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작년 8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면서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무기계약근로자’라는 형태를 제시해 공공기관들이 현재 비정규직을 ‘무기계약근로자’로 전환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정부는 작년 8월 확대되고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5만 4천명을 무기계약근로자로 전환 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정부는 무기계약근로자로의 전환이 마치 ‘정규직화’인 것처럼 선전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무기계약근로자는 그저 계약기간이 없는 계약직 노동자이다. 1년, 2년 기간을 정해놓지 않은 것 뿐 이들의 대우나 노동조건은 계약직 노동자와 같다. 이에 노동계는 무기계약근로자 전환에 대해 “오히려 차별을 고착화 시킬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차별을 위한 ‘합리적 이유’ 만들고 있는 철도공사
철도공사는 작년 11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 따라 ‘철도공사 비정규직 운영방안’을 건설교통부에 제출한 바 있다. 당시 철도공사는 총 40개 직종 3천88명 중 14개 직종 1천982명을 무기계약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최근 입수된 ‘비정규직 운영방안 검토보고’에 따르면 철도공사는 환경관리원 등 일부 독립 업무를 ‘먼저’ 외주화 하고, 동일 유사업무는 별도직군을 신설해 무기계약으로 전환하는 것을 계획으로 제출했다.
철도노조가 이런 계획을 세우는 데는 오는 7월부터 시행될 비정규 관련 법안 중 ‘차별시정 조치’를 비켜가기 위해서다.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서는 “사용자는 기간제근로자임을 이유로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에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차별적 처우’란 “합리적 이유 없이 불리하게 처우하는 것”을 말한다.
철도공사는 지금까지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별도의 직군으로 묶어 차별은 그대로 유지한 채로 ‘합리적 이유’를 만들어 차별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은행의 분리직군제로 시작된 것으로 정부와 사용자 측에서는 이를 적극 홍보하며 수용하고 있다. 이를 철도공사가 적극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철도공사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일정정도의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으로 전환하면서 마치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듯 한 생색을 내면서, 일부 독립 업무를 ‘먼저’외주화 하고 나머지 직군은 차례로 외주화 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 8월, 철도공사는 직접고용 비정규직 3천여 명을 전원 외주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지만, 이 계획이 언론에 공개되자 결정된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 철도노조는 3일, 철도공사의 무기계약 전환계획을 비판하며 '완전한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철도공사, 차별시정 피하려 무기계약 분리직군 만들려 해
이에 대해 민세원 철도노조 KTX서울열차승무지부 지부장은 “철도공사는 무기계약 전환을 외주화의 전단계로 인식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민세원 지부장은 “그동안 법에서 노동자를 기간의 정함이 없는 노동자와 기간의 정함이 있는 노동자로 분류하던 것을, 정부가 나서서 ‘무기계약근로자’라는 또 다른 형태의 노동자를 만들어 냈다”라며 “이는 차별을 고착화 시키는 것이며, 직군 자체를 외주화 시키는 방식으로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쉽게 외주화 할 수 있는 방식을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철도공사의 비정규직 관련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
철도공사의 비정규 대책을 보면 별도직군으로 만들어질 비정규직 노동자는 58세 까지 정년을 보장하지만 55세 이후에는 고령자 허용에 따른 기간제로 운영하고, 임금은 정규직의 7~80% 수준으로 하되 호봉제를 폐지하고 직무에 따른 차별 임금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며, 별도의 인사규정을 제정해 정규직화의 ‘합리적 차별’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KTX-새마을호 승무원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편, 철도공사의 비정규직 대책에는 내일이면 투쟁을 시작한 지 400일이 되는 KTX 승무원과 100일이 넘은 새마을호 승무원 문제 해결에 대한 것은 한 줄도 없다. 지난 3월 28일 철도공사와 철도노조의 노사교섭도 서로의 입장 만을 확인한 채 별 성과 없이 마무리 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엄길용 철도노조 위원장은 “철도공사는 비정규직 차별금지를 피하기 위해 합리적 차별을 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라며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합법화 하는 것이며 영구화 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철도공사와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비정규직 대책을 하나도 합의할 수 없으며, 철도공사에 소속되어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당장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철도노조는 3일 ‘무기계약 전환’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강도 높은 투쟁을 이어갈 예정이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KTX-새마을호 승무원을 제외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완전한 기만이다”라고 지적하고, “철도공사는 차별시정은 준비하기는커녕 회피하려고 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만을 서류상으로, 형식적으로 분리해 합리적 차별을 두고자 하고 있다”라며 “철도공사는 별도의 무기계약 직군신설 및 취업규칙 재정을 즉각 중단하고 상시고용 기간제 비정규직 정규직화 이행방안을 전제로 노사자율교섭에 나서라”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