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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맘, 애정 씨의 필리핀 나들이

[동행기] 또 다른 이름 '유족'..."이젠 반도체 노동자 인권지킴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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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그녀를 만난 건 9월 26일 이른 아침, 필리핀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위해 모인 인천국제공항이다. 그녀는 '아시아 노동재해 피해자 권리를 위한 네트워크(안로브, ANROAV) 2008년 연례회의'에 초청을 받았다.

  필리핀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서른이 채 되기 전 애정 씨는 '싱글맘'이 되었다. 남편과 사별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정 씨의 또 다른 이름은 '유족'이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그녀의 생글생글한 얼굴. '유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행동거지에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는 그녀다. 하다못해 남편과 결혼 예물로 주고받았던, 아직 빛을 잃지 않은 금 목걸이와 금 팔지를 하고 있다가도 사진을 찍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나 않을까해서 빼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열 두 번을 더 생각한다.

그녀의 남편은 삼성반도체 1라인 설비엔지니어였던 동료 황민웅 씨. 그는 1997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했다. 그러나 2004년 10월, 남편은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남편의 백혈병 진단 1주일 후 그녀는 둘째 아이를 가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둘째 아이를 낳은 지 한 달, 2005년 7월 23일 황민웅 씨는 사망했다. 그리고 그녀는 스물여덟에 두 아이를 가진 싱글맘이 되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삼성반도체의 노동자가 아니다. 95년 입사해서 가운데 1년을 쉬었다가 작년에 퇴사했다.

"왜 그만뒀긴. 지긋지긋해서요, 삼성이 싫어서요. 제 몸이 망가질 것 같더라고요."

남편의 죽음

그녀는 이제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린이집 교사다. 처음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토론하는 까페를 본 후 그녀도 많이 망설였다. 그리고 처음에는 삼성을 다녔던 여성 노동자, 그러니까 ‘여직원’으로 그 까페에 글을 남겼다. 그리고 남편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고 글을 올렸다.

10년이 되도록 열심히 다녔던 삼성반도체, 그러나 그녀가 공장에서 처음에 어떤 공정에서 어떻게 일을 했는지 물었지만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공장에서 어떤 일을 했냐고 물었는데,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아픈 기억은 저 멀리 꾹꾹 눌러 놓는 법, 그래야 그녀는 버틸 수 있었겠다 싶었다. 그런데 남편의 죽음은 그녀에게 조금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이 결코 그저 '우연'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다.

"남들은 원래 건강한 사람들이 갑자기 큰일 맞는다고 그러잖아요. 근데 정말로 남편은 건강했어요. 생각도 못했죠. 피토 토하고, 코피도 나고 해서 폐렴인가 생각을 했었데요. 그런데 동네 병원에서 피검사가 안 되니까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고요."

"오한이 들어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차 몰고 왔냐고 그러더라고. 어떻게 그 몸으로. 그리고는 바로 응급실에서 항암치료 들어갔지 뭐."

황민웅 씨는 기흥의 1라인에서 13라인의 공정 중 5라인에서 슬러리라는 공정, 즉 표면을 매끄럽게 깎는 공정에서 일을 했는데, 1라인 셋업 멤버로 갔다. 웨이퍼 뒷면을 슬러리 하는 공정인데 설비 엔지니어였다.

"셋업 멤버의 일이 과중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과로도 물론 따르고, 설비가 화학 물질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중간 중간 많은 화학 물질을 다루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그녀는 남편이 백혈병을 얻은 데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사용했던 각종 화학 물질들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지난 4월 산재 신청을 했다. 지금은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혹시 같은 공장에서 일을 한 동료들 중에 또 누가 같은 병에 걸렸는지 궁금해 물었다.

"제가 들은 적이 없어요. 삼성이라는 데가 철저히 개인화를 시키기 때문에 백혈병이 반도체에서 생길 수 있다는 것도 몰랐고, 황상기 어른이 터뜨리지 않았으면 모이지 않죠. 누가 한 명 용기내서 이런 경우가 있다고 하니까. 전 이러기 전까지 몰랐어요."

황상기 씨는 역시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을 하다 백혈명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 씨의 부친이다. 황유미 씨의 백혈병 발병 사실이 알려진 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백혈병 사례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반도체 산업에서 치명적 암 등이 발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논란 중에 있다. 미국 실리콘 밸리의 IBM이나 영국의 내셔널반도체(NSUK) 등에서도 몇 차례의 역학 조사 및 소송 등이 진행되었거나 진행 중에 있다.

삼성 반도체 '여직원'

"어떤 방의 생산량을, 작게는 베이에 고가를 매겨가지고 죽기살기로 생산량만 빼요."

  애정씨는 전직 삼성반도체 '여직원'으로서도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설비를 분산시켜놔요. 그것도 전략이다 할 수 있는게, 경쟁을 붙이는 거지. 바지런한 애가 설비 어랜지 안하냐, 막 이러면서, 생산량 달성하면 피자 한 판 돌려주고, 여름에 수박 한 판 돌려주고. 우물 안에 개구리예요. 옆 베이 언니 얼굴을 보기도 힘들죠."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 약간 불안한 듯한 표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초롱초롱 해졌다. 갈수록 할말이 더 많이 지는 듯했다. 애정 씨는 남편의 죽음을 맞으면서 본인이 일했던 예전의 기억들을 더듬기 시작했고, 서서히 객관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는 반도체 생산공장의 여성노동자들을 '여직원'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었으니 그녀의 입에서 쉽게 지워질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리고 본인이 일했던 삼성 반도체 공장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안로브(ANROAV) 2008 연례회의 전체 발표시간, 한국의 '반올림'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20여 분. 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의 발표가 15분을 넘겼다. 그리고 그녀에게 주어진 건 단 5분.

"저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1라인에서 13라인 중 5라인에서 10년 넘게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반도체 현장라인은 라인에 입실하기 위해서 방진복, 방진화, 마스크, 면장갑 등을 이중착용하게 되는데, 이것은 제품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실로 현장 여사원들은 그 흔한 교육 한 번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문제제기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무수히 많은 재앙을 낳고 있지만 삼성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퇴사에 직결되기 때문에 현장의 노동자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애정씨는 발표시간을 넘겨서도 마이크를 놓지 못했다.

정해진 발표시간을 넘기자 사회자가 눈치를 계속 준다. 그러나 애정 씨는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라인에 온갖 화학약품냄새가 진동 하고, 높은 기압으로 현장 노동자들의 몸의 피로도가 높아지면서 각종 부작용을 낳고, 면역체계 또한 무너지기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유해한 환경과 강도 높은 노동을 착취 당하면서 면역력이 약해진 몸은 충분히 백혈병 등 각종 질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마이크를 놓는다. 피부색과 눈동자의 색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질기게 발표를 이어갔다.

"인터뷰도 많이 했고, 토론회 증언도 했고, 해외라고 해서 틀릴 건 없지요. 아픔을 꺼내야 하고, 개인적인 상처를 꺼내는 것이 힘들어요. 그래도 해외에서도 한국의 사례와 활동을 공유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씩씩한 애정씨

전체 발표 시간이 끝나고, 다른 국가에서 온 전자 산업 노동자들과 유해 화학 물질을 현장에서 어떻게 알려야 할지를 토론하는 시간. 각자 작업 환경에서의 위험 요소를 분석하는 경험을 그렸다.

그녀도 잠시 망설이다가 팀원들과 방진복을 입은 노동자 한 사람을 그렸다. 그리고 앞에 있는 벨트에서 연기가 나오는 꼬불꼬불한 선 몇 가닥을 그리더니 '물음표'를 한다. 여기에 사용되는 화학 약품이 무엇인지, 신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통역을 통해 손짓 발짓으로 그려낸 그녀의 그림에 토론회 참가했던 사람들의 눈이 쏠렸다. 그리고 다들 공감의 고개짓을 한다.

  애정씨가 반도체 노동자들의 작업 과정에서 위험요소라고 생각되는 것을 그림에 그려서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녀의 기억 속에 일하는 베이 앞, 파일 같은 데 사용되는 약품들이 쓰여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바쁜 와중에 그 걸 눈여겨 볼 만한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회의가 이틀째 접어들면서, 생전 영어를 그렇게 많이 쓰는 곳에서 뭔가 자기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듯한데, 씩씩해졌다. 제법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헬로우', '땡큐'하며 제법 여유있게 인사도 건넨다.

"제가요 회사에서 하는 웅변대회 이런데 나가서 상도 받고 그랬거든요."

그녀가 씩 웃는다. 지난 가던 한 필리핀 여성노동자가 잘 알지 못하는 영어로 뭐라고 뭐라고 말을 건네면서, 손을 꼭 잡아준다. 격려다.

애정 씨는 이번 회의에서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실리콘밸리 독성물질 방지연합(SVTC)' 테드 스미스도 만났다. 미국에서도, 영국에서도 반도체 산업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소식에, 그리고 삼성을 주목하고 있다는 소식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발표 때 두 번 설명하지 않아도, 16개국 참가자 모두가 알아들었던 그 이름 '삼성'을 상대로 한 그녀의 싸움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어쩌면 '무모한'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릴 법한 그 싸움.

  애정씨는 이제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 노동권, 인권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남편이 죽은 직후에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10년 넘도록 자기가 했던 일이 뭐였는지 조차 생각나지 않던 그녀가 이제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 인권 지킴이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

그녀는 지금 교회를 다니고 있다. 남편이 병상에 있을 즈음 의지할 곳을 찾다찾다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시어머니 앞에서도 눈물을 보이는 것이 싫었다. 그러다 교회를 처음 찾은날 정말 서럽도록 펑펑 울었다.

필리핀에 막 도착해서 공식일정이 시작되기 전 잠시 들러보았던 마닐라 대성당. 마침 한 부부의 결혼식이 진행 중이었다. 일행들이 잠깐 쳐다보고 모두 발길을 돌린 후에도 애정 씨가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남편이 없는 빈자리를 혼자서 메워야 하는 힘겨움, 그리고 외로움. 9월 29일 밤 비행기를 타고 인천 공항에 도착한 30일 새벽 5시. 애정씨는 또 생업을 위해 그날 오전 8시 30분부터 어린이집 통학 차량에 타고 아이들을 맞으러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녀의 뒷모습은 참 씩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