인가.
감세정책을 펴겠다더니 지 세금을 지가 깎는 저것도 대통령인가.
그렇게 깎아낸 세금을 메꾸기 위해 공기업을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외국자본에 팔아먹겠다는 저것도 대통령인가.
언론과 친밀하게 지내겠다더니 지 친구들을 몽땅 언론사 사장으로 앉히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언론과 친구를 먹는 저것도 대통령인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보며 한없이 자책했다더니 물대포와 곤봉과 구속으로 뒷통수를 치는 저 소갈머리에 모발이식을 한 저것도 대통령인가.
이것도 삶인가.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되고 비정규직은 불안이 일상이 된 이것도 삶인가.
살려고 올라갔던 망루에서 하룻만에 불타죽은 시신이 되어 숯덩어리처럼
나뒹구는 이것도 삶인가.
지난겨울 죽은 시신을 100일이 넘도록 장례도 못 치르는 이것도 삶인가.
애비를 잃은 아들이, 지아비를 잃은 지어미가, 시아버지를 잃은 며느리가 봄이 다가도록 상복을 벗지 못하는 이것도 삶인가.
갑자기 들이닥친 용역깡패들에 의해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렇게 교복을 잃어버렸던 열아홉살 아들이 끝내는 애비를 잃어야 하는 이것도 삶인가.
철거현장에 연대투쟁하러 간다던 애비를 새벽에 깨웠던 그 아들이 내가 그날 안 깨웠으면 아버지는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자책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이것도 삶인가.
가난한 자들이 꾸는 꿈은 죄가 되는 세상에서 그들은 무슨 꿈을 꾸었던 걸까요.
맛난 걸 먹다가도 식구들이 생각나 싸들고 들어오곤 했다던 칠십이 넘은
노인은 도대체 얼마나 허황한 꿈을 꾸었던 걸까요.
평생 모은 재산으로 호프집 하나 차려 아들 며느리와 함께 꾸려가며
새벽에는 장보고 온종일을 가게를 쓸고 닦는 낙으로 살았다던 그 사람좋게 생긴 노인네는 얼마나 헛된 욕심을 품었길래 불에 타죽고 그 아들은 다리가 부러진 채 애비를 죽인 살인범이 되었던 걸까요.
칠십노인이 꿈꾸었던 나라는 단 하루도 살아보지 않은 새로운 세상은 아니었을 겁니다.
익숙한 일상의 지속. 그런 건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기억처럼 무거운 것은 없습니다.
죽은 자와의 추억만큼 가혹한 것은 없습니다.
단 하나의 실수가 씻을 수 없는 죄가 되기도 하고 못다한 말 한마디가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되돌릴 수 없을 때 세월은 잔인한 얼굴로 막다른 골목에서 우릴 빤히 쳐다보곤 합니다.
박창수 위원장이 살아있을 때. 그땐 사무실이 중앙동에 있었습니다.
늦은 밤 사무실을 나와 길을 건너서 막차를 기다리다 보니 맞은편에 작업복을 입은 박위원장이 취한 채 비틀거리며 사무실을 향해 가는 게 보였습니다.
나를 만나러 온 거라는 걸 알면서도 피곤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그냥 버스를 탔습니다.
무슨 얘긴지 내일 들어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취한 사람 얘길 길게 듣는 거보다 맑은 정신으로 짧게 듣는 게 현명한 거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 얘기를 끝내 못듣고 그는 구속되었고 그리고... 죽었습니다.
129일을 크레인 위에 매달려 있던 김주익 지회장이 전화를 걸어온 날도 그랬습니다.
내려온 다음에 얘기해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밧데리도 아껴야 되는데 싶어서 전화를 그냥 끊었습니다.
그 얘기도 끝내 들을 수 없었습니다.
삶이 전쟁인 자들에겐 내일이 없다는 걸 왜 그땐 몰랐을까요.
그 전쟁에서 오늘 전사할 수도 있는 자들에겐 사랑한단 말도 힘내라는 말도 아끼면 한이 된다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요.
세월의 어느 구비 단 하루도 노동자를 위한 정부는 없었습니다.
10년 동안에도 누군가는 끌려갔고 비정규직은 끊임없이 늘어났고 노동자들은 죽었습니다.
세월의 어느 구비 단 하루도 노동자를 위한 정부는 없었습니다.
나와 별개라 믿었던 그런 세상이 촛불을 켜니 보였을 뿐이고 촛불을
따라가다보니 그런 세상과 맞딱뜨렸을 뿐입니다.
촛불은 그런 것들을 외면하지 말자는 약속이었습니다.
촛불은 그렇게 세상을 바르게 보고 넓게 보게 하는 지혜였습니다.
이명박을 선택한 게 우리들의 욕망이었음을 촛불은 일러줬고 그 욕망이
어떻게 집행되는지를 보여준 게 용산참사였습니다.
여러분.
전국건설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저들을 한번 봐주십시오.
유난히 검은 저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봐주십시오.
우리가 전기세를 내면 당연히 전기가 들어온다는 믿음을 위해 전봇대
위에서 청춘을 보낸 자들의 얼굴입니다.
스윗치 하나만 켜면 밤도 낮처럼 환해지는 대명천지를 위해 감전사고로
사지가 절단되고 전봇대에서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가 된 친구를 가진
서러운 사람들입니다.
담배 피우다 세 번 적발되면 해고를 감수한다는 노예계약서를 쓴 저들의
하루 12시간의 노동에 의해 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21세기 문명을 생산해내는 저들이 일요일은 쉬고 싶다. 담배 피웠다고 짜르는 건 부당하다. 18세기 요구조건을 내걸고 파업을 합니다.
전기를 쓰고 누리는 게 권리라면 저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입니다.
아마 조만간 지하철노조가 파업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하철이 멈추거나 연착되는 잠시의 불편을 용인하지 못한다면 지하철은
역무실도 없고 역무원도 없고 기관사도 없이 운행하는 죽음의 롤러코스터가 될 겁니다.
저들을 철밥통이라고 비난해온 결과 안정적인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세상은 훨씬 잔인해졌습니다.
촛불이 좌파의 역모라고 굳게 믿어서 그런지 어쩐지 이제 좌측통행도 없앤다는군요.
좌우지간이나 좌변기같은 말들도 없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쥐새끼가 시계를 볼줄 알아서 밤에만 설치겠습니까.
어두우니까 설치는 거지요.
촛불로 어둠을 몰아냅시다.
웬만한 빛에는 내성도 생기고 훔쳐서 물고 간 돈도 많은 쥐라 물대포도
쏘고 고춧가루도 뿌린다니까 촛불도 더 강해져야 합니다.
이제 다시 여름입니다. 촛불 들기 딱입니다.
노동자의 모가지를 짜르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자본이 그동안 배터지게
먹은 걸 토해내는 투쟁을 조직합시다.
명박 아우~~~~~웃, 구조조정 분쇄, 비정규직 철폐, 청년 백수 청산을 위해 다시한번 힘차게 일어섭시다!
2009년 5월 1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