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틀에서 이 명박 정권에 참여 하겠다’니? 그것이 과연 참여인가? 황석영 씨는 본인이 무슨 대단한 인물인 줄 착각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명박 정권이 PSI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두고 ’잘 한 일”이라고 하거나 ‘큰 틀’ 운운하는 것이, 본인이 무슨 대국을 두고 있는 양 과대망상증에 걸려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기야 주변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 한국의 문호 운운하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유감이다. 80년대 황석영은 죽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 등장하던 ‘민중’은 실체가 없는 민중, 노동자 없는 민중으로 드러났다.
진보진영에 대해 그렇게 비판하고 걱정 안 해 주셔도 진보 진영 나름으로 엄청 고민하고 있다. 그 고민의 깊이를 소설이나 쓰던 황석영 씨가 헤아려주길 바라지 않는다. 진보진영과 아무런 연관도 없던 사람이 그렇게 외부 관찰자 입장에서 진보진영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가? 그것도 일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더 나아가 이명박 정권을 옹호하겠다고 공언하는 바로 그 순간에 진보진영을 비판하게 되면, 그 담론의 효과가 누구에게 이득이 되겠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는가? 소설 쓰는 사람이 말의 힘을 그렇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문호라는 찬사는 황석영 씨에게 가당치 않은 말이다. 그리고 중도 실용주의라는 말로 이명박 정권의 본질을 가려주게 되면 그야말로 작가가 정권의 들러리로 전락하는 것이고 이러한 행동은 서 정주, 이 문구 등의 계보를 이어 문학이 정치 앞에 굴복하게 되는 큰 결과마저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언론에서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외국순방에 ‘진보진영’의 인사가 수행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을 보고 무엇이 황석영 씨를 진보진영의 인사로 규정하게 만들었는지 참으로 아리송할 따름이다. 황석영 씨가 진보진영의 인사라면 그것은 과거의 유물일 따름이다. 그러나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가 아니라 현재이고 현재 이 땅에서 죽어나가는 노동자 민중이 현재 이 순간에 당하고 있는 고통의 역사다. 한 때는 과감하게 북한도 방문했지만 그 열정은 백 번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치기어린 행동이었을 뿐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북한의 지도부가 아니라 북한의 민중이기 때문이다.
황석영 씨가 진보진영을 두고 진보는 리버럴해야 하는데 진보진영이 구시대적인 행동 습관에 젖어 있다고 비판했단다. 황석영 씨의 이 발언이야말로 황석영 씨의 사고 자체가 얼마나 리버럴하고 자유주의적인 것인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30여 년 전에는 반독재 투사 쯤 되었다가 세월이 지나 이명박 정권의 민중탄압적인 성격을 도외시하고 큰 틀 운운하는 것이, 바로 황석영 씨가 얼마나 자유스러운 자유주의자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진보는 예전에도 진보고 현재도 앞으로도 진보일 때 진보일 수 있는 것이다. 조변석개하는 것은 진보가 아니고 따라서 황석영 씨는 진보진영의 인사가 아니다.
이번 수행방문에서 실크로드도 좋고 한민족의 기원 탐사도 좋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농민, 민중이 사회적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현실은 도외시한 채 과거의 역사를 복원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그것이 황석영 씨의 예의 그 ‘통 큰 틀’인가? 현실은 냉엄하고 역사는 잔혹하다. 치기어린 열정, 리버럴한 정신으로는 리얼리즘의 승리를 쟁취할 수 없고 위대한 작가도 될 수 없다. 위대한 작가치고 지금 이 곳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뜬금없이 과거 타령하는 작가가 있었는가?
황석영 씨는 정치 주변을 어슬렁거릴 일이 아니다. 그 자체가 반민중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황석영 씨는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터이지만 말이다. 애꿎게 황석영 씨의 수행방문만을 꼬투리 잡아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중도 보수 진보 운운할 처지인가? 지금 정세가 민주 대 반민주의 프레임으로 잡히는 시기인가? 민중 대 반 민중의 구도가 확고해지고 있다, 이것이 현재 우리의 정세다. 진보가 귀중한 시기다. 제발 가지가지 작태 좀 그만 봤으면 좋겠다.
해서 충고하고 싶다. 황석영 씨는 통 크게 줌 아웃하거나 오버하지 말고 본업을 줌 인하면서 소설이나 썼으면 좋겠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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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득재 님은 대구카톨릭대 연구자이며 본지 편집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