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는 김용철 변호사(중앙에 안경 쓴 인물)/이정원 기자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예고했던 대로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2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5일 오후 2시 제기동성당에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가 직접 참석했다.
예정 시각 보다 5분 정도 늦게 성당에 모습을 드러낸 김 변호사는 수많은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50주년기념관 1층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시청각실)으로 들어왔다. 이날 회견장에는 오전부터 각 언론사 기자 100여 명이 몰려들어 발디딜 틈이 없었다.
"삼성은 내게 범죄를 명했다"
“죄인으로서 속죄하는 이 자리에 섰다”고 말문을 연 김 변호사는 이날 고해성사라도 하 듯 자신이 삼성에 들어가게 된 과정과 그간 ‘삼성맨’으로 재직할 당시의 고뇌를 털어놓았다.
우선 그는 검사를 그만두게 된 배경과 관련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정축재 재산을 찾다 쌍용 김석원 회장이 집에 보관하고 있는 비자금을 찾아냈더니 청와대는 수사를 막았다”며 “내가 의지를 꺾지 않아 결국 검찰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검사복을 벗은 뒤 변호사가 아닌 삼성행을 택한 이유에 대해 “변호사 업계의 현실을 잘 알고 있었고, 특히 돈을 주고 사건을 따올 자신이 없었다”며 “망하지 않고 월급 꼬박꼬박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삼성으로 가게 됐다”고 밝혔다.
“모든 간부가 삼성이 아닌 이건희 회장을 위해서 살아야 했다”
뒤 이어 그는 “그런데 삼성에 들어간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실수였다”고 말했다. “삼성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사치를 하기도 했다”고 고백한 김 변호사는 “대신에 삼성은 내게 범죄를 명했다”며 “돈으로 사람을 매수.회유하는 불법 로비는 모든 임원의 기본 책무였고, 나는 검찰을 비롯해 법조계 인물을 관리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의 그룹 내 위상에 대해 “모든 간부가 삼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건희 회장을 위해서 살아야 했다”고 증언하며 “괴로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삼성을 위해 검찰이 움직이고, 국정원이 움직이고, 청와대가 움직이고, 모든 언론기관이 움직이며 실시간 정보보고를 했다”며 “심지어 삼성에 가장 비판적인 시민단체마저 회의가 끝나자마자 회의록이 삼성에게 보내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직을 배신한 사람이라고 욕해도 좋다”
김 변호사는 이번 폭로를 결심하게 된 이유와 관련해 “내가 일간지에 칼럼을 쓰면서도, 삼성 이야기는 피하겠다고 (삼성 측에)다짐했다. 그런데 삼성 기사가 나올 때마다, 나를 의심하고 압박하고, 미행했다”며 “나에 대한 감시는 퇴사 전부터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그러더니 삼성 인사가 나서 나를 일군 로펌에서 내쫓았고, 사회에서 고립시켰다”며 “심지어 삼성은 인생 말년을 아내와 손잡고 산책하면서 보내겠다는 소박한 꿈마저 앗아갔다”고 이번 폭로 배경을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끝으로 “많은 고민을 했고, 괴로웠다. 조직을 배신한 사람이라고 욕해도 좋다”며 “하지만 재벌이 사법체계를, 국가 기관을, 우리 사회를 더 이상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번 저의 죄를 고개 숙여 반성합니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