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그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사람들은 또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이 사회에서 음악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수많은 질문을 안고 30일 밤 주한독일문화원으로 향했다. 주한독일문화원은 서울 후암동 남산시립도서관 앞에 있다.
‘음악과 권력’
왠지 확 끌리는 주제였다. 강연자는 요 며칠 언론의 문화면에 한번씩은 등장했던 지휘자 알렉산더 리브라이히였다. 리브라이히는 현재 뮌헨쳄버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이다. 그는 2011년부터는 윤이상 작곡가를 기리며 시작한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으로 내정됐다. 이번에도 통영국제음악제 개막음악제를 위해 방한했다. 이경분 교수도 함께였다. 이경분 교수는 독일에서 음악학을 전공했다.
▲ 지휘자 리브라이히 |
권력을 가지려는 사람이 많은 힘을 쏟는 영역이 음악을 비롯한 예술분야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세계적인 교향악단을 만들겠다며 정명훈 씨까지 영입하고 예술계 경력이 없어도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이면 각종 공공 예술기관장에 앉히는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베를린 필하모니오케스트라가 1940년 5월 18일 처음으로 벨그라드에서 행사를 했다. 이 오케스트라는 1939년 3월 15일 프라하에서 연주했고, 그리고 오슬로와 코펜하겐에서도 독일침략이 있기 며칠 전에 연주회를 했던 바로 그 오케스트라이다. 118명의 독일 음악가들이 도착하면 곧 정치적, 군사적 공격이 뒤따른다는 끔직한 암시를 뜻한다. 감동적인 음악소리 뒤로 탱크와 군용트럭이 땅을 진동하며 구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경분 교수가 인용한 글이었다. 이경분 교수는 “음악만 따로 보면 전혀 흠잡을 수 없지만 당시 전쟁의 맥락에서 보면 음악은 나치정부의 살인과 폭력의 야만을 보지 못하게 하는 연막탄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음악은 왕을 위해서든, 수도사를 위해서든 또는 독재자를 위해서든 그들의 정치적 시스템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여했다. 동시에 음악은 변증법과 다양성을 지향했고 현명한 쪽에 서려고 했고, 소비적 메커니즘에 거리를 두고 자기 성찰을 해왔다. 이것이 없었으면 음악은 (어떤 종류의 정치선동이든지) 정치선동에 주체성 없이 끌려가기만 하는 빈 깡통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리브라이히의 말이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해 자신의 생산물을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리브라이히는 “적극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선 기데온 클라인의 현악 3중주 WV23을 연주했다. 한국에서 처음 연주하는 곡이었다. 유태인인 기데온 클라인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기 9일 전, 테레지엔슈타트 강제수용소에서 완성한 곡이었다. 테레지엔슈타트 강제수용소에는 당시 유태인 음악가들의 비밀조직이 만들어져 활동했다.
▲ 기데온 클라인의 현악 3중주를 연주하는 뮌헨쳄버오케스트라 단원들. |
리브라이히는 기데온 클라인의 죽음을 증언한 수용소 동료의 말로 마무리했다.
“친위대 SS대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 모두는 나체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텅 빈 공간에 물건이라고는 오로지 피아노 한 대가 덩그러니 있었다. 포로 중에서 누가 피아노를 칠 수 있는지 물었고 클라인이 손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나체로 앉아서 자신의 예술음악 레퍼토리 중 뭔가를 연주했다. 이때 클라인이 SS 취향에 맞는 왈츠 같은 음악을 연주했다면 어쩌면 생명을 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비참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영혼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