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자본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점거 20일째, 뉴코아-이랜드 노동자의 간단없는 싸움이 이랜드자본 뿐 아니라 자본과 정부의 거대한 구상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실로 볼 품 없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 가장 낮은 곳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혹독한 노동을 견디며 살아온, 조직되지 않아 아무런 사회적 영향력도 없어보였던 '여성노동자'들의 힘이다. 이 소수의 여성노동자들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 선진노사관계 구축, 소득 3만 불 시대를 주창하며 노무현정부가 지난 4년간 공들여 세워놓은 탑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있다. 예기치 않았던 여성노동자의 저항 앞에서 비정규법 개악을 일관되게 강행해왔던 자본 내부에서조차 법 개악 과정의 평가와 적용을 두고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결국 공권력을 투입할 모양이다. 물론 노무현 정부에 있어 '공권력 투입'은 조금도 낯선 용어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반 년 만에 철도노동자의 파업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했고, 공권력 투입 직후인 그해 9월 선진노사관계로드맵을 발표했다. 입만 떼면 정규직의 주머니를 털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에 분단을 획책했다. 사회적 합의체체를 구축하기 위해 민주노조운동 위아래에 노골적으로 개입했고, 그 결과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과 계급성을 심대하게 훼손하기에 이르렀다. 이윽고 한미자유무역협정 추진과 함께 노동유연화의 법제도적 구상은 완성 단계에 도달했다. 아마 더 이상 걸림돌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그 배경에는 항상 공권력이라는 백그라운드가 작동하고 있었다.
뉴코아-이랜드 노동자의 점거농성과 노사 협상 과정은 우리 사회 계급투쟁의 본질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거대한 드라마다. 뉴코아-이랜드 노동자의 저항은 참여정부가 구축해온 노동유연화 4년의 공과를 근저에서 뒤흔들며, '보호'로 은폐되어왔던 비정규법의 계급적 속성을 낱낱이 까발리고 있다. 성질 나쁜 개별 자본가의 고집과 갈 곳 없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오기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 아닌 것이다. 지금 자본과 정부의 소망은 단 하나, 어떻게 하면 사태를 수습하고 비정규법을 '안착'시킬 것인가에 있다. 비정규법 시행과 안착이 자본의 노동유연화 요구를 관철하는 결절점이자, 동시에 한미FTA를 공모한 신자유주의지배연합의 안정된 정치적 재편을 보장하는 일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랜드자본이 사태 해결을 위한 안을 내놓지 않는 것은 안을 내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안을 낼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측이 내놓은 안이 '전향적 검토' '고통분담' '정규직 전환은 면담 후' '고소고발 선처' 등과 같이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반면, 노조측의 요구는 '3개월 이상 노동자 고용보장' '24개월 이상 노동자 정규직화' '해고자 복직' '농성에 따른 고소고발 철회' 등과 같이 구체적이고 분명하다. 이랜드자본은 법대로 하기 위해, 비정규법 안착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협상전술에 임하다 보니 사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입장을 되풀이했고, 노조측은 시행령에 따른 해고 위협 앞에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방어적인 요구를 하고 있을 뿐이다. 바로 여기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가 빚은, 비정규법 시행령에 내포된 계급 적대가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을 따름이다.
이랜드자본이 명분을 쌓기 위한 교섭 전술을 펼친 점도 그렇다. 사측이 양보를 했지만 노조는 하지 않았다는 여론을 끌어내기 위해 수십 시간 같은 말을 반복하며 교섭과 여론전을 펼쳤다. 아울러 조합원 내부 단결을 교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왔다. 그러나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여론은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를 따르고 있고, 조합원 내부의 단결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자본과 정부에 있어 뉴코아-이랜드 노동자의 저항을 어떻게 관리하고 돌파하느냐의 문제는 비정규법 안착의 리트머스 시험대이다. 바야흐로 '안착'을 위한 '특단의 조치'는 불가피해보인다. 노무현정부가 애써 표정관리하며 감춰왔던 신자유주의 내면의 폭력성을 또다시 드러내야 할 '위기'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그러나 노무현정부는 촌각을 다투는 공권력 투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공권력 투입은 더 큰 불행을 초래할 것이다. 설령 노동자의 점거농성을 공권력으로 굴복시킬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이는 일시적인 진압 성공일 뿐 비정규법 '안착'의 소망으로 이어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이미 휴지조각으로 판명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비정규법을 폐기하는 것만이 더 이상의 불행을 막을 수 있다. 비정규법을 폐기하고 집권 이후 선진노사관계 구축과 노동유연화 강화 정책 때문에 비롯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방안을 찾는 것만이 유일한 사태 해결의 길임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