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텍 산재불승인 철회와 재심사를 요구하며 김혜진 지회장과 노동, 사회단체 대표자 17명이 단식농성에 돌입한 17일,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조합원 감시와 차별로 인한 집단정신질환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근로복지공단과 사태해결을 위한 면담을 진행했다.
이 날 면담은 지난 10일 공대위와 근로복지공단 측의 면담 과정에서, 장기화되는 사태해결을 위해 공대위와 공단 실무단의 실질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공단 관리이사의 제안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결의대회 시작 직전인 오후 2시 산재환자 당사자 1명과 금속노조, 노무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측 관계자 등 4명의 공대위 관계자와 공단 측 2명의 면담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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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면담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공단은 관악지사의 심사 과정에서의 어떠한 하자도 인정할 수 없다는 자세로 일관했다.
"사장하고 술 먹고 심사한 것 밝혀지면 그런 것만 결정적 하자냐"
공대위는 “지난 10일 면담과정에서 관악지사에서 노조 측의 결정적 자료를 누락, 오기, 왜곡했다는 지적에 공단 측이 수긍했고 그에 따라 △불승인 철회, 관악지사의 산재재조사 실시 △공대위 관계자들에 대한 가처분 및 고소 고발 취하 △재심사청구시 입장에 대한 답변을 듣기 원한다”고 밝혔다.
공단 측은 “누차 밝혔듯 공대위에서 결정적 하자가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 공단도 같은 판단을 했다면 불승인을 취하할 것이나 결정적 하자가 있다고 판단되지 않으므로 불승인 철회나 재조사할 의사가 없다”, “법적 절차에 따라 심사청구하면 될 일이다”, “방용석 이사장 영정 철거만으로는 부족하며 천막 철거 등 불법행위를 명백히 시정하기 전까지는 고소고발 등을 취하할 수 없다”, “심사 청구한다면 독립기관인 심사실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심사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즉, 공단은 공대위가 말하는 자료의 누락과 특정자료의 왜곡이 불승인을 철회할 만큼의 결정적 하자가 아니라는 것.
지난 5월 10일 하이텍알씨디 코리아 조합원 13명 전원은 조합원 감시와 차별 등 노조탄압으로 인한 집단정신 발병을 이유로 산재신청을 제기했다. 해당 지사인 근로복지공단 관악지사는 그 달 27일 13명 전원에 대해 구두로 불승인 결정을 통보했다.
그러나 이 결정에 대해 해당 노동자들과 공대위는 “하이텍 사측과 집단적 산재승인에 대한 부담을 우려한 정치적 결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현장조사와 조합원 당사자 면담 과정에서 드러났던 편향적이고 고압적인 지사의 태도는 차치하더라도 노조 측이 제시한 결정적 자료를 누락하고 오기, 왜곡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일었다.
공대위는 이번 산재가 ‘차별과 감시로 인한 정신질환’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노조가 제시한 30여 건의 자료 중 ‘차별과 감시’를 입증하는 자료는 결정적 자료. 노조는 이를 밝히기 위해 2003년 8월 하이텍알씨디코리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결과, 2003년 10월 국정감사 결과 자료 제출했다. 그러나 지사는 이 자료들을 자문의협의회에 제출하는 ‘조사복명서’에서 누락시켰다. 또한 지사는 부당해고와 관련 지노위와 중노위 승소에 대해 사측이 제기한 항고 사실만을 적시한 채, 공격적 직장폐쇄에 대한 노조의 항고 사실은 누락시켰다.
이 날 자리에서 공단측은 “지사는 종합적 판단 속에 복명서를 제출한 것”이라며 “불승인을 철회할 만큼의 결정적 하자라고 판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민원인이 결정적 중요도를 가지고 제출한 자료를 누락하는 것이 결정적 하자가 아니면 도대체 결정적 하자가 뭐냐, 사측이 준 술 받아먹고 조사한 것이 밝혀지면 그런 것만 결정적 하자라는 거냐”고 다그쳤다.
지사 조사의 어떤 하자도 인정할 수 없다는 속내
70여 일간의 농성 과정에서 공단이 ‘누차’ 같은 내용으로 반복하고 있는 말은 “하자가 있다면 법적 절차를 거쳐 심사청구하라”는 것. 그 밑바닥에는 어떤 식으로든 지사의 결정에 하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아집이 깔려있다.
지난 면담과정에서 지사는 자료의 누락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으나, 면담 과정에서 자료 누락 사실이 밝혀졌다. 이 날 사실 확인 과정에서 관악지사 관계자들의 곤혹스런 표정은 <참세상>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러나 노조가 요구하는 재조사 실시 자체는 이후 조사의 불공정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는 조사 결과의 번복보다 공단이 더 부담스러웠던 듯 보인다.
이런 속내는 오늘 면담에서도 드러났다. 공단 측은 “정말 문제가 있다면 행정절차에 따라라. 사실 조사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 지사에서 다시 해봤자 무슨 다른 결과가 나오겠나 차라리 독립적 기관인 공단의 심사실에 맡기는 게 더 상식적이지 않나” 라고 말한다.
물론 지난 6월 공단 이사장 면담에서 이사장이 직접 산재 당사자에게 막말을 하고, 폭력으로 끌어냈던 과정에서 보듯 현재까지 공단이 보인 폭언과 폭력사태 등 고압적 자세를 참고한다면 공단은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을 산재환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든 산재조사의 문제점은 인정하지 않고 넘어가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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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 구로구위원회 위원장에게 폭력을 행사하러 가는 방용석 이사장(동그라미안)과 이를 말리는 민주노동당 금천구위원회 위원장 [출처: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집단정신질환해결 공대위] |
공대위 관계자로 면담에 참석한 금속연맹 산안부장은 “상식이 뭐냐, 명백한 행정상 문제가 있었다면 법적절차 이전에 기관장의 판단에 따라 재심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자고 재심사 제도가 있는 것 아니냐”, “지난 6년간 연맹에서 산재업무를 담당했지만, 민원인이 하자를 이유로 요구하는 재심사가 이런 식으로 거부당한 적은 없다”고 질타했다.
어쨌든 하자를 인정할 수 없다는 공단의 우기기와 법대로 하라는 앵무새 소리가 계속되는 동안, 산재 노동자는 회사에 의해 병든 몸으로 농성장에서 삼복 농성을 진행하고 급기야 아슬아슬한 고공 아시바에서 경찰 특공대에 끌려 경찰로 연행되는 현실.
근로복지공단의 자존심은 어떠한 경우에도 산재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야 할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는 사실인가, 아니면 노사대립의 도구로 산재를 활용한다는 그들의 정치적이고 선험적인 판단에 따라 일개 산재 노동자들의 항의에 꿋꿋이 버텼다는 사실인가.
오늘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과 신뢰’ 근로복지 공단 앞에서는 일하는 노동자들의 ‘절망’만이 여실히 드러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