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자 서모 씨는 최근 서울시의 저소득층 지원 사업인 '희망플러스 통장'을 신청하려 했다. 그러나 고령으로 무직인 서 씨는 통장을 신청할 수 없었다. 서 씨는 직장에 다니는 아들에게 통장 가입을 권유했다. 서 씨의 아들 역시 자격조건이 안 된다고 했다. 동사무소는 서 씨가 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여서 아들도 신청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시가 "빈곤의 대물림을 끊겠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희망플러스 통장' 사업이 그 취지와 달리 정작 기초생활수급자 등 빈곤층에게는 있으나마나 한 사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희망플러스 통장'은 서울에 사는 주민이 가입해 3년동안 5~20만 원을 매월 저축하면, 서울시와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이 같은 금액을 추가로 지원한다. 예를 들어 가입자가 매월 5만 원 씩 저축하면 3년 뒤 원금 180만원과 지원적립금 180만원을 합한 360만원(+이자)을 받는다.
까다로운 '희망통장' 빈민들 신청 엄두 못 내
그러나 서 씨처럼 빈민들이 이 통장에 가입하기란 어렵다. 가입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차상위 복지급여자여야 한다. 가구의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의 150%(4인가구 기준 약 198만원) 이하여야 한다. 여기에 최근 1년간 10개월 이상 정기적인 근로소득이 있고, 현재 재직 중이어야만 한다.
국내 기초생활수급자는 전체 155만여 명(2007년 기준)이고, 이중 20만5천명이 서울시에 산다. 특히 보건복지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수급자의 10명 중 7.8명은 실직 상태다. 직업이 있더라도 80%는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 1년에 10개월 이상 정기적으로 일하는 서울 시민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서울시가 내건 신청자격은 이 뿐만이 아니다. 동일 세대 중 채무불이행(신용불량)자도 없어야 하고 가구 부채가 5천만 원 이상이어서도 안 된다. 서 씨 아들은 나머지 자격은 됐으나 이 조건에서 퇴짜를 맞았다.
채무불이행자 수가 정부 추산으로도 780만 명에 이르는데 '가족 중 채무불이행자도 없어야 하고, 빚도 없어야 한다'는 서울시의 조건을 맞출 수 있는 '빈곤층'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확률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채무문제가 곧 빈곤문제"
이혜경 금융피해자연대 '해오름' 활동가는 "채무문제가 곧 빈곤문제이고, 채무가 없는 빈곤 가구가 없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서울시의 이번 정책은 오히려 빈곤층에게 화살을 돌리는 생색내기용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서울시가 채무를 빈곤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여전히 개인의 책임이나 도덕성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지난달 19일부터 30일까지 '희망플러스 통장' 가입 신청을 받았다. 시는 신청서를 낸 3천여 명 중 심사를 통해 1천명을 1차로 선정할 예정이다. 시는 오는 5월께 추가 지원자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