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태 열사의 빈소가 차려진 대전중앙병원 한 켠에서 용산참사 유족과 박종태 열사 유족이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가족을 가슴에 묻은 유족들이 서로를 보듬었다.
용산참사 유족 이상림 열사의 며느리인 정영신 씨는 9일 대전에서 열린 박종태 열사 추모집회에 참석해 유족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같은 날 용산참사 현장에선 오후 4시부터 용산참사 희생자 추모집회가 열렸다.
많은 이들이 박종태 열사와 용산참사 다섯 명의 열사를 한없이 그리워한 날, 유족들은 마음을 나누는 것을 넘어 검은 상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 같이 눈물을 흘리고, 같은 목소리를 냈다. 추모사를 한 용산참사 유족은 “더러운 세상, 열사의 염원 따라 이명박 정권에 맞서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말했고, 바로 뒤 이어 편지를 낭독한 박종태 열사의 아내 하수진 씨는 “고개 숙이지 마세요. 고인의 유언에 따라 악착같이 싸워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집회가 끝날 무렵 정영신 씨는 박종태 열사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유족을 만나고 싶다며 빈소와 대전중앙병원 정문에서 유족을 기다렸다.
병원 정문 한 켠에서 만난 용산참사 유족과 박종태 열사 유족은 힘을 내자고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유족들은 한참을 밖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디어충청은 용산참사 유족 정영신 씨를 만나 심경을 들어보았다.
▲ 용산참사 이상림 열사의 유족 정영신 씨가 박종태 열사의 빈소를 찾았다. |
용산에서 다섯 분에 이어 한 분의 고귀한 삶이 우리 곁을 떠났어요. 제 일이란 생각이 들어 저절로 발길이 대전으로 옮겨졌습니다. 제 마음이 안 좋아요. 또 다른 누군가가 나와 같은 일을 당해 마음이 아파요. 죄송해요… 바로 왔어야 했는데….
대한통운 노동자들의 싸움, 박영태 노조 지회장의 죽음. 처음엔 잘 몰랐는데 언론을 접하면서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한통운’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그동안 정부는 뭐했고, 각 당들은 뭐했고, 언론은 뭐했는지….
노동자들이 없다면 우리는 물건을 받지도 못하고, 아파트에서 살수도, 자동차를 탈 수도 없잖아요. 노동자가 세상을 만드는데 가장 벼랑 끝에 있는 사람이 노동자에요. 끝내 사람까지 죽고…. 정말 원망스럽습니다. 말로만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해요.
박종태 열사의 아내가 편지를 낭독할 때, 눈물을 터뜨리셨어요
마음이 아팠어요. 유족들이 지금 많이 힘들 거예요. 저도 처음에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경찰이 영정 사진 깨는 건 말할 것도 아니고….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박종태 열사 아내, 아이들… 유족에게 위로를 어떻게 해드려야 할지… 어린 아이 둘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는지…. 아이들이 좀 더 자라서 아빠가 자랑스러운 분이란 것을 알았으면 해요. 아내 분이 정말 힘들 거에요. 100일 전의 제 모습 같아요. 힘내세요. 슬퍼하고 운다고 해결 될 문제도 아니고. 이 악물고 싸워야 해요. 와서 보니까 유족 분들이 너무 훌륭하고 잘 하실 것 같아 마음이 좋아요. 서로 연대해야죠.
옆을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응원해 주고 있어요. 서로 힘을 합해 열사의 염원을 이뤄야 해요.
▲ 집회 시작 바로 전, 대한통운 정문 안에서 전경들이 진압 연습을 하고 있다. 이날 8천여 명의 경찰 병력이 배치되었다. |
오늘 집회에 와 보니 어떠셨어요?
전경들 여기 와서 또 보네요.(웃음)
용산참사 분향소(순천향병원) 밖에서 경찰들은 24시간 먹고 자고 해요. 죽이고 싶도록 밉지만 그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지휘관, 아니 더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도 희생당하고 있는 거죠.
그렇지만 지긋지긋 합니다. 바퀴벌레처럼 까만 옷을 입고 어느 곳을 가도 있어요. 제발 ‘민중의 지팡이’ 노릇하러 갔으면 좋겠어요. 이명박 정권이 언제쯤 나도 가정주부로 돌아가게 해 줄런지… ‘민중의 지팡이’ 노릇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정상적인 가정을 돌려주는 일일 거에요.
얼마 전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용산참사 100일을 맞았습니다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어요.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뜻을 굽힐 수가 없어요.
우리는 매일 추모제, 미사 등 많은 활동을 하고 토요일마다 집중 집회를 하죠. 검찰은 1만 페이지의 수사기록 중 3천 페이지를 공개하지 않아요. 재판부에서 공개하라고 했는데 이 나라 검찰이 그것을 어기고 있죠. 검찰은 철거민이 ‘테러리스트’로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정당한 법집행을 했다고 말해요. ‘테러리스트’가 아닐 뿐만 아니라 그렇다면 더더욱 수사기록을 숨길 이유가 없겠죠. 우리는 가난한 철거민일 뿐입니다. 국민들이 증인일거에요.
돌아가신 다섯 분은 100일 넘게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차가운 냉동고에 계십니다. 지금이라도 수사기록을 공개해야 합니다. 재판부까지 무시하며 많은 것을 꽁꽁 숨기고 은폐한다고 해서 진실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요즘은 유족들 중 중, 고등학교 학생들이 아침마다 상식올리고 학교를 가는 모습을 볼 때가 제일 힘들어요. 병원에서 경찰을 뚫고 학교 가고, 다시 그 속을 뚫고 병원으로 오고…. 맘이 아프죠.
많은 분들에게 한마디
용산참사, 대한통운 싸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 나라의 잘못된 정책으로 무고한 서민이 희생된 거예요.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가난한 서민들은 계속 희생되고 탄압받을 수밖에 없어요. 열사 분들의 한을 풀어야 해요. 덮으려거나 주춤해서는 안돼요. 용산참사나 박용태 열사 투쟁이나 정부는 어떤 말조차 하지 않고 공권력만 투입해요. 숨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님에도 숨기려고만 하죠.
제일 슬픈 것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는 거에요. 가끔 용산의 다섯 분의 열사들의 ‘장례가 치러지지 않았냐’ ‘해결 된 거 아니였냐’ 하는 분들도 계세요.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만큼 힘든 게 없어요. 박종태 열사의 죽음도 헛되지 않게 언론에서 많이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유족에게 용기를 주고 관심을 가져야 해요.
그래도 오늘 집회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어요. 박종태 열사가 돌아가실 때는 외로웠을 텐데 지금은 덜 외로울 것 같아요. 우리도 그랬어요. 처음엔 외로웠죠. 서로 힘을 합해 이명박 정권에 맞서 맞짱 한 번 떠 봤으면 좋겠어요.(웃음).
진실은 승리합니다.
(정재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