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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수영 김진찬 학습지 교사부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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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에 구세군 냄비가 세워졌다. 12월이다. 바람이 매서워 옷깃을 여미게 한다. 오늘은 학습지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러 상암동으로 간다.

가는 내내 구몬학습 교사였던 이정연 씨가 떠올랐다. 학습지 회원을 늘이라는 회사의 강요에 시달리다 1천5백만 원의 빚을 남기고 숨진 이정연 씨. 2004년의 일이었다. 이정연 씨는 국어, 영어, 수학 등 7개 과목을 맡아 204개의 수업을 하면서 한 달에 250만 원을 벌었다. 이정연 씨가 숨진 뒤 인수인계 받은 교사의 수업은 47개에 불과했다고 한다. 150개가 넘는 수업은 어디로 갔을까? 134개의 수업은 이정연 씨가 직접 돈을 낼 수밖에 없었던 가짜 회원으로 밝혀졌다. 학습지 회사의 무리한 실적 강요에 이정연 씨는 매달 자신의 돈을 2백만 원 가까이 회사에 바치고 있었다.

  가는 내내 구몬학습 교사였던 이정연 씨가 떠올랐다./참세상 자료사진

처음에는 현금서비스를 매달 1백만 원씩 받아가며 실적을 유지하였다. 현금서비스조차 여의치 않자 나중에는 사채를 빌려 썼고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미련스럽게 왜 빚까지 내가며 가짜회원을 유지했을까? “회원이 줄어들면 면담과 독촉전화를 통해 압박을 하고, 심지어 인신공격을 하며 모멸감을 주거나 가정사까지 들먹이며 실적을 강요하니 어쩔 수없는 현실이다”고 당시에 이정연 씨 동료들은 털어놨다. 이정연 씨의 죽음은 세상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4년이 훌쩍 지났다. 2008년 학습지 선생들은 어떨까? 얼마나 바뀌었을까?

눈웃음을 쉬지 않고 달고 있는 김진찬 씨를 상암동 한솔교육 앞에서 만났다. 먼저 학습지 교사의 하루에 대해 물었다.

김진찬 씨는 2006년 3월에 한솔교육 경서플라톤 지점에 입사를 했다. 경서플라톤 지점은 초등학생들에게 독서토론과 논술을 지도하는 수업을 한다. 일주일에 3일은 오전 9시 30분까지 출근을 해서 월별 실적, 평가 브리핑을 갖거나 ‘전수 교육’을 한다. 전수 교육이란 학생들을 지도할 내용을 교사들끼리 모여 모의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자신들이 맡은 지역으로 수업을 나간다. 보통 1시부터 수업을 진행한다.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이 집집마다 돌며 수업을 하다보면 저녁 9시를 넘기기가 일쑤다. 보통 40분 씩 수업을 하고 이동하는 시간이 20분 남짓 된다. 시간이 나면 학부모와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상담을 한다. 집에 들어오면 10시 30분. 늦은 저녁을 먹고는 다시 컴퓨터에 앉아 회사 전산 시스템에 접속을 하여 그날 수업한 내용을 작성하여 보고한다. 다음 날 수업 준비를 하다가 잠자리에 들면 새벽 1시다. 사무실에 출근하는 날은 12시간 이상 근무하는 셈이다. 이래서 번 돈이 한 달에 1백50원을 오락가락한다. 2백만 원을 버는 동료도 있다. 그만큼 수업을 많이 해야 하니 이런 동료는 밤 11시까지 수업을 한다.

  학습지 노동자 김진찬 씨 [출처: 한솔교육지부]

하루 일과를 보면 여느 직장인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김진찬 씨는 노동자가 아니다. 지각을 하면 시말서를 써야 하고, 몸이 아파 결근을 하면 병원 진단서 제출을 강요받지만 노동자가 아니란다. 연월차 휴가나 생리 휴가도 없다. 국민연금이나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물론 수업을 하러 다니다 다치는 일이 생겨도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끊임없이 회사로부터 실적을 강요받고, 업무를 보고하고, 지휘통제를 받으며 일을 하지만 노동자가 될 수 없다. 잔업 수당이나 휴일 수당은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 김진찬 씨가 회사에서 받는 돈은 ‘월급’이 아니라 수업을 하는 횟수에 따라 나오는 ‘수수료’일 뿐이다.

학습지 교사로 일하는 사람은 전국에 십오만 명에 이른다. 대부분이 정규직이 아니다. 특히 학습지 시장의 중심을 차지하는 대교, 구몬, 웅진, 재능, 한솔에서 정규직 교사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3조원에 달하는 학습지 시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불린다. 교사들이 발바닥이 닳도록 돌아다니며 돈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교사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교재에 끼여서 팔리는 수업비에 대한 수수료가 고작이다. 반면에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의 100대 부호에는 대형 학습지 회장들이 줄줄이 들어있다. 재산의 액수가 7천억이니 8천억이 하는 소리는 꺼내기조차 싫다.

구몬교육의 이정연 씨를 죽음으로 내몬 부당영업 관행은 이제 사라졌을까?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지부 오수영 씨에게 물었다. 불행히도 오수영 씨는 고개를 젓는다.

학습지를 하다가 고객이 중단하는 ‘휴회’나 실적을 위해 만들어진 ‘가짜 회원’이 현장에는 아직도 여전하다고 오수영 씨는 힘주어 말한다.

“노동조합 조합원이 있는 지역 같은 경우에는 개선이 되었지만, 조합원이 없을 경우에는 휴회나 가짜 회원을 안고 있는 교사들이 아직도 많아요. 회사에서 실적을 통제하고 강요하니 교사들이 별 수 없이 자신의 돈으로 메워 가며 회원을 유지할 수밖에 없죠.”

물가가 많이 상승했는데 교사들이 받는 수수료도 올랐냐고 묻자 오수영 씨는 피식 웃는다.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지금도 평균 수입은 한 달에 백오십만 원 남짓 이예요. 한국 부자 100위 안에 구몬이나 웅진, 교원 회장들이 있지만 학습지 교사들의 실제 수입은 물가 뛰는 것에 비하면 갈수록 형편없이 낮아지고 있어요. 학습지 교사들이 오래하지 않고 이직을 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일은 고되지 수입은 적지...... 정말 버티기 힘들어요.”

'주5일 근무, 재택근무, 출퇴근 자유, 고소득 보장' 한 학습지의 교사 모집 광고 내용이다. 학습지 교사 1년을 하고 나서 광고의 4가지 내용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충족되기를 바라기 보다는 ‘골병과 빚, 스트레스’가 남지 않으면 다행으로 여겨야 할 거다.

  끊임없이 회사로부터 실적을 강요받고, 업무를 보고하고, 지휘통제를 받으며 일을 하지만 노동자가 될 수 없다./참세상 자료사진

학습지 교사들은 방문 수업을 하다 보니 얼음판에 미끄러지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다치는 일이 많다. 말을 많이 하니 성대 결절이 생기기도 한다. 차량으로 이동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수업 시간에 쫓겨 제 시간에 식사를 하지 못하니 위장병은 수업 교재처럼 몸에 달고 살아야 한다.

올해 7월부터 학습지 교사들도 산재보험이 적용되어 혜택을 받게 되지 않았냐고 물었다. 오수영 씨의 목울대가 심하게 떨렸다.

“산재보험? 실시야 됐죠. 그런데 임의 탈퇴가 가능해요. 비용도 회사와 교사가 반반씩 부담을 해야 하고요. 회사에선 상해보험에 가입하는 게 더 낫다, 산재보험을 하면 교사들도 비용을 부담하니 수입이 줄지 않느냐, 그러며 자진 탈퇴를 강요해요. 어떤 지역은 아예 강제로 일괄적으로 탈퇴를 시키고요. 지금 가입한 사람이 10%나 될까 모르겠어요. 사탕발림하는 정책만 내밀게 아니라 학습지 교사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게 먼저에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상 학습지 교사의 권리는 찾을 수 없어요.”

사무실에 출근을 하니 노동자라고 학습지 교사가 말하면, 회사는 출근을 강제했던 내규나 지침이 있는 서류를 없애버린다. 물론 지침이 없어도 학습지 교사는 출근을 해야만 한다. 회사가 주는 판촉물을 받아서 일을 하니 노동자라고 하면, 회사는 판촉물을 교사들에게 단돈 100원씩 받아 파는 시늉을 하며 안겨주고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회사는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려고 발악을 하지 교사의 당연한 권리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려고 한다. 학습지 교사가 노동자가 되는 길은 멀기만 하다.

김진찬 씨는 학습지 교사에게 회사가 정당하게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말을 교사 간담회 때 하였다는 이유로 회사에 ‘찍혔고’,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에 가입하여 대의원에 출마를 하자 회사로부터 2007년 2월 26일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재계약을 1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때였다. 김진찬 씨는 자신이 해고된 이유는 “부당한 수수료 지급 문제를 제기하여 다른 동료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은 것과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는 것 말고는 없다”고 한다.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 김진찬 씨는 학습지 교사의 권리를 찾으려는 406일간의 외롭지만 의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2008년 4월, ‘6개월간 별도의 업무를 부여하여 자질을 확인한 뒤 재계약을 체결한다’고 회사와 합의를 했고, 김진찬 씨는 한솔교육의 자회사인 에듀베이스에서 6개월 동안 근무를 하였다. 그리고 약속한 6개월이 지나 원직복직을 요구하였지만 한솔교육은 김진찬 씨가 다시 학습지 교사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김진찬 씨는 교육 사업을 하는, 그것도 양심적인 기업임을 선전하는 한솔교육 변재용 대표의 새빨간 거짓말에 분노를 참지 못한다.

이제 36개월 된 아들 채운이를 보면 다시 한솔교육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게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고 싫다. 하지만 김진찬 씨는 당분간 아무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학습지 교사로 당당하게 다시 서는 게 딸에게 부끄럽지 않는 아빠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김진찬 씨의 부인은 재능교육의 오수영 씨다. 조합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오수영 씨는 회사가 단체협약을 파기하고 조합을 인정하지 않아 지금은 상근비를 받지 못한다. 오수영 씨도 학습지 교사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간다. 배고픔은 뒤로 한 채.

오수영 김진찬 부부가 이 겨울 춥게 지내야 할 방이 떠오른다. 채운이의 초롱초롱할 눈망울도 그려진다. 하지만 이들 가족이 세상에 피워 낼 아름다운 실천을 생각하니 가슴이 따뜻해진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구세군의 종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오수영 김진찬 부부는 학습지 교사의 밝은 내일을 위해 희망의 종을 울리고 있다. 누군가 이들의 방에도 훈훈한 사랑을 넣어주었으면 한다. 이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도록.
덧붙이는 말

이글은 월간 작은책에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오도엽 작가는 구술기록작가로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의 구술기록작업을 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목소리를 찾고 있습니다. 기록하고 세상에 널리 알려야 될 일이 있는 분은 참세상이나 메일(odol@jinbo.net)로 연락을 하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갑니다

  • 노동자

    두 분의 소중한 길에 마음을 보탭니다.

  • 지나가다

    사진 밑에 김진잔으로, 오타가 있습니다.

  • 사실정정

    김진찬씨에게는 이제 네살된 "아들"이 있습니다.
    이름은"채운"입니다. 수정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