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수출이 최고 기록을 갱신하고, 하루 3-5조원이 주식시장을 통해 거래 될 정도로 국내에 많은 자본이 돌며, 신용불량자가 줄었다는 기사 또한 사회면 한 켠을 장식하며 ‘경기 회복론’에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런 수치상의 감소는 오히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미디어참세상은 현재 금융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파산 신청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와 정당을 기반으로 개인 금융피해자들의 사례를 살펴보고, 해결을 위한 활동과 대안을 함께 모색해 보고자 한다. 금융피해자 기획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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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독촉에 시달리던 20대 신용불량자가 카드 빚 천만 원을 갚을 길이 없자, 장기 매매를 선택했다. 장기는 4,500만 원에 팔렸지만 브로커가 소개료 2,000만 원을 챙겨 실제 2,5000만 원을 받게 됐다. -1/30 sbs 뉴스
직장생활을 하던 B씨. 회사 상황이 나빠져 임금이 6개월 체불됐다. 카드로 생활을 꾸려가던 중 자녀C가 사고를 당해 1,500만 원을 병원비와 수술비로 지출하게 됐다. 결국 카드로 돌려 막다가 4천만 원에 가까운 빚을 지게 됐다. - 까페 k
친구가 꼭 갚을 수 있다고 약속해 대환보증을 섰던 C씨. 두 개의 카드에 대환 보증을 섯으나 결국 그 빚이 2천만 원 넘는 상황에 이르렀고, 친구는 못 갚겠다 버티더니 연락이 두절된 상황. 보증을 선 C씨에게 갚으라는 독촉이 오는데, 대학생인 C씨도 대학등록금 때문에 캐피탈에 5백만 원의 빚이 있다. 월세를 사는 상황에서 이 빚을 갚을 생각을 하니, 앞날이 깜깜할 뿐이다. -까페 C
파산 신청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의 사연이다. 전국에 400만이 넘는 노동자, 민중들이 현재 개인이 책임질 수 없는 금융 부채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아니 그 가족까지 계산한다면 어림잡아도 1,000만 명 이상이다. 이미 지난 시간 정부의 신용카드 남발 정책과 그에 맞물려진 경기 악화로 인해 생계형 빚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왔고, 개인뿐만 아니라 주변인의 동반 책임으로 금융 피해 사례는 더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배드뱅크'등 기한 연장을 통한 해결을 시도했으나 이 또한 임기 응변에 불과해,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신용불량자, 금융거래에서 신용 불량으로 거래가 어려워진 사람
파산자, 빚을 갚기 어려운 사람
흔히들 신용불량과 파산을 동일한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신용불량이란 금융거래에 있어서의 신용이 불량이 된 사람, 즉 '빚이 있고, 돈을 갚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채권자인 금융기관이 '신용불량' 여부를 결정하고, 채권추심 등을 통해 부채를 갚아 가는 경우를 말한다. 금융권에서의 경우 '신용불량자에 대해 30만원 이상의 금액을 3개월 이상 연체한 자'라고 기준하고 있으나 경우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파산은 경제적으로 모든 권한을 상실하는 것으로, 법원이 파산여부를 결정하고,‘빚에 대한 지급능력 여부’가 가장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된다. 결국 거액의 빚이 있는데 이 당사자가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것으로 법원이 판단 할 수 있다면 파산법에 근거해 그가 가진 빚을 탕진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파산 선고를 받을 경우 의사, 변호사, 공무원 등의 직업에 제한이 생기지만, 선거권이나 피선거권 등 기타 일반 사회활동에는 지장이 없다. 그리고 법원의 파산 선고로 인해 빚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으나 파산을 신청한 자에게 보증을 섰던 보증인의 빚은 탕감되지 않는다.
사실 파산과 관련해서는 파산 선고를 받느냐의 여부 자체보다는 기본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하는 빚을 갚아야 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새 생활을 생활할 수 있게 해 주는 ‘면책’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면책을 통해 다시 사회활동의 기반을 갖추고, 이후 복권을 통해 제한된 권리들을 다시 찾을 수 있다. 이런 의미로 미국 사람들의 경우 파산을 신선한 새 출발 (fresh start)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관련 활동가들은 파산의 조건과 신용불량자와는 직접적인 연계성이 없다고 설명한다. 물론 빚을 지게 되고, 신용불량자가 되어 빚을 감당할 수 없게 될 때 파산을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보증으로 인한 사고처럼 거액의 빚을 떠 안게 되 '지급 불능'의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경우 처럼 신용불량자가 아니어도 파산신청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 피해자, 왜 생겼나?
카드 활성화 정책 등 정부의 금융정책 실패 책임 커
정부는 신용불량자와 금융 파산 신청자들 등 금융피해자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며 '카드 남발'을 지적한다. 하지만 IMF 이후 400만이 넘는 신용불량자 등 금융피해자가 급증한 이유에 정부가 추진한 '내수 경기 활성화 정책과 카드 정책 규제 완화'라는 근거는 빠질 수 없다. IMF 이후 가계의 실소득이 급감하고, 고용이 불안한 상황에서 확산된 카드 권장 정책은 당장의 생존을 위한 생활비 충당처가 됐고, 금융피해자 중 다수가 생계형 문제인 것만 봐도 이런 상황을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다.
또한 1960년대 이미 개인의 면책을 인정하는 파산법이 제정됐으나 IMF 이전의 경우 정부가 금융산업을 강하게 규제했기 때문에 파산이 공론화 되지 못했었다. 당시에는 사채업과 채권추심업이 불법이었고, 은행도 정부의 감독을 강하게 받았고, 이자제한법 등에 의해 원칙적으로 이자채무에 대해 폭리를 취하는 행위는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IMF 이후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금유정책에 의해 이런 규제들이 대거 완화 됐고, IMF 이후 내수 경제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카드 사업'은 정책적으로 권장 되기 까지 했다.
시장의 검은 자금이었던 사채업이 허용됐고, 적극 광고로 돈이 부족한 노동자 서민의 생활의 틈으로 깊숙히 침투해 들어왔다. 그리고 여신 심사가 완화 됐고, 채권 추심업도 합법화 되 한 사람이 수십개의 카드 발급 받는 것이 가능해 졌고, 이자제한법이 철폐되면서 카드 연체내지 돌려 막기를 하던 개인 부채는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이와 같은 축으로 '20대를 집중 공략한다'며 공격적 시장 마케팅에 나섰던 LG카드의 예를 들지 않아도 카드사들의 카드사용 권장과, 카드 발급 남발 그리고 카드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카드 사용 권장하고, 사회적으로 조장해 왔다. 그리고 금융시장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금융당국은 오히려 관련 규제를 완화해 주고, 카드사업을 권장하는 등 오히려 사태가 악화되는 것은 방조해 왔다. 카드빚에 생계형 자살이 줄을 이으면서, 가족 전체가 신용불량자가 되 사회 문제가 되기 전까지 이런 식의 과열 경쟁과 정부의 책임방기는 계속 되어 왔었다.
김정훈 금융피해자 파산지원연대 상근 활동가는 “현재 이러한 금융피해자들의 문제는 정부가 통계로 내놓고 있는 400만에서 줄었냐, 늘었냐 로만 판단할 수가 없다. 왜냐면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개인과, 신불자 그리고 그 가족들 등 전체 인구의 절반정도는 저임금과 이런 금융피해 속에 허덕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금융피해자의 실태를 바라봤다.
본인을 신용불량자라고 밝힌 K씨는 "현재 금융피해자들의 문제는 여신책임이 있는 카드사가 자기 이익 챙기기에 급급해 카드 발행을 남발했던 것과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정부가 사채, 채권추심 등 금융 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시킨 신자유주의 금융정책에 있다"라고 지적했다. K씨는 또한 "사실 신용불량자들의 경우는 대표적으로 정부 금융정책의 피해자다. 정부는 정책의 실패, 카드사와 금융기관의 손해를 철저하게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정말, 연체 이자율이 너무 높아 이자 때우기에도 정말 버겁다"라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정훈 활동가는 "기업의 문제나 금융의 문제에 대해서 국가는 공적자금으로 지원하고 책임지면서도 개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도덕적 해이'로 몰면서 개인의 문제로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금융피해자들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안고 최저 생활도 못하며 살아갈 것이 아니라, 이미 법제화 되어 있는 개인 파산을 활용하고, 이용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정책 실패 책임론을 넘어,
'빚'은 사회 구성원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야 할 사회적 책임
2003년 LG카드 지급불능 사태에 빠지면서 '카드 대란'이 촉발됐고, 외환카드 등 연쇄 지급불능 사태가 발생하자, 정부는 은행채권단을 중심으로 사태해결에 나섰다. 결국 산업은행이 LG카드를 인수하고, 채권단이었던 은행들은 빚을 탕감해 주고, 모회사인 LG그룹에서 일정정도 책임 액수를 내 놓으면서 이 상황은 일단락 지어 졌다.
IMF 이후 한국투자증권과 대한투자증권 처럼, 채권시장 마비를 막기 위해 공적자금이 투입한 경우도 있다. 워크아웃제로, 자력으로 회생이 불가능한 기업에 부채상황을 유예하고, 빚을 탕감해 주고, 필요에 따라 신규 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같은 맥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워크아웃에서 탈출해 중국자본에 인수 된 쌍용자동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으로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정부가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자금을(공공자금 포함) 지원하는 것은 일반화 되어 있고, 사회적으로 당연시하는 풍토이다. 그러나 개인 파산의 경우는 파산법이 1960년대 부터 적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그리 공론화 되어 있지 않다. 빚에 시달리면서도 본인 스스로가 도덕적 책임과 사회적 시선을 의식 할 수 밖에 없게끔 언론이나, 정부가 "도덕적 해이'론을 부추기며,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과 참여연대 조차도 금융피해자들과 관련해 '1,000만원 이하 부채는 원금 탕감을 해 주자'라고 제안한 바 있다. 1,000만원 이하를 탕감해 준다면 약 6조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는 제일은행 인수과정에서 정부가 돌려 받지도 못하고 지원했던 공적자금의 규모다. 그럼에도 이헌재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도덕적 해이론'을 거론하며 지난 1월 7일 “생계형 부채와 관련해서도 원금 탕감은 없다"며 '원금 탕감 불가'의 입장을 재차 확인한 바 있다.
"파산 신청을 하기 위한 법적 절차나, 문서 구비 등 이 쉽지 않지만, 사회적인 인식이 가장 넘기 어려운 벽이다"라고 김정훈 활동가는 설명을 덧붙인다. "한국사람 들 정서가 빚이 자기 잘못 때문에 생겼으니 어떻게든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고,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파산이라고 하면 사회생활 끝나는 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거다. 그러나 '실제 그것과 다르다'고 활동가는 지적한다.
"평생을 빚에 대한 책임과 빈곤한 삶으로 인해 허덕인다면 그건 개인의 삶도 불행할 뿐 아니라 이런 개인들의 상황은 사회적으로도 불안 요인이 될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빚은 털어내고 적극적으로 파산을 신청함으로써,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더 발전적인 방책이다"
한 예로 신용불량자가 결국 사회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처럼, ‘다수 노동자 민중의 경제적 문제는 사회의 불안적 요소로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이 기초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생활을 보장 하는 것 또한 국가의 책임이라는 지적이다. 그 근저에는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따른 책임론도 역시 같이 따라올 수 밖에 없다.
그는 또한 "파산신청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자신을 객관화해 본인 스스로가 '왜 내게 파산이 필요한가'를 판단하고, 사회적인 시선을 거두면서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파산을 사고해야 한다"는 설명을 덧 붙였다.
개인 부채로 자멸하며,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지탄할 것이 아니라 IMF 이후 왜곡되어 온 금융 정책 실패에 대한 복권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도덕적 멍에를 짊어진 금융피해자들, '인식의 전환'를 통해 파산에 대한 적극적 사고가 필요한 때라는 주장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