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희산업이 항의서한 접수를 거부하자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사무장국장은 항의서한을 찢어버린 후 자리를 떠났다. |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가 노조설립 3년 만에 동희그룹 본사를 찾아갔지만, 항의서한조차 전달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잘나가는 ‘동희오토’, 죽을 맛인 ‘노동자’
서산에 위치한 동희오토는 수출용 완성차를 조립생산하는 업체로 기아자동차의 ‘모닝’ 완성차를 생산하고 있다. 고유가 시대에 소형차 바람이 불면서 동희오토의 생산라인은 쉴 틈이 없다. 생산라인 점검 4시간을 제외한 하루 종일 라인이 가동되고 있고 주말에도 공장이 돌아가지만, 소비자들이 ‘모닝’을 구매 신청하면 3개월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한다. 말 그대로 대박이 터졌다.
지난 5월 조선일보는 “동희오토가 기아차에 비해 생산성이 3배 높고, 임금은 30~40% 가량 낮다”며 “한국노총에 가입돼 있지만 지금까지 파업이 한 번도 없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현대기아차 경영진은 생산성이 좋은 동희오토에 모닝 후속차종을 투입하고 싶어 하지만 기아차지부의 반발로 노조의 눈치를 보고 있다”며 경영진의 고충까지 친절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동희오토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에게서 대박의 꿈을 찾을 수 없다. 동희오토 생산직 노동자 850여 명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전원이 비정규직이다.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에 따르면 주야 맞교대로 하루 10시간 근무에 주말 특근까지 해야 한 달 140여만 원을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동희오토 노동자들은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하는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를 2005년 만들었지만, 이미 노조 설립 신고를 한 업체들이 있었다. 이후 이 업체의 노조들은 한국노총에 가입했다.
회사는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를 인정하지 않았고, 복수노조 시비는 법률분쟁으로 번졌다. 대법원까지 가서야 2007년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는 합법적으로 교섭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많은 조합원들은 업체 폐업으로 계약해지로 해고를 당했거나, 동희오토 사측이 싫어서 퇴사를 했다. 노조 설립 초기 250여 명이었던 조합원은 현재 4명만 남았다. 이중 2명은 해고자다.
“인간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노조를 지킨다”
해고자인 이상용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은 “업체 폐업 후 재계약이 되지 않아 작년 12월 31일 7명의 해고자가 발생했는데, 모두 조합원이거나 이들과 가깝게 지낸 자들이다”라며 해고의 이유가 노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 7명이 해고투쟁을 열심히 했지만, 생계 문제 때문에 5명이 떠났다. 하지만 현장에서 희망이 보였다면 계속 투쟁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아직도 일하고 있는 850명의 노동자들 때문에, 노조를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15일 오후 3시 동희그룹 본사가 위치한 선릉역 앞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충남지역의 노동자들 중심으로 참여했다.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이었다가 작년 12월 해고된 후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에 가입한 김한철 조합원은 “회사가 괘씸해 투쟁은 하지만 복직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면서 “경찰이 X같은 회사 왜 복직하려고 하는지 물었고, X같아서 꼭 복직할 것이라고 말했다”며 7개월의 해고투쟁으로 변화한 자신을 설명하는 것으로 투쟁사를 대신했다.
집회 후 대표자들은 항의서한을 들고 동희그룹 본사를 찾아갔지만, 직원들은 “동희산업과 동희오토는 다르며, 관련 임원은 자리에 있지도 않아 받을 사람이 없다”며 항의서한조차 받지 않았다. 동희산업은 동희오토의 법적 모기업이며 이동호 동희산업 회장이 동희오토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결국, 이청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사무국장은 항의서한을 찢어버리며 “우리가 어떤 투쟁을 벌일 지 두고 봐라”는 말과 함께 금속노조 대표자들과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