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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평화, 위기의 가자 (1)

[해방을향한인티파다](53) - 아나폴리스 중동평화회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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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11월27일 미국 아나폴리스에서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표가 참여한 중동평화회담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2월12일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나폴리스 회담과 이번 협상의 의미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저항이 없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만드세"

아나폴리스 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별 내용이 없습니다. '평화를 위해 잘 해 보자' '2008년 말까지 협상을 마무리 짓자' 정도의 선언만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 보다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의 아나폴리스 회담 연설 내용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입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가운데),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오른쪽)

먼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스라엘을 ‘유대인 국가’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틀린 말인 것은 물론이고 아주 위험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인구의 20% 가량은 아랍인이며, 이스라엘은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 흑인, 백인 등이 섞여 사는 다민족, 다종교, 다인종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요한 문제는 만약 이스라엘을 유대인의 국가라고 하는 논리가 강화되고, 이스라엘 옆에 팔레스타인 국가가 들어서면 그러잖아도 차별받고 있는 이스라엘 아랍인에 대한 억압은 더욱 거세질 것이며 ‘니네들 나라로 가라’는 압력도 커질 것입니다.

부시의 말이 위험한 또 하나의 이유는 난민에 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과정에서 수많은 난민이 발생했고, 지금은 2세, 3세까지 태어나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수가 약 7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전쟁을 통해 쫓겨났기 때문에 전쟁 뒤에는 당연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들의 귀환권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술 더 떠 이스라엘이 유대인의 국가가 되면 아랍인들의 귀환권은 존재하지도 않는 권리를 주장하는 꼴이 되어 버립니다.

또 부시는 연설에서 ‘테러’ 또는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10여 차례 그리고 ‘극단주의’ ‘극단주의자’라는 말을 7차례 사용합니다. 평화를 위해서는 테러리즘과 극단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부시가 말하는 테러리스트와 극단주의자란 누굴 말하는 것입니까? 곧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이란과 헤즈볼라, 하마스를 말하는 것입니다. 조지 부시와 에후드 올메르트가 말하는 테러로부터 자유로운 국가의 건설이란 그들의 패권 정책에 저항하는 세력이 없는 국가의 건설을 의미합니다.

"과거는 잊어버리자구"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연설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협상을 통해 1967년 이후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해 보자'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결의안 242와 338호를 협상의 출발점으로 삼자' 등의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속내를 가린 꼼수입니다.
  아나폴리스 회담에 반대하며 거리에 나선 팔레스타인인

팔레스타인 지역에 큰 문제가 생긴 것은 1967년이 아니라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과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48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의 78%를 차지하고, 75만 명가량을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아예 빼버리고 이야기 하자는 것이 이스라엘과 미국입니다.

안보리 결의안 242호는 1967년 전쟁에서 점령한 지역에서 이스라엘보고 철수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결의안 내용을 조금만 더 살펴보면 이 지역에 있는 모든 국가의 주권과 영토를 존중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때의 모든 국가란 곧 1948년에 건설된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그러니깐 1967년 이전의 점령은 인정하고 그 이후의 점령 문제에 대해서만 얘기하자는 거지요.

또 올메르트는 그동안 이집트, 요르단과 맺었던 평화협상이 앞으로 주변 아랍국과의 관계 개선에 모델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미국과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이집트와 요르단의 독재자들은 미국과 손잡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인정하고 지원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들은 엄청난 양의 돈과 무기를 미국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자신의 부와 권력 축적에만 관심 있는 다른 아랍 독재자들도 팔레스타인 문제가 정리(?)되고, 자국 민중들의 반발만 누를 수 있다면 이스라엘과의 협력은 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독립국가, 그거 좋은 거야?

아나폴리스 회담에서 못 박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건설한다는 것, 즉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두 개의 국가를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팔레스타인인들은 대환영을 해야겠네요. 그런데 현실은 대환영은커녕 회담 반대 투쟁이 일어났습니다. 왜 그럴까요?

먼저 미국과 이스라엘이 말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란 어떤 것입니까? 그들은 1967년에 점령한 지역을 대상으로 국가 건설 논의를 하자고 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1967년 점령지인 동예루살렘도 포함되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자신의 수도로 선언했고,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종교적 정체성의 상징인 예루살렘을 내어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두 번째, 지금 서안지구에는 약 45만 명의 유대인 점령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아랍인들이 살고 있던 땅을 빼앗고 그곳에 점령촌을 지은 뒤에 무력으로 점령촌을 유지하고 있지요. 그런데 만약 이 점령촌 철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서안지구의 절반가량은 또다시 이스라엘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깐 가자지구와 서안지구가 팔레스타인 땅의 22%를 차지하는데 그 가운데 서안지구의 절반가량을 빼앗기고 나면 남는 것은 팔레스타인 땅의 12%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나머지 땅이란 또 어떤 것입니까? 이스라엘은 농민들이 우물하나 팔수 없도록 수자원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또 틈만 나면 전기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위협도 하지요. 거기다 아랍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 주변에는 콘크리트와 철조망으로 장벽을 쌓고 있습니다.

장벽과 더불어 도로봉쇄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사이의 이동을 차단하고, 다시 서안지구를 북쪽과 남쪽, 제리코 지역 등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결국 장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땅에 국가를 건설해서 외부의 원조로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는 국가를 만들라고 하는 거지요.

국가건설의 미래뿐만 아니라 또 하나 생각해봐야 할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두 개의 국가 건설이 해답이냐 하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그리 넓지 않은 땅에 수 백 만 명이 모여 살면서 예전부터 노동력과 상품이 이리 저리 옮겨 다니고 있습니다. 옆 마을이 유대인 마을이고, 길 건너편이 아랍인 마을인 상황에서 이들을 억지로 민족적으로 분리해서 국가를 세워야 하냐는 거지요.

지금의 계획은 미국과 캐나다에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듯이 팔레스타인에 팔레스타인 보호구역을 만들자는 겁니다. 그래서 억지로 두 개의 국가를 만드는 것보다는 팔레스타인에 하나의 민주적인 국가를 만들어 아랍인이나 유대인이나, 흑인이나 백인이나, 유대교나 기독교나 서로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사는 것이 더 나은 방향일 수도 있다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