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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사업주(원청)의 노동법상 책임 인정에 여전히 주저하는 법원

[칼럼] 현대미포조선 대법원 판결 및 코스콤 서울남부지법 판결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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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와 장마가 지루하게 오락가락하던 이번 달에 간접고용에 관련된 두 개의 판결이 나와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03년 1월에 해고되어 5년이 넘게 법률투쟁을 벌여 온 현대미포조선 내주하청업체 용인기업 노동자들이 현대미포조선을 상대로 낸 종업원지위확인 소송과 2007. 9. 12. 파업 돌입 후 1년 가까이 코스콤을 상대로 투쟁을 하고 있는 코스콤비정규노조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이 그것이다.

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5다75088 판결(현대미포조선 사건)

용인기업은 1978. 4. 24. 설립되어 25년간 현대미포조선의 ‘내주하청업체’로 운영되면서 선박 기관 수리업무를 담당해 왔는데 2003. 1. 31. 사실상 현대미포조선의 주도 하에 폐업에 이르게 되었다. 대부분의 용인기업 소속 노동자들은 1976~1989년 사이에 입사하였으며, 임시공으로 일하다가 현대미포조선이 실시하는 본공시험에 합격한 뒤 하청업체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들은 기관 수리뿐만 아니라 선박인양, 용접, 등등의 업무에 동원되는 등 실질적으로 현대미포조선의 지휘감독 아래 일해 왔다.

용인기업의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노동자들은 현대미포조선이 실질적 사용자로서 계속 고용할 것을 요구하면서 2003. 4. 15. 스스로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하였으나 각하되었고, 이와 별도로 현대미포조선을 상대로 하는 종업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하여 울산지방법원(2004. 5. 20. 선고 2003가합987 판결/ 기각), 부산고등법원(2005. 11. 9. 선고 2004나9787 판결/ 기각)에서의 패소를 거쳐 이번 대법원 판결로 마침내 현대미포조선의 근로자임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사실 용인기업 사건은 간접고용에 관한 노동법적 상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노동자가 이겨야만 하는 건인데 납득할 수 없는 하급심의 논리로 오랫동안 외면당해 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어쩌면 이번 대법원 판결을 접하고 느끼는 반가움보다 하급심의 패소 소식을 듣고 느낀 절망감이 더욱 컸을 정도이다.*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해 하급심과 대법원의 평가가 어떻게 엇갈리고 있는가에 대해 다음의 표를 살펴보도록 하자.


도급-(불법)파견근로-위장 근로계약 : 여전히 풀리지 않은 쟁점

그동안 간접고용관계에 대해 형성되어 온 법리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어떤 하청업체가 정말로 도급계약을 수행하는 업체라고 인정되려면 노무에 대한 인사·지휘명령상 독립성과 사업 경영상의 독립성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다. 만약 해당 노동자에 대한 지휘·감독권한의 일부나 전부를 사실상 원청(사용사업주)이 행사하였다면 이는 도급이 아니라 근로자파견을 한 것이 된다. 더 나아가 이 하청업체가 사업경영상 독립성마저 갖추고 있지 못하다면 이는 파견사업체로도 인정되기 어렵고 원청(사용사업주)의 일개 사업부서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해당 노동자와 원청(사용사업주) 사이에 직접적 근로계약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

요컨대 용인기업 사건에 관해 부산고등법원과 대법원은 두 가지 쟁점에 대해 서로 엇갈리는, 그리고 불분명한 답을 하는 것이다. 첫째, 원청인 현대미포조선이 용인기업 소속 노동자들에 대해 인사상·지휘명령상 권한을 행사하였는가가 중요한 문제이지, 사내하청업체인 용인기업이 그러한 권한을 함께 가지고 있었는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간접고용이란 기업이 노동법상 사용자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제3자가 사용자인 것처럼 형식을 끼워 넣는 것이기에, 중간업자가 인사상·지휘명령상 권한을 일부 분담하거나 전부 대리하여 행사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이런 외관마저 허술하게 하고 있다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되면서 중간업체의 권한을 형식적으로 강화하거나 중간업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통제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부산고법은 용인기업이 인사·지휘감독권한을 형식적으로나마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들어 도급으로 인정했는데 이는 간접고용에 대한 법리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리고 대법원은 이 쟁점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피한 채 현대미포조선이 실질적으로 해당 노동자에 대한 지휘·감독권한을 행사하였다는 점만을 부각하였다.

둘째, 용인기업이 사업경영상 독립성을 가지고 있었느냐는 쟁점은 용인기업이 사업체로서의 실체가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의미 있는 문제일 수 있지만, 해당 노동자에 대해 누가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하는가의 질문에 대해서는 별로 의미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설사 부산고법이 판단한 것처럼 용인기업의 사업체로서의 실체를 인정하다 하더라도, 해당 노동자를 실제로 사용하고 지휘·감독권한을 행사한 것이 현대미포조선이라면 최소한 (불법)파견근로관계는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 대부분의 파견업체가 독자적인 사업체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여러 사용사업체와 노동자파견계약을 체결하며 독자적인 경영 운영을 하고 있다. 이처럼 실체가 있는 파견업체로부터 노동자를 공급받았다 하여 사용사업주의 노동법상 책임이 가벼워질 수는 없는 것이다. 부산고법의 판단대로라면 중간업체가 일정한 실체(이 사건에서는 그마저도 사실 불분명했지만)가 있기만 하면 사용사업체는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점에 대해 용인기업이 아예 실체가 없다고 보아 법적으로 의미가 없는 존재로 치부해버리는 기법을 활용하여 문제를 단순화시킨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대법원의 이런 기법(‘파견근로관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위장근로관계’라는 판단)이 타당성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현실에 더욱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실체가 있는 중간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에 대한 법리적 판단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

2008. 7. 18. 서울남부지법 판결(코스콤 사건) :
불법파견을 사용한 사용사업주의 책임에 대한 어두운 전망?


이번 코스콤 판결은 1년 넘게 투쟁을 해온 비정규노동자 중 일부가 승소하였기에 반가운 소식이긴 하지만, 간접고용에 관한 법리 측면에서는 지금까지의 법원의 논리를 답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코스콤에 대해 인적·자본적·경영적 종속관계가 인정된 증전엔지니어링, 에프디엘정보통신에 소속되어 있던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중간업체가 사업적 독립성이 없는 단순한 노무대행기관에 불과하다고 보아, 코스콤과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하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중간업체인 아이티네이드, 밸류원, 지피텍, 에이치알씨 등에 대해서는 자신의 물적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등 사업적 실체가 있다고 보아 여기에 소속된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코스콤과의 직접적 근로계약관계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실제 하는 일에 차이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소속 업체가 사업적 실체가 있었는가 여부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코스콤 입장에서도 해당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실제 지휘·감독하여 사용하는데 어떤 차이도 없었는데도, 일부에 대해서는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부담하게 되고 일부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벗어나게 된 것이다.

다시 한 번 반복하자면, 현실에서는 노동자공급업체(파견업체)가 일정한 자본력과 물적 설비를 갖추고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인사상·지휘명령상 권한을 일부 분담(또는 대리)하여 행사하는 것이 보다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제조업의 사내하청이나 대기업의 용역 자회사처럼 중간업체가 원청에 인적·자본적·경영적으로 완전히 종속되어 있는 경우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고, 이들 용역 자회사들도 점차 노동자 파견사업을 다각화하는 등 ‘독립적 사업체’로서 발전해 하고 있다. 따라서 간접고용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사용사업주가 해당 노동자에 대해 사용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하였는가 여부, 다시 말해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사용사업주의 사용자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 때 사용사업주가 실체가 없는 중간업체를 개재시켰다면 아예 해당 노동자와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해야 할 것이고, 어느 정도 실체가 있는 파견업체를 개재시켰다면 파견법 위반인지를 따져 보아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관계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법원은 전자에 대해서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하는 듯하다가 최근 몇 몇 사건에서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대미포조선과 코스콤에서 위장근로관계가 인정된 부분이 바로 이런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반면 후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장이 불분명하거나 불법파견근로관계에는 파견법상의 직접고용간주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해괴한 논리를 답습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간접고용에 관한 사회적 논란을 법원이 의식하면서도 위법하게 간접고용을 사용한 사용사업주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관련하여 지난 6월 19일에 대법원에서 불법 파견근로관계에 구 파견법상의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간주조항(구 파견법 제6조 제3항)이 적용되는가 문제에 대한 공개변론이 열렸다. 2000년 (주)SK의 자회사였던 인사이트코리아에서 해고당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이 문제를 제기한 후로 지금까지 미루어왔던 대법원의 판단이 곧 이루어질 예정이다.

어찌보면 이 쟁점은 2006년 파견법 개정으로 입법적으로 해결(즉 불법파견의 경우도 2년 이상이면 직접고용 의무 인정)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 파견법에 걸려 있는 많은 비정규노조의 사건(현대자동차, 기륭전자 등)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어서 여전히 현실 노사관게에 파장을 미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설사 대법원이 불법파견에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책임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또다시 ‘2년 이상자에게만 제한’이라는 암초가 도사리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간접고용을 사용한 사용사업주에게 실질적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도록 하는 투쟁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각주)*이 사건의 하급심 판결에 대한 평가로는 권두섭, 「위장도급의 법률관계-현대미포조선 내주하청 용인기업 사건을 중심으로」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편,『비정규노동과 법』 2006 참조.
덧붙이는 말

윤애림 님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