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버락 오바마 44대 미국 대통령의 당선은 북한 핵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이에 대해 지난 2일 통일연구원 주최로 흥미로운 세미나가 열렸다. 특히 이날 세미나는 남북문제에 있어 현 정부의 ‘비핵·개방·3000’ 정책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주로 토론에 참가해 미국의 향후 북미 협상과정을 전망하고 통미봉남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국 신정부 출범과 대북 통일정책 추진방향’ 학술 세미나에서 2부 주 발제를 맡은 조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오바마 행정부와 한국의 대북정책’이라는 논문에서 미국 새 행정부의 핵전략을 짚어보고 미국과 북한의 핵협상에 대해 전망을 내 놓았다.
조민 연구위원은 “오바마 당선자는 핵문제 해결의지와 접근방식에서부터 부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면서 “오바마는 북한의 핵포기 뿐만 아니라 미국 스스로 핵을 폐기하겠다는 입장에 서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차기 행정부의 안보전략을 담당할 오바마의 참모들이 궁극적인 핵 폐기 원칙 위에서 세계적 차원의 핵무기 감축을 미국이 주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핵을 폐기하겠다는 전략에 대해 조민 연구원은 “전 세계적으로 핵보유국이 늘어나는 추세에다 테러리스트의 수중에 핵무기와 핵물질이 넘어갈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현실에서 핵무기에 의한 억지논리에 입각한 국가안보전략은 본질적인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면서 “핵이 통제하기 힘든 위협으로 증폭되는 현실에서 언제가 핵무기는 반드시 테러리스트에 넘어갈 수 밖에 없으며, 이는 미국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핵은 더 이상 국가안보에 의미가 없어졌다”고 달라진 핵의 위상에 대해 설명했다.
핵무기로 테러를 해결할 수 없고 테러리스트를 위협할 수도 없는 이러한 현실에서 오바마 당선자가 이끄는 미국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추구하고 핵무기 제로를 향한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것이다.
조민 연구위원은 “미국의 핵폐기와 핵감축 독트린이 부상하면 북핵 협상은 전혀 다른 구도로 전개될 수 밖에 없다”고 전망하고 “2009년 북한의 대미 핵전략은 새로운 결단이 요구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 연구위원에 따르면 북한의 대미 핵전략은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그는 그 첫 단계로, 북한은 미국의 안보우려를 자극하지 않는 수준에서 소수의 핵보유 용인을 전략적 목표로 삼을 것이고, 다음단계로 미국의 반테러리즘에의 동참을 천명하면서 핵 비확산을 전제로 핵보유를 용인 받고자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민 연구위원은 또 “북한 통치층은 핵무기만이 대내외적으로 확실한 체제 보장을 가능케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북한의 대미전략의 핵심은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인받는데 있는데, 핵보유를 전제로 평화협정, 대미관계 정상화 등을 추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대미 핵전략은 달라진 오바마 정부가 이끌 미국의 핵전략으로 인해 실패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조민 연구위원은 “미국은 이란이 페르시아의 대제국 부활로 갈 가능성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이란의 핵개발 의지를 꺽는데 있어 북한이라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지점을 설명하고 “북한에 대한 핵보유를 허용하면 전 세계적으로 밝힌 미국의 핵감축 의지가 도전받게 된다”고 밝혔다.
또한 오바마 당선자는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포기시키기 위해 이란과의 직접대화를 주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며 이러한 원칙은 북한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즉 북미대화의 진전은 핵 프로그램을 폐기시키기 위한 공세적이고 원칙에 기반한 직접 외교의 산물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조민 연구위원은 달라진 미국의 핵전략으로 인해 “평양은 오바마에 경악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바마가 직접 대화를 언급했지만 미국의 핵정책을 따르지 않을 경우 부시보다 더욱 북미관계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민 연구위원은 “ 미국 신정부, 특히 힐러리 클린턴 팀과의 협상에서 ‘자위용’ 핵이 미국의 안보에 위협되지 않는다는 논리나, 핵 비확산을 맹세하고 핵보유 용인을 얻어내려는 북한의 대미 핵전략의 관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또한 “선 체제보장, 후 핵 포기‘ 논리는 북을 신뢰하지 않는 워싱턴 사람들을 더욱 짜증나게 만들 뿐”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부시, 라이스, 힐을 그리워 할 것”
이에 대해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성훈 통일연구원 연구원도 “협상에 의한 북핵 폐기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순간 미국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에서 강력한 압박을 북한 정권에 가할 가능성이 많다”고 전망했다. 전성훈 연구원은 “제1차 북핵 위기가 한창이던 1994년 영변 핵시설을 공격하려 했던 빌 클린턴과 2004년 대통령 선거유세에서 협상으로 안 되면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천명한 존 케리 후보 모두 민주당 출신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성훈 연구원은 또 “오바마 등장으로 북미 관계가 급속도로 개선될 가능성으로 인한 통미봉남에 대한 우려와 대북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진보적 학자들의 견해는 미 정부의 수단에 대한 혼동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미국에 있어 북미관계는 수단일 뿐이고 북핵 폐기가 목표”라고 단언 했다. 즉 핵 폐기라는 목표를 위해 북미관계를 수단으로 활용하는 속에서 만약 북이 핵 포기에 대한 확신을 주지 않으면 북미 관계 개선은 언제든지 깨지고 압박 카드가 나온다는 것이다.
조민 연구위원도 “북한의 질질 끄는 협상방식은 힐러리에 통하지 않을 것이며 북은 부시, 라이스, 힐을 헤어진 첫 사랑처럼 그리워 할 것”이라 빗대 오바마 정부가 부시 정부보다 결코 쉽지 않은 대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연구위원은 “미국 신정부는 북한이 협상을 성실하게 이행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제공하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미국의 조치는 유예 되거나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미국의 포용정책은 강력한 상호주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 미국의 제재조치는 어떻게 가능할까? 조민 연구위원은 오바마 신정부의 새로운 핵 폐기 전략으로 인해 UN과 국제사회, 특히 러시아와 중국의 협조 속에서 제재조치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오바마가 핵 제로 전략을 통해 MD를 폐기하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오바마가 친중 정책을 통해 핵감축 드라이브를 더욱 가능케 한다는 설명이다. 조민 연구위원은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핵 감축 드라이브에 참가하게 되면 결국 UN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게 되고, 중국도 내년 봄에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러시아가 핵 폐기로 가게 되면 북의 대미 핵전략은 안 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