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현장에서 살아난 철거민과 지역 주민들이 그동안 용역깡패들에게 시달려온 사실들을 하나하나 증언했다. 주민들의 입으로 드러난 ‘용역깡패의 진실’은 이랬다.
참사 당시 망루에 있다 4층 창문으로 뛰어내린 000 씨에 따르면 역시 발화 시점에 ‘불 붙은 화염병’은 없었으며, 편의점을 하던 000 씨와 포장마차를 하던 000 씨는 재개발 시작 이후 용역의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는 25일 오후 2시 합동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용산 철거민이 밝히는 용역 깡패의 진실’을 밝혔다.
증언 요약
000(남. 30대)
침탈 당시 경찰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경찰특공대가 건물로 바로 진입했다. 살수차가 최루액이 담긴 물대포를 5-6군데에서 옥상과 4층 쪽으로 쏘았다. 옥상으로 피신했고 옥상에서 크게 저항하지 못했다. 살수가 뿌려졌고 특공대가 올라오는 상태였기 때문에 크레인 컨테이너를 통해 특공대가 진입할 때 옥상에는 발목 이상 물이 찼다.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20여 명이 망루 쪽으로 대피했다.
특공대가 컨테이너를 통해 옥상에서 내렸다. 망루로 진입해서 망루 문을 열고 들어왔다. 거기 계셨던 분들이 망루 2-3층에 나뉘어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물에 젖어 너무 추워 떨고 있던 상태였다. 화염병도 불붙지 않았고 라이타도 젖었다.
나는 3층에 있었다. 2층에 계신 분들이 특공대에 의해 진압됐고, 진압 과정에 진압봉이 부러질 정도로 맞은 분도 계신다. 3층으로 올라오는 걸 몸싸움을 하면서 저지했다. 경찰은 빠졌고, 나머지 10-12명 정도는 4층으로 올라갔다. 경찰들을 4층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고, 2층까지 내려가 특공대가 있는지 확인했다. 2층에 인기척이 없어 빠진 걸로 알았다. 2층 바닥은 주저앉아 위험한 상태였다.
4층으로 올라오자 크레인이 망루를 쳐 망루가 15도 정도 기울어졌다. 뒤쪽으로 넘어지면 건물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상태였다. 공포스러웠고 다른 분들도 지지대를 잡아 의지하는 상태였다. 4층은 불이 나거나 하지 않았다. 몇 차례 치고 나더니 뚫고 들어오려는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분이 막으려고 막대기를 들고 있었는데 특공대가 올라오지는 않았다. 무기를 들고 있거나 하지 않았다.
4층으로 올라왔으면 바로 진압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건물 밖을 컨테이너가 치고 나서 망루 창문 2개에 물대포를 쏘았다. 하얀 가루가 최루가스인지 소화분말인지 그게 꽤 길게 터져나왔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숨을 쉬지 못해 창문 쪽으로 숨을 쉬려고 머리를 내밀었다. 경찰특공대가 봤다면 진압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숨을 제대로 못 쉬었고 너무 추웠다. 어두웠고 공포스러웠다. 창문으로 물대포 들어오는 상태였다.
그 이후 아래 층에서 뜨거운 열기가 확 올라왔다. 화재가 난 걸 순식간에 알 수 있었다. 너무 찰라였다. 뜨거운 열기와 연기가 순식간에 가득차 바로 뛰어내리지 않으면 안 될 찰라였다. 여기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으로 내려가려다가 열기가 올라와 뜨거워 내려가지 못하고 바로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뛰어내리지 못하신 분들이 돌아가셨다. 뛰어내린 분들도 돌아가신 분이 있다. 저는 살았는데 비명소리가 들렸고, 건물 무너지면서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아수라장이었다. 보이는 건 없고.. (울먹임)
저는 젊어서 살았는데 밑에 계신 분들은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경찰이 강경일변도로 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그 사이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쉬지 않았다. 경찰이 원망스럽고 돌아가신 분들, 열사분들... 안타까울 뿐이다.
000 (남. 40대)
첫날(19일) 새벽 5시 좀 넘어서 4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고 난 다음 30분 정도 지나서 경찰들이 건물 주위를 에워쌌다. 잠시 후 용역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상당히 위협을 느낄 정도로 건장하고 그런 사람들이 1층으로 들어와 있었다.
1층 쪽에서 해머 소리,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이후 불을 피워서 연기가 올라왔다. 처음에는 나무나 가구 같은 재료를 태우는 냄새가 올라왔다. 소방차가 와서 일부를 진압하고 갔으나 반복적으로 불이 진화되었다가 다시 발화 되었다. 소방수의 진압 과정이 너무나 형식적이었다. 잔불 정리도 안 해 살수가 와서 물을 뿌리고 가도 연기가 나 4층에서 호흡하기 어려웠다.
제일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런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면서 해머 소리를 쿵쿵 내는 것이었다. 위에 있던 사람들이 상당히 긴장했다. 나중에는 연기가 역겹고 지독하게 났다. 바람이 불면 건물 위로 올라오는 연기가 꺼진 상태라 호흡하기 힘든 상태였다. 그때 타이어 태우는 연기가 심하게 났다. 불도 상당히 세게 강하게 번진 것 같았다. 4층에 있던 분들은 숨쉬기 힘든 상황이 계속되었다.
사회자
살인진압이 있기 전인 19일 낮부터 20일 새벽 까지 용역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3층에서 불을 지폈고, 소방관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영상 자료가 확보되어 있다.
소방관은 충분히 진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2층에 있는 사람들이 추위 때문에 불을 지펴놓았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2층에는 농성자가 없었다.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새벽까지 2층에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하등 상관없는 지나가는 행인이었고, 불을 지폈다면 소방관이 제지했겠지만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미루어 용역반원으로 보인다. 폐타이어와 나무목재를 태워서 진압을 하기 전까지 실질적인 위해를 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000 씨 (여. 40대)
저는 용산4지구에서 24시간 편의점을 운영했다. 2008년 6-7월 경 아르바이트 아줌마가 겪은 일이다. 어느날 아줌마에게 일을 맡기고 집에서 잠을 자는데 연락이 왔다. 나와보니 아줌마가 물건을 정리중인데 용역 두 명이 술에 취한 채 아줌마를 가운데 놓고 서 있었다.
용역은 양쪽에 서서 ‘전철연하는 *같은 년 집이냐. 너도 당장 나가라. 너도 전철연이냐’ 라며 협박했다. 아줌마는 가만 들었으니 양 사이드에서 좁혀오면서 계속 험한 말을 했다.
다른 손님이 들어오니 여기서 물건을 사지 말고 다른데 가서 사라며 손님을 내보냈다. 손님들이 차마 나가지 않고 왜 그러느냐고 하니 ‘여기는 전철연의 씨를 말려야 한다’고 말했다.
112에 신고를 했는데 신고를 받은 경찰은 신고한 지 2-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112를 계속 때리니 순찰차가 왔다. 용역은 사무실로 도망갔다. 아줌마와 용역 사무실로 갔는데 경찰은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용역에게 나오라고 말만 하며 두 시간을 허비했다. 비는 계속 내렸다.
112를 해서 안돼 시경에 전화하니 관할에 신고하라고 미뤘다. 시간이 흐른 상태에서 순찰차 2대가 들아왔다. 더 왔는데도 같은 상황이다. 용역을 왜 안 잡아가느냐고 하자 경찰 아저씨는 자료를 확인해줄 수 있느냐고 했다. CCTV를 경찰에게 보여줬다. 그러니 어떻게 하지 못하고 용역 사무실로 갔는데 좋게 나오라는 말만 했다. 경찰이 들어가지 않아 아르바이트 아줌마가 난리를 쳤다.
4시간 쯤 지난 후 용역이 나와서 파출소로 갔다. 한 용역이 수배 내린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 아줌마를 데려갔는데 용역들이 아줌마한테 무릎을 꿇고 각서를 썼다. 아줌마는 그걸로 끝냈다.
2-3일 후 그 용역들은 가게 밖에 내놓은 테이블 양쪽에 앉아서 들어오는 손님에게 딴 데 가서 사라며 욕지꺼리를 했다. 죽여버리겠다고 하자 손님이 들어오지 못했다.
우리는 너무 무서워서 지역 식구들끼리 규찰조를 만들었다. 우리가 돈이 없어 폐휴지나 깡통을 모아 팔아서 돈을 마련하고 다녔다. 용약들이 ‘거지같은 년아, 빨리 안 꺼지냐’ 계속 욕지꺼리를 했다. 하루는 팬티만 입은 용역이 나타났는데 처음에 한손에 뭘 들었는데 칼인줄 알았다. 회를 친다고 그랬다. 112 신고하니 30분이 지나서 왔다. 나중에 보니 목검이었다.
위협을 가하려고 욕도 하고 성희롱 발언도 많이 했다. ‘너 ****’라고 말하고, 어떤 남성은 캔맥주 마시면서 쳐다본다는 이유로 폭행했다. 아무런 이유없다. 경찰, 용역 깡패와 조합이 한 통속이다. 용역이 신고하면 2-3분 만에 온다. 우리가 하면 빨리오면 30분, 1시간이고, 배회하기만 하고 도움이 되지 않았다.
000 (여성. 40대)
저도 용산4지구에 산다. 재래시장에서 포장마차를 하고 있다. 아침 12시에 나와서 새벽 4시까지 장사한다.
시장이어서 확 터져있다. 포장마차에서 손님이 뭘 먹으면 지나가며 시비를 햇다. 돈도 못받고 손님을 보내고 그런 실정이다. 애기아빠가 장애 3급인데 이사가자고 한다. 무서워서 못살겠다고.
이사가는 상황에서 시장에서 장사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장사를 할 수가 없다. 먹고살 길이 없다. 시장 난장판에서 얼굴이 다 팔려 ‘저년 시장 포장마차 하던 년이다’ 그래서 거리를 다닐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