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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10년의 고통을 '희망'으로 만들 우리

1121 '금융피해자 행동의 날' 선언, 거리 퍼포먼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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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그날 처럼 유난히도 겨울 바람이 매서웠던 21일.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특징으로 금융화를 꼽는다면, IMF 구제금융 이후 한국사회를 뒤바꾼 구조조정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신용불량자들로 통칭될 수 있다.

구호가 어색하다. 아는 노래도 이날 배운 '바위처럼'이 전부다. 추운 날씨가 매섭고 행색이 초라해도 서로 나눠든 목장갑이 있어 든든하다.

21일 진행 된 '금융피해자 행동의 날'.

이날의 중요한 의미는 IMF 구제 금융 이후 가장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주체들이 직접 거리에 나섰다는 점이다. 소원풀이 식 성토가 아니라, 과정을 통해 삶의 모순을 깨달은 그들이다. 정부 조차 신용불량자라는 용어 대신 '금융채무불이행자'라 바꿔 부르며 애써 그 존재를 외면하고 있는 그들이 이제는 당당히 정부의 잘못된 정책의 과정을 지적하며 채무 불이행자가 아니라 '금융피해자'로 거리에 나섰다.

1121 금융피해자 행동의 날로

빈곤사회연대, 서민경제회복연대, 인권단체연석회의, 전국빈민연합의 공동주최로 21일 진행 된 'IMF 10년 빈곤과 채무의 악순환 금융피해자 행동의 날' 행사는 2부로 나눠 진행됐다.

1부는 금융채무, 빈곤, 고금리, 불법추심이라는 4개의 주제로 나눠, 참가자들이 자기 경험들을 토대로 대안을 찾아 보는 '소통과 연대를 통한 길 찾기'가 진행됐다.

  '금융피해자 행동의 날' 1부 행사는 금융채무, 빈곤, 고금리, 불법추심이라는 4개의 주제별 워크샵 형태로 진행됐다. 이 사진은 '빈곤'팀에 참가한 한 시민이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장면.

어렸을 때부터 떠돌면서 살아왔어요. 일용직으로 일했구요. 그 당시에는 IMF 가 뭔지도 몰랐지만 일자리가 줄어서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었고, 일자리가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을 만큼 들쭉 날쭉 했죠. 근데 나 같은 일용직 한테도 신용 카드를 발급해 주더라구요. 당장 먹을 거 살 돈도 없었는데 돈이 급해서 카드를 발급 받고 빚을 지게 됐죠. 악순환 입니다. 일자리는 없고 빚은 늘고. 돈이 없어서 안 갚는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못 갚는 거예요. 저는 죽는 사람들 심정이 정말 이해가 됩니다.

택시 기사를 하면서 돈을 벌었죠. IMF 지나고 살기도 빠듯한데 제가 다쳐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됐어요. 병원에 입원한 상황에서 당시 23살이던 큰 아들이 카드를 만들어서 병원비를 마련했습니다. 어렵게 그 돈을 갚아왔고 그나마 면책도 받았어요. 그 아들이 이제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도 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생활은 어렵습니다.

내 얘기 좀 들어 보쇼. 난 한글도 몰라요. 그나마 근근히 살았는데 IMF 지난 후에는 노숙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죠. 지금 노숙한지 7년 쯤 됐나. 근데 자다가 들고 나온 가방을 잃어 버렸어요. 주민등록증, 인감 도장 다 들어있었거든요. 근데 2006년부터 무슨 우편물이 저한테 날아옵디다. 난 한글도 모르니까 처음에는 그냥 받아 두기만 했죠. 그러나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니 난, 써 보지도 못 했는데 누가 내 이름으로 1500만 원의 돈을 사용했다는 겁니다. 기가막히죠.

난 노점해요. 할 수 있는게 그거밖에 없더라구요. 노점하다 보니 급전이 필요한 경우가 종종 있어요. 이자율이 높기도 하지만 그나마 이자에 원금만 갚으라 하면 숨은 쉬겠어요. 원금에 이자에 이자까지 계속 불어나니 마음에 병만 늘어나는 거죠


이날 4개의 주제 워크샵에서는 가슴에 담아 뒀던 자신들만의 답답한 사연들이 쏟아져 나왔다. 글을 읽을 줄 알아도 확실히 이해할 수 없는 문서들, 고함과 폭언에 느꼈던 공포감들, 열심히 일해서 이자를 갚지만 여전히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외로움의 세월들.

공공 지원 정책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는 임금이 결국 모든 소득의 원천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구조가 흔들리게 당연히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저임금 장시간 불안정한 노동을 구하다 다양한 사정으로 빈곤에 이르게 되고 결국 더 이상 헤어나올 수 없어 정신적 공황사태까지 이르고 있다.

워크샵 결과 빈곤팀의 경우 가족 중심의 임대 주택 공급 정책 수정이나 임대주택 보증금 지원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들도 제안됐다. 이날 토론됐던 내용은 향후 대선 공약 제안 내용의 근거가 될 예정이다.

1부에서 참가자들이 가슴 속의 응어리들을 풀어 놨다면 2부는 거리 행동을 통해 '금융피해자'들의 직접 실천을 보여주는 마당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살인적인 고금리 철폐', '빈곤의 굴레' 라고 씌여진 짐을 어깨에 메고 행진하는, 거리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명동 일대를 행진해, 은행연합회 앞에서 대동 마당을 진행했다.

대동 마당에서는 생계형 문제로 자살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수많은 넋을 기리며 원혼식을 갖기도 했다.

  향린교회에서 1부 행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각자의 등에 짐을 얹고 행진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은행연합회로 이동했다.

  은행연합회 안 마당에 자리를 잡은 참가자들이 생계형 자살자들을 기리는 원혼식을 보고 있다.

이들은 금융피해자들을 양산했던 금융자본의 총대리로 은행연합회를 주목하고, '근조'의 금융채무, 빈곤, 고금리, 불법추심의 영정을 부수는 상징의식을 진행 한 뒤 금융감독 당국과 국회가 있는 여의도로 이동했다.

금융피해자들은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에서 농성중인 코스콤 비정규 노동자들과 연대 집회를 진행한 후 이후 금융감독원 앞에서 '가압류' 딱지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뒤 국회 앞까지 행진했다. 국내 은행의 맏형 격인 국민은행 앞에선 금융피해자들은 항의의 함성을 외치며 짧고 굵은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김상국 대구인권운동연대 좋은모임회 총무는 "알라딘의 램프라 생각했던 신용카드가 오히려 내 숨통을 조인다. 여전히 빚을 갚고 있고, 노력하고 있지만 추운 날씨 만큼이나 어렵다"라며 "절망과 시련이 있지만 우리가 함께 모였고, 이렇게 구호를 외치고 있고 함께한다는 것에서 희망을 갖게 된다"며 이날 경험의 심정을 밝혔다.

또한 이날 오전 발표 된 시국선언문의 내용을 소개 한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직접 금융피해자 당사자들이 나선 것 그 자체가 오늘 행사의 가장 큰 의미"라고 강조하며 "계속해서 숨죽이고 내탓만 하고 있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반드시 살아서 빈곤, 금융채무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호소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과거의 10년이 절망이었다면 다가 올 10년은 우리 손으로 희망을 만들자고 결의를 밝히며, 이날 오후 내내 등에 메고 다녔던 빚더미 주머니와 상자들을 밟고 가는 퍼포먼스를 시원하게 진행한 뒤 이날 실천을 마무리 했다.

  여의도까지 이동한 금융피해자들은 거래소 앞, 금융감독원 앞에서 항의행동을 진행한 뒤 국회 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진행했다.


IMF 10년 빈곤과 채무의 악순환

1121 금융피해자 행동의 날 선언문

2007년 11월 21일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체결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1997년 한국은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지만 2001년 8월 차입금 잔액을 최종상환하며 예정보다 3년 이른 조기졸업을 자축했고, IMF 우등생이라며 샴페인을 터뜨렸다.

샴페인을 터뜨리던 2002년, 금융피해자들은 1997년 이후 또 한 번의 악몽을 경험하고 있었다. 1997년 내수시장을 활성화 하겠다는 명목으로 금융자본들은 무분별한 카드발급을 하고 정부는 카드 발급 기준 폐지, 현금서비스 한도 폐지 등 카드 남발 정책을 지원한다. 1998년에는 이자제한법마저 폐지하며 금융자본들이 가계 금융으로 이윤을 축적할 수 있는 기반들을 확실히 만들어 준다. 1997년 이후 더욱 빈곤한 삶으로 내몰려진 민중들은 채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삶을 강요받았으며 이자제한법 폐지로 인한 고금리 정책은 빈곤과 채무가 악순화 되는 삶의 충분한 조건을 만들었다.

이러한 결과는 참담했다. 가계 빚은 1997년 말 211조원에서 2002년 420조원으로 두 배 가량 늘었으며 현재 700조 원을 넘어서고 있다. 또한 2002년 갑작스런 카드발급규제정책은 대량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했으며 2004년 신용불량자 400만 시대를, 20076년 700만이 넘는 신용불량자 시대를 개막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도 이야기 하고 있듯이 한국 사회는 점점 양극화 되어가며 더욱 더 많은 민중들이 빈곤과 불평등에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또한 IMF 외환위기 이후 가속화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노동력 유연화라는 비정규 노동자, 불안정 노동을 확대, 강화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최저생계비, 법정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과 노동 기본권 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후퇴하는 삶은 생존권의 위협을 받으며 일해도 가난한 삶이 바닥을 치고 있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부와 자본들은 작년 파산신청자가 12만 명이 넘었다며 여전히 금융채무자들을 도덕적 헤이자로 내몰고 있다. IMF 이후 정부는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169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그 중 89조원 즉 53%가량만 회수되었다. 자본에게는 눈먼 돈인 공적자금을 남발하면서 1500만 원 이하의 채무자들에게는 소액이라는 이유로 도덕적 헤이자로 내몰며 파산신청도 어려운 것이 IMF 10년 한국의 모습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금융채무자들은 추심으로 인해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며 삶의 의지마저 빼앗기고 있다.

금융피해자들의 자본에 의해 저당 잡힌 삶과 권리는 권력다툼과 장악에만 눈이 먼 정치인들이 대신해 주지 않는다. IMF 이후 빈곤과 금융채무의 악순환이라는 10년의 역사가 충분한 대답을 하고 있다. 가진 자들의 편에 서서, 가진자들의 배만 불리기에 급급했던 것이 정부와 자본의 모습이었고 10년의 모습이었다. 생존권을 위협받으며 생활하는 민중들에게 더욱 더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요구하고 가난을 개인의 무능력과 도덕적 헤이로만 내몰았던 것이 10년의 모습이었고 여전히 그러하다.

빈곤과 금융채무가 심화되고 악순환 되었던 IMF 10년에 대해 이제는 숨죽였던 금융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만들어 갈 것이다. IMF 10년의 실상과 10년 동안 민중들의 억압과 빈곤과 채무로 인한 고통을 폭로해 나갈 것이다. 당당하게 금융피해자들의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가기 위한 금융피해자들의 목소리와 행동으로, 나아가 모든 억압 받고 착취 받는 민중들의 연대와 행동으로 IMF 10년을 끝장내고 민중들의 희망과 미래를 조직해 나갈 것이다. 그 연대와 행동을 모아내고 결의하는 자리로 11월 21일 금융피해자 행동의 날을 선언한다.

10년 전 절망의 11월 21일인 오늘, 희망의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