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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음악가, 예술을 논하다

[인터뷰] 조남은 국립오페라합창단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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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4월 늦추위 찬 공기 속에 보신각에선 비정규직 투쟁사업장들의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조남은 국립오페라합창단 지부장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답답하다."

현재 국립오페라합창단 상황을 풀어놓았다.

"문화체육관광부나 국립오페라단은 합창단에게 해고통보한 2월부터 내내 ‘사회적 일자리’ 창출로 만든 단기 일자리만 제시했다."

  조남은 국립오페라합창단 지부장

합창단 해산과 단원 모두를 해고 통보하기 전날인 2월 3일 국립오페라단과 첫 교섭이 있었다. 첫 협상자리에서 이소영 국립오페라단장은 “국립오페라합창단은 규약에도 없는 유령단체, 위법으로 운영해왔기 때문에 그냥 둘 수가 없다”며 합창단 해체와 집단해고를 통보했다. 대신 “사회적 일자리 ‘나눔과 기쁨’(순복음재단)에 들어가게 해주겠다“고 일자리를 알선했다.

"우리는 그 제안을 받을 수 없었어요. 우리가 싸움을 시작한 이유는 우리가 7년 동안 갈고 닦아 만든 합창단의 존속이었다. 수차례 교섭에서도 우리의 입장은 변함없었다. 또 기껏 소개한 단기 일자리도 월급 80만원이 조금 넘고 4대 보험만 되는, 어떻게 운영되고 얼마나 공연하는지 등 아무것도 없는 빈 백지였죠. 거기 들어가도 우린 1년 뒤 다시 거리로 나와야 하는 거죠."

국립오페라단은 얼마뒤 그 일자리 제안마저 철회했다. 재단 비리로 설립조차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교섭이 시작되면서 이소영 국립오페라단장은 문광부 얘기를 꺼냈다. 합창단 해산은 문광부의 지침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이었다. 문광부에선 되려 합창단 해산문제는 단체기관장의 재량인만큼 문광부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국립오페라단이나 문광부는 ‘다른’ 일자리를 제안했다. 이번엔 국립합창단 연수단원으로 들어가라는 제안이었다. 국립합창단은 4월 14일 사회적 일자리 차원의 1년 단기계약 신입합창단원 채용공고를 냈다.

"4월 9일 오전에 엄성근 문광부 공연예술과 행정사무관을 만났을 때 국립합창단에 사회적 일자리 창출 일환으로 1년 계약직 단원을 모집할거라는 얘기를 들었고 제안 받았어요. 우리에게 힘들게 싸우지 말고 노래해야 하지 않냐면서 오디션 보고 국립합창단 들어가라고 제안하더군요. 근데 이게 1년 단기계약 자리예요."

"이게 벌써 3번째예요. 처음엔 ‘나눔과 기쁨’, 그 다음에 코리아오페라콰이어(문화나눔재단, 김병삼 목사 상임대표)도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단기 일자리, 세번째가 국립합창단 연수단원으로의 제안이었죠. 조건은 똑같았어요. 기본급 837,000원, 4대 보험, 1년 단기계약, 단 오디션을 봐야함."

"우리는 설사 다른 합창단에 들어가도 원직복직한 다음 논의하자고 했어요. 무슨 문광부가 일자리 알선 업체도 아니고. 그리고 그런 일자리도 다 계약직이고, 오디션을 봐야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아요. 우리는 7년을 오페라합창만 했던 예술인인데 우리의 전문성은 전혀 고려를 안하고 있는거죠."


  국립오페라합창단은 2월 10일 합창단 해체 반대와 부당해고 철회를 외치며 국립오페라단 앞에서 농성을 하기도 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싸운 지 60여일 동안 문광부와 국립오페라단은 합창단에게 3번의 일자리를 제안했다. 단원들의 요구는 ‘해고철회하고 원직복직한 다음 논의’였다. 유일한 오페라전문 합창단인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산은 적극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우리는 한번도 일자리를 알선해달라고 싸운 적이 없어요. 우리는 한국의 유일한 오페라전문 합창단이예요. 기본급 70만원에 들쑥날쑥한 일정과 무리한 스케줄에 4대 보험도 안 되는데도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건 '자부심'이예요. 우리는 유일한 오페라전문 합창단이라는 걸 관객도 인정해줬고요. 우리는 합창단이 존속해야 한다고 늘 말해왔어요. 재고해달라고, 오페라 문화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국립오페라합창단은 해고된 뒤부터 무대가 아닌 거리에서 자신들의 노래를 불렀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은 60여일 넘게 싸우면서 거리에서 공연했다. 지난 17일 열린 비정규직 투쟁사업장 촛불문화제도 마찬가지다.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에서 합창단원 누군가가 말을 꺼냈다. “거리에서나마 공연할 수 있다는 것도,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환호하는 것도 기쁜 일이고 감사하지만 요즘은 노래를 할 때가 고통스럽다”고.

왜냐고 묻자 “노래를 하는 사람은 과하게 이야기하면 말하는 것도 조심할 정도로 목소리를 관리해야 하는 사람들예요. 연습을 하루 빠지면 그만큼 표시가 나죠. 듣는 사람은 몰라도 노래할 때마다 내 목소리가 망가져가는 걸 느껴요. 저는 아직 젊고 꿈이 있는데...”

꿈이 뭐냐고 묻자 “성악을 하는 많은 사람이 그렇듯 오페라 주역이죠. 하지만 싸움을 멈출 순 없다. 끝을 보기 전에 그만둘거라면 시작조차 안했다. 그래서 몇몇 단원들과 자주는 못하지만 연습하러 다녀요. 싸움도, 꿈도 포기할 수 없으니까.”

"3월 28일 오전에 마지막 교섭이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이소영 국립오페라단장이 ‘장관한테 다 부탁을 해놨다. 사회적 일자리 제안 받으면 거기 들어가라. 그러면 예산도 편성하고 국립오페라단 공연도 전적으로 맡게끔 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서면으로 지금 한 말을 작성해달라고 요구했더니 오후에 서면용지를 가져와서 보여줬어요. 근데 오전에 했던 말과 전혀 달랐어요. 단기 계약직에 837,000의 월급과 4대 보험만 적용, 공연을 전적으로 맡기지도 않고 상임화 문제도 장담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죠. 그리고는 자기를 믿어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는 문광부나 국립오페라단은 늘 ‘자기를 믿어달라’는 말을 되풀이 한다고 했다.

"15일 문광부 항의방문 갔을 때 만난 도재경 문광부 공연예술과장도 ‘합창단 사태 때문에 문광부 안에서 오페라합창단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됐다. 지금은 당장 예산이 없으니 상임화는 못하고 5~6월에 예산이 생기면 그때 점차 상임화하겠다. 우리를 믿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서면 약속해달라고 요구하자 ‘서면으로 약속하는 건 힘드니 믿어달라’고 하는 거예요. 이소영 국립오페라단장도 마찬가지죠. 구두로 한 얘기와 서면 작성한 내용은 전혀 달라요. 우리는 국립오페라합창단에서 7년을 일하면서 늘 들었던 얘기예요. ‘상임화 해주겠다. 조금만 기다려라. 우리를 믿어달라. 7년을 믿고 기다려온 우리에게 남은 건 합창단 해산과 집단 해고죠."

그는 싸움을 해오면서 예술계에 종사하는 지인들의 우려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공공노조에 이용당하는 게 아니냐, 합창단의 싸움은 지지하지만 공공노조와 함께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등의 우려들. 하지만 그는 아무도 합창단의 싸움을 몰랐을 때, 지지하는 사람조차 없었을 때 손을 내밀어 준 것은 공공노조가 유일했다고 말했다.

"이소영 단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노총이 뒤에서 조종한다는 말도 했는데 말도 안 되요, 공공노조는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와 함께 싸워준 유일한 사람들이예요. "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없어지면 한국엔 오페라 전문 합창단은 전무하죠. 우리는 순수합창과 별도로 오페라합창단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에 기반해 국립합창단 내에 제도를 만들고 운영할 계획을 제시하면 우린 국립합창단에도 들어갈 수 있어요."

추운 날이었다. 바람도 제법 불었다. 이날 합창단은 공연을 위해 옷을 갖춰 입었다. 여성단원들은 쌩쌩 부는 바람에 몸을 오슬오슬 떨었다. 딱히 무대랄 것도 없지만 보신각을 옆에 두고 세워진 방송차 앞에 조촐한 무대가 차려졌다. 공연이 있기 전 무대 옆에 대기하고 있던 합창단은 공연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오른 그들의 표정은 이미 추위는 안중에 없었다. ‘오 해피데이’, ‘동백꽃’을 불렀다. 사람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저희 합창단을 상임화해서 전문 오페라합창단 1호가 되고 그 다음에 2호, 3호, 4호...점점 더 많아졌음 좋겠어요"

"지금까지 문광부와 국립오페라단이 거짓말 한 게 가장 속상해요. 우리가 큰 걸 바란 게 아닌데. 처음부터 원직복직만 됐으면 이런 싸움 안했죠. 떳떳하게 직장에서 일하고 싶은 거예요. 지금에 와서 보면 힘있는 사람은 약한 사람 지배하려고 하고 예술가의 마음은 알아주지 않고 이런 세상이 정말 안타까워요.

다행히 저희 단원들이 많이 힘들지만 잘 참아주고 열심히 하니까 아직 희망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단원들이 노래할 때 행복해하던 그 마음, 관객의 박수를 받을 때 벅찼던 감동, 예술가의 마음으로 7년을 왔는데 그게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음이 짓밟힌다는 게 너무 아프다.

문화가 정치에 휘둘리는 거 같아요. 예술가들의 일자리는 점점 없어지고, 한국에서 예술이 설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몇 만명의 예술전공자 졸업하는데 수용할 수 있는 건 몇 백명밖에 안되죠. 저희 합창단을 상임화해서 전문 오페라합창단 1호가 되고 그 다음에 2호, 3호, 4호...점점 더 많아졌음 좋겠어요. 그래서 노래를 사랑하는 젊은 친구들이 노래할 수 있게. 그때까진 싸워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