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병원 측은 나오라!”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10월 6일 또 다시 침탈당한 강남 성모병원 농성장

메뉴보기: 클릭하세요. V

일을 마치고 강남 성모병원에 도착하니 밤 아홉 시였다. 촛불 문화제는 이미 끝났는지 천막 농성장 옆에 사람들이 모여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늘 병원 로비에서 하던 간담회를 오늘은 천막 옆에서 한다고 했다. 직원들 수십 명이 달려들어 조합원들을 병원 밖으로 끌어냈다는 소식을 들은 게 오늘 아침이었는데 아직 병원 안으로 다시 들어가지 못했나 보았다. 나는 로비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병원을 한 바퀴 돌아보니 입구는 한 곳을 빼놓고 모두 잠겨 있었다. 잠긴 문 안쪽에는 보안 직원들이 어슬렁거렸다. 로비로 들어가 보니 조합원들이 농성을 하고 있던 곳에는 웬 시커먼 탁자들이 잔뜩 한 줄로 놓여 있었다. 탁자 위마다 컴퓨터가 한 대씩 있었고 무슨 창구라고 써 놓은 팻말이 보였다. 탁자에는 직원들 몇몇이 앉아 있었다. 조합원들을 몰아내고 뜬금없이 새로운 창구를 열어 놓은 것이었다.

다시 천막 농성장 쪽으로 갔다. 연대 단위들과 조합원들이 간담회를 하고 있었다. 나는 곁에 슬며시 끼어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로비에서 점거 농성을 시작하고 오늘까지 3번 침탈을 당했습니다. 수간호사들이랑 보안 직원들 등등 합해서 약 50여 명이 쳐들어와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밖으로 밀어냈어요. 수녀들은 뒤쪽에 서서 실실 웃으며 지휘를 하고 있었구요.”
“온몸에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었어요. 막 목도 조르고...... 여직원들은 남자 직원들과 달리 주로 꼬집더라구요. (웃음)”
“1차로 천막 때려 부수는 깡패들과 만났고, 2차로 서초 경찰서에서 공권력 투입하겠다는 협박도 들었고, 이젠 3차로 구사대까지 만나고 있는 형편이에요. 골고루 맛보고 있죠. (웃음)”


간담회가 끝나면 조합원들과 직접 이야기해 보기로 하고 나는 한동안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담배도 피우고 누군가와 통화도 했다. 마침내 간담회가 끝났고 나는 조합원들에게 다가가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아침 여섯 시 반에 병원 중앙 엘리베이터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었어요. 여섯 시 사십 분쯤 됐는데 갑자기 ‘농성장! 농성장!’하는 외침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달려가 봤더니 직원들 50여 명이 와서 벽보 뜯고 깔개 치우고 현수막 찢고 물건들 다 넘어뜨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우린 절대 나갈 수 없다’고 하면서 주저앉고 벽 쪽에도 붙고 몸싸움도 하며 저항을 했어요. 수녀들이 저 뒤에서 지휘하는 중에 보안 직원들이 저희를 빙 둘러싸더라구요. 그때 천막 쪽에 있던 연대 오신 분들이 뛰어 들어와 몸싸움을 했구요.”
“직원 한 명이 그랬어요. ‘한 명당 다섯 명씩 들어! 밖으로 끄집어 내! 여자들 앞으로 나와!’ 같이 일했던 간호사들까지 몰려와서 저희를 질질질 끌고 갔죠. 웃옷이 올라가려 하고 바지도 막 벗겨지려고 하는데 그걸 추스를 시간도 안 주고 막 끌고 갔어요.”
“남자 용역들이랑 수간호사들이 꼬집고 팔 비틀고...... 힘으로 몰아냈어요. 인사팀 직원들이 수간호사들에게 지시하더라구요. ‘빨리 해!’ ‘뭐하는 거야!’ ‘옆으로 가!’ ‘앞으로 나와!’”
“그 시간에 천막 농성장에는 흰 가운 입고 나이 좀 있는 사람들이 왔대요. 의료 기사들인 것 같은데...... 대자보 뜯고 현수막 걷어가려고 했어요. 그러고서는 ‘우리 이러지 말고 대화를 하자’고 말을 했대요. 우리가 지금 병원 측이랑 대화하려고 이러고 있는 건데......”
“그 사람들이 천막 농성장 옆에 붙어 있는 현수막을 떼서 저쪽 공사장에 갖다 버렸어요. (현수막을 가리키며) 지금 이게 아까 공사장에서 찾아온 거예요. 천막 쪽에 사람들이 있어서 천막에는 손을 못 댔구요.”


나는 문득 수간호사라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졌다.

“수간호사라는 직책이 정확히 어떤 개념인가요?”
“그냥 뭐...... 간호사들 위에 있는 최말단 관리자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간호사가 승진하면 수간호사가 되지.”
“승진은 어떻게 하는데요? 승진 시험 같은 걸 보나요?”
“그런 건 없구요. 조건 같은 건 있죠. 대학원을 나와야 한다거나, 가톨릭 의대를 나와야 한다거나......”
“그래도 우리랑 안면이 있는 수간호사들은 우리 안 밀고 뒤에서 그냥 서 있더라구. 우리랑 잘 모르는 수간호사들이 와서 밀치고 끌어내고 그랬지.”
“오늘 경찰도 왔었어요.”


뜻밖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 어떻게 된 일인지 캐물었다.

“아침에 우리 끌어낼 때 병원 측이 경찰을 불렀나 봐요. 그래서 경찰이 왔는데, 와 보니 조합원들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으니까, 병원 자체적으로 우릴 내몰고 있으니까 자기네들이 판단해도 손 댈 게 없는 거죠. 그래서 사측이랑 속닥거리다가 그냥 갔어요.”
“나중에 행정동 쪽으로 항의 방문 갔었는데 그 때도 경찰이 왔다가 그냥 갔고.”
“행정동은 천막 옆에 있는 건물 아닌가요?”
“우리가 천막 농성 시작하고 나서 병원장실이고 뭐고 전부 다 다른 건물로 옮겼어요. 지금 여기 있는 건 가건물이고.”


내일, 10월 7일에 병원 측과 면담을 할 예정이라는 것을 기억해 내고 나는 조합원들에게 면담에 대해서도 물어 보았다.

“그건요. 저희가 면담하자고 병원 측에 요청을 한 거예요.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이름으로 병원장이랑 행정부위원장한테 10월 7일 오후 4시에 면담하자고 요청한 거죠.”
“행정부위원장이 병원의 실권을 쥐고 있는 신부님이에요.”
“그런데 아직도 병원 측에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아서 저희도 면담엔 누가 나오는지, 우리 쪽에서는 누가 나갈지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예요.”
‘병원 측은 나오라!’라고 써 붙이고 굿이라도 한 판 벌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과연 10월 7일 4시에 병원 측은 교섭을 하러 나올지, 아니면 면담 대신 용역들이나 한 번 더 보낼지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다.
“로비 벽에 조각 같은 게 되어 있잖아요. 그게 성물(聖物)이라고 대자보를 막 떼더니 지금은 자기네들이 거기다가 테이블이랑 컴퓨터 갖다 놨잖아. 그게 뭐야? 자기네가 하면 사랑이고 우리가 하면 불륜인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요.”
“천막 때려 부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천막에서 하래요. 제발 로비엔 들어오지 말고 천막에서 하라고.”


언제쯤 다시 병원 로비로 밀고 들어갈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싸워 나갈 것인지는 회의를 해 봐야 될 것 같다고 했다. 곧 조합원들끼리 회의를 해야 한다고 해서 나는 인사를 하고 그곳을 떠났다.

병원 안에는 보안 직원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다. 병원 밖에서는 이 추운 밤에 조합원들이 노숙을 해야 한다. 눈엣가시 같은 조합원들을 내쫓기 위해 병원 측은 아마 출입금지 가처분신청이나 천막철거 가처분신청 같은 것들을 줄줄이 고스톱 치듯 들이댈 것이고 어쩌면 지금 성모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김수환 추기경의 건강 문제까지 들먹이며 핑계로 삼을지도 모른다. ‘불법으로 농성하고 있는 자들이 환자들에게 피해를 준다!’ 하지만 몸 움직이기도 힘든 환자들이 빙 돌아서 열린 문으로만 다녀야 하도록 입구를 모조리 잠가 불편을 끼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석 달 동안이나 교육을 받아야 하는 힘든 업무를 모조리 파견직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은 누구인가? 정작 환자들의 건강을 볼모로 잡고 돈벌이에만 몸이 달아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노동자를 일회용 부속품처럼 여기는 이들은 누구인가? 종교라는 이미지를 당당히 팔아먹고 사는 이들은 누구인가? 병원 측이다. 병원 측은 나오라. 노동자들과의 교섭에 성실하게 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