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당일 희생자 시신을 부검하는 '순발력'을 보이면서 2주 동안 경찰, 용역업체, 철거민 쪽을 두루 소환해 조사를 벌이고 용산경찰서 정보과와 서울시경까지 압수수색한 결과치곤 초라하다.
4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사고 당일 용산소방서 화재진압 장비들이 농성진압에 사용됐다며 용산소방서 무전 녹취록을 공개했다. '소방기본법'과 '경찰관직무집행법' 위반이다. 5일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한다던 검찰은 하루 늦춰 6일 오전 11시로 발표를 연기했다.
사건 초기 김유정 민주당 의원은 '경찰이 용역업체와 합동으로 진압작전을 벌였다'는 증거로 경찰의 무전내용을 공개했다. 검찰은 그 전까지 용역업체의 존재조차 잊은 듯했다. 검찰은 부랴부랴 김 의원의 지적 다음날 경찰 무전기록을 확보하고 용역업체 직원도 소환했다.
그러나 검찰은 "오인 보고"라는 석연찮은 경찰 변명에 손을 들어줬다. 검찰은 3일 낮까지도 "용역업체가 진압작전에 동원된 적 없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3일 밤 MBC <피디수첩>이 이 의혹을 증거 동영상과 함께 재차 보도하자 4일 용역업체 직원을 재소환하면서 당황해 했다. "망루에서 떨어져 땅에 있던 사람이 망루 안에서 불탄 시신으로 발견된 이유"에 대해서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하다가 <피디수첩> 방영 이후 조사할 수밖에 없게 됐다.
검찰이 자발적으로 수사한 쪽에선 아무 것도 안 나왔다. 참사 다음날 검찰은 "전철연이 용산 철거 세입자 6명에게 1천만원씩 모두 6천만 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계좌추적을 벌이고 용산 철대위원장과 남경남 전철연 의장 간의 통화내역도 조회했지만 특이점이 없었다. 남경남 전철연 의장이 "단돈 10원 한푼 받은 적 없다"고 검찰을 향해 반박해도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검찰은 지난 1일 "계좌추적 결과 전철연과의 금전관계를 '아직' 파악 못했다"고 발표했다.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 내정자를 제외한 경찰 고위직들도 줄줄이 소환했지만 책임을 물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검찰은 지난달 31일 "김석기 내정자가 작전을 지시했다는 증거를 못 찾았다"고 밝혔다. 3일엔 "경찰특공대 진압작전 과정과 지휘체계를 조사했으나 뚜렷한 위법 증거를 발견 못했다", "김석기 내정자를 비롯한 경찰에 책임 묻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이 수사하는 방향에선 뾰족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매번 언론과 진상조사단, 야당 국회의원이 증거를 들이밀면 그때서야 "조사해 보겠다"고, 그 다음엔 "조사해 봤는데 별거 없다"는 식이다. 검찰은 의혹을 품고 수사방향을 잡고 증거를 확보하고 이를 공개하는 모든 수사활동에서 비껴서 있다. 검찰의 존재 이유를 묻고 싶다. 수사가 이 지경이라면 검찰은 이젠 초기 수사방향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야 한다.
검찰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보낸 편지 한 통으로 그에게 쉽게 면죄부를 줬다. 그런 검찰이 이번엔 김석기 내정자에게 서면 질의서를 보냈다. 사고 당시 청장실에 무전기를 두고 실시간으로 작전상황과 진압상황을 체크했는지의 여부를 묻기 위해서다. 김석기 내정자는 "청장실에 무전기는 있었지만 켜 놓진 않았다"고 답변했다. 이건 수사가 아니다.
인권단체는 "2차 발화가 있기 전 왜 진압을 멈추지 않았나", "망루에서 떨어져 생존했던 사람이 왜 옥상에서 불탄 시신으로 발견됐나" 등 '8대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이 "편파 왜곡 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용산참사 수사는 절대 편파수사가 아닙니다"라고 적극 해명했던 검찰, 서울 한복판에서 살인진압으로 경찰 한 명과 시민 다섯 명이 죽었는데 경찰은 책임이 없다 하고 철거민은 구속했다. 편파수사가 아니라는 항변이 공허하다.
용산참사 관련 검찰 수사일지
1월 20일 서울중앙지검 용산참사 관련 수사본부 구성(본부장 정병두 1차장검사)
1월 20일 사망자 시신 부검
1월 20일 신윤철 제1제대장 등 특공대 관계자 6명 소환조사
1월 21일 국과수, 서울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용산서 감식반 동원 현장감식
1월 21일 “전철연, 용산철거민 사전 농성교육 정황 확보”
1월 21일 “경찰은 망루에 인화물질 있는 것 알고 있었다” 발표
1월 22일 “용산참사 화인은 화염병” 잠정결론
1월 22일 농성자 6명 구속영장 청구 -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죄
1월 22일 백동산 용산경찰서장 소환조사
1월 23일 “용산철대위와 전철연 관련성 규명에 수사 집중”
1월 23일 “용산참사 편파수사 아니다” 해명
1월 23일 이송범 서울청 경비부장, 이성규 정보관리부장 소환조사
1월 23일 ‘망루 설치 연습’ 인천 도화동 철대위 사무실 압수수색
1월 23일 민주당 김유정, “용역업체와 경찰 합동 진압작전” 무전내용 공개
1월 24일 용역업체 동원 의혹 관련 경찰 무전기록 확보
1월 24일 김수정 서울경찰청 차장 소환조사 - 경찰특공대 조기 투입 이유, 참사 전날 경찰 대책회의 내용 추궁
1월 25일 용역업체 직원 2명 소환조사
1월 25일 철거용역업체 H사 본사와 용산사무소 압수수색
1월 25일 백동산 용산경찰서장 재소환
1월 26일 김수정 서울경찰청 차장 등 경부관급 간부들 재소환
1월 28일 용산철대위 농성자금 계좌추적
1월 28일 이충연 용산철대위원장 중대병원서 체포
1월 30일 “남경남 의장-이충연 위원장간 통화내역 조회 결과 특이점 없다”
1월 30일 이충연 용산철대위원장 구속
1월 30일 “남경남 의장 충돌없이 체포하라” 경찰에 지시
1월 30일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과, 경비과, 용산경찰서 통신계 압수수색
1월 31일 “김석기 작전지시 증거 못 찾았다”
1월 31일 김석기, 용산진압 사실확인서 검찰에 자진 제출
2월 1일 “전철연과 금전관계 파악 못했다”
2월 2일 발화 지점 잠정 결론 - 망루 1층
2월 2일 소방당국, 검찰의뢰로 물과 섞인 시너 발화 여부 실험
2월 3일 칼라TV, 사자후TV 압수수색
2월 3일 내부 결론 도출 - “농성자 화염병이 시너에 옮겨 붙으며 순식간에 참사로 이어졌다” “경찰특공대 진압작전 과정과 지휘체계 조사했으나 뚜렷한 위법 증거 발견 못해” “용역업체 동원된 적 없다” “김석기 내정자를 비롯한 경찰에 책임 묻기 어렵다”
2월 3일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에 서면 질의서 발송 - 사고 당시 청장실에 무전기를 두고 실시간으로 작전상황과 진압상황을 체크했는지 여부(김청장, “무전기 안 켰다”)
2월 4일 <피디수첩> 보도 관련 수사 입장 발표 - 용역업체 직원과 경찰 소환조사
2월 6일 최종 수사 발표(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