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아침 목격한 상황이다. 동대문 운동장 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문이 자자한 터라 현장에 도착했다. 그 시간이 오후 11시경이었다. 어제 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노점상들이 천막 안 난로 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들 설마 철거를 하겠는가'며 마음을 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야구장 뒤편으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서울시가 가림 막을 쳐놓고 있었다. 몇몇 용역철거반 차림의 사람들이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경비를 서고 있었다. 거대한 트럭이 흙을 퍼 나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설마 했다. 순간 거대한 포크레인이 움직이는 것이 가림 막 사이로 눈에 띄었다. 철거를 하는 중이었다. 이미 포크레인은 야구장 뒤편을 날카로운 삽으로 서서히 잠식해가고 있었다. 카메라를 꺼내는 순간 그 안에 공사 중인 철거용역반원들이 카메라를 막고 사진 촬영을 저지했다.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다.
철거가 있던 바로 전날까지 서울시는 당분간 철거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만이었다. 서울시는 또 거짓으로 에둘러 놓고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철거를 강행 한 것 이다. 시민들이 대선이라는 정치 일정에 정신이 팔려있는 것을 틈타 일방적인 철거를 강행한 것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동대문 운동장 주변부에는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이 넘는 노점상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운동장과 함께 오랜 시기 삶에 터전을 일구어 왔다. 이밖에도 주변상가와 지하도는 많은 상인들이 생계 방편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 없이 한겨울 강제철거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노점상과 상인들의 생존권을 짓밟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운동장 주변부에 심어져 있던 미루나무와 소나무 등의 조경수 등도 뽑아 어디론가 실고 간지 오래다. 황폐한 주변은 마치 철거지역을 연상케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시정이다.
동대문야구장은 백년이 넘는 한국야구역사의 성지이자 산 증인이기도 하다. 야구인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들의 기억이 녹아 있는 곳이지 않는가? 70년대 그리고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곳 고교야구대회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힘겨운 삶을 달래 주었던가?
축구장은 또 어떤가. 황평우 문화연대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이곳에 대해 “1925년 경성운동장으로 지어진 이후 경평축구가 열렸던 곳이기도 하고, 해방과 함께 서울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뀐 후 찬탁과 반탁 집회가 열렸으며 몽양 여운형과 백범 김구의 장례식이 열렸던 곳”이라고 증언한다.
이렇듯 수많은 이들의 기억이 살아있는 동대문 운동장을 결국 노점상들과 영세상인들의 생계방편으로 삼고 있는 운동장 주변부를 적절한 논의나 합의도 없이 기습적으로 철거하고 있다.
역사적 문화유산을 허물고 노점상과 상인들의 오랜 삶에 터전을 '개발'하겠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발상은 결국 이 주변을 건설자본의 이익을 위한 땅 투기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무책임한 서울시의 탁상행정은 중단되어야 한다. 우리는 동대문운동장의 발전적 보존 책을 강구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만약 서울시가 이러한 요구를 무시하고 일방적 철거를 강행하려 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거리로 나와 싸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