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출입하던 현관 셔터가 내려지고 경찰 병력이 안팎으로 배치되어 완전히 봉쇄된 상황이다. 건물 쪽문을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는 상태며 쇼핑중인 손님들도 쪽문을 통해서만 나가고 있다. 경찰 병력과 점장 등 회사측 관리자들은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 경찰 병력에 의해 안팎으로 봉쇄된 홈에버 매장 |
홈에버 바깥에서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와 지역 시민, 사회단체 주최로 곧 오후 7시부터 홈에버 파업투쟁을 지지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릴 예정이고 미리온 관계자들은 앰프 등을 설치하며 역시 부산한 풍경이다.
민주노총은 앞서 5시 40분경 홈에버 측은 조합원들이 통로를 봉쇄하자, 카트로 농성장으로 통하는 길을 막고 안내요원을 배치, 손님들을 우회시켰다. 계산대마다에는 대체 요원들이 투입되었고 저녁이 가까워 오면서 손님들은 늘어난 모습이다.
조합원들은 깔고 앉아 있던 골판지 뒷면에 각자 요구사항들을 적고 그것을 발표하는 시간을 잠시 갖기도 했다.
"우리의 위원장을 돌려달라"
"내 자리에서 일하고 싶다. 부서이동 협박 말라"
"궁뎅이 아프다. 빨리 협상하자!"
"대체인력 너희들 남의 일이 아님을 알라"는 등 각양각색의 요구가 생생하게 적혀 있어 박수를 받았다.
▲ 골판지에 써내려간 조합원들의 요구 |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이채위 조직국장은 시내 구 주리원 백화점, 현 뉴코아 아울렛 성남점의 예를 들면서 "아울렛은 대부분 입점업체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이랜드 측에 대항할 이가 아무도 없다"며 "여기서 우리가 무너지면 홈에버 역시 뉴코아 아울렛처럼 사측의 전횡을 제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북구 비정규지원센터 정민주 상담실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정민주 실장은 "홈에버에는 없는 것이 많다"며 "노동자들이 편하게 쉴 휴게실도 없고 노동조합 사무실도 없다. 사측이 노동조합을 교섭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그런데도 홈에버에는 기도실이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정 상담실장은 "노동자들이 1층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런 게 말이 되느냐. 지금 있는 기도실을 노동조합 사무실로 바꿔야 하고 이런 식으로 조합원들이 지혜를 모아 하나하나씩 아이디어를 모으면 우리의 요구안이 마련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홈에버 울산분회, 매장 입구쪽 통로 막고 연좌
[4:10] 북구 홈에버는 소강상태
4시 10분 현재 울산 홈에버의 상황은 소강상태다.
홈에버 울산분회 조합원들의 농성 대오는 긴장된 빛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여유 있고 비교적 환한 표정이다. 매장 안쪽은 손님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한산한 편이고 홈에버 계산대마다엔 보안요원들이 배치되어 있다.
▲ 홈에버 울산분회는 점거농성 중 |
오후 2시 30분 경 1층 로비에 모인 홈에버 울산분회 조합원들은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했다. 이 도시락은 시민 한 분이 자발적으로 도시락 값을 지불하고 농성장으로 보내온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조합원들은 몸짓패 '무리'에서 준비한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배우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3시경 조합원들은 홈에버 매장 입구쪽 통로를 막고 연좌했다. 즉석 집회가 이어졌다.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이채위 조직국장은 마이크를 잡고 "시민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다. 이랜드, 홈에버 조합원들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투쟁해 왔지만 오늘 아침 서울의 투쟁 농성장에 공권력이 투입되는 등 도저히 좌시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르렀다"며 "인터넷 지지글을 부탁했다. 또 "투쟁중인 조합원들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집회 진행중에 몇몇 입구는 아예 셔터를 내린 채 철저히 봉쇄됐고 입구 중 하나만 열린 상태다. 그나마 그 입구에도 경찰이 도열해 앉아 있는 형국이다.
경찰은 수시로 농성 대오의 동태를 살피며 오갔고 사측 관리자는 농성중인 조합원들에게 다가와 "(매장으로 통하는 입구를)길을 뚫어라. 이거 불법이다"라며 은근한 협박을 가하기도 했다.
이어지는 집회에서 이채위 조직국장은 "당신들 법 좋아하는데 당신들부터 법 지켜라. 당신들은 갖은 부당노동행위를 다하고도 오늘 아침에는 공권력을 동원해 파렴치한 행동을 일삼았다"며 "박성수 이랜드 회장이 와서 하루만 계산대에 서서 일을 해보면 조합원들의 심정을 알 거다. 하지만 그럴 마음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서 "그 한 사람이 아름다운 것만 보고 아름다운 것만 즐기고 살기 위해서 수천 명의 노동자가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3시 30분경 몸짓패 '무리'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민중가요 '바위처럼'에 맞춰 율동을 배웠고 몇몇 조합원들이 앞에 나와 함께 율동을 즉석에서 보여주기도 했다. 동료의 율동에 박수를 보내는 조합원들은 밝았고 농성장을 지켜보던 관리자, 사복경찰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홈에버 매장을 찾은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조합원들이 율동하는 모습에 관심을 보였다.
집회 도중 조합원 한 분이 마이크를 잡고 고객들에게 드리는 글을 낭독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고객 여러분. 우리는 홈에버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입니다. 저희가 이렇게 투쟁에 나선 것은 바로 이랜드 회사측 때문입니다. 평화적으로 대화를 요청하고 협상이 잘 될 때까지 기다려왔지만 사측은 임금체불, 불법노동행위로 나왔습니다. 저희도 가족이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짤릴지 몰라 불안하기만 합니다. 이랜드가 불법행위를 중단하여야 합니다. 고객 여러분,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이해해주시고 지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어 다른 조합원도 홈에버에서 일을 하고 있는 비조합원들에게 드리는 글을 낭독했다.
"우리의 요구는 너무나 소박합니다. 하지만 회사측은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노조에 가입 안 하고 일하시는 동료 여러분, 불편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이랜드는 우리 노동자들에게 거짓말을 일삼고 있습니다. 우리 목줄을 죄고 직무직급제를 실시하는 식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당당히 권리를 요구하고 단결해야만 우리 일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회사에게 경고합니다. 우리는 시키는대로만 일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집회는 계속 이어졌고 조합원들은 8박자 구호로 "모니터링 폐지하라"고 외쳤다.
▲ 힘겨운 투쟁 속에서도 홈에버 울산분회 조합원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
이어 사회자가 고객들을 향해 "고객 여러분, 모니터링이 뭔지 아십니까? 회사측에 찍히면 동료들 앞에서 자아비판을 하라고 시킵니다. 이런 비인간적인 행태는 중단되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하고 "여러분도 가족 중에 누군가가 해고되면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불편하시더라도 이랜드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양돌규 현장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