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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성에 기반한 기후정의운동의 대중적 확산이 필요하다

[녹색스트라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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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세계 기후운동의 흐름과 동향”이란 제목으로 강연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주최 측에서는 제목이 너무 논문 주제 같다며 더 좋은 의견 있으면 달라고 했지만 내 머리에서 덜 ‘논문 같은’ 제목을 뽑아내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나는 “국제 기후정의운동의 등장과 변화”라는 제목을 제안했다. 아직 ‘기후정의’나 ‘기후정의운동’을 어렵게 생각하는 시민들이 많은 현실에서 기후정의라는 개념과 운동이 출현하고 변천한 역사적 과정과 맥락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랬더니 주최 측에서 ‘기후운동’이 아니라 ‘기후정의운동’으로 해야 하는지를 물어왔다. “기후운동의 좌우를 다 보도록 하는 강의”가 되어야지 않나 하는 질문이었다.

살짝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한편에서는 정부나 기업의 캠페인이나 이들과 친화적인 NGO 활동 말고는 기후정의운동이 아닌 해외의 ‘기후운동’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국내에선 기후운동과 기후정의운동이 마치 다른 운동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게 현실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414 기후정의파업 과정에서 불거졌던 에너지 요금을 둘러싼 갈등도 이런 인식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다. 지자체와 밀착해 활동하는 지역의 경우 기후정의운동을 급진적인 요구를 내건 새로운 운동인 양 거리감을 가지고 바라보는 시선도 분명 있다.

이런 거리감에는 이유가 있다. 역사적으로 국제 기후정의운동은 1980년대부터 해수면 상승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겪는 작은 도서 국가들이나, 선주민이나 유색인종 공동체에 대한 구조화된 차별로 비대칭적인 오염과 재난 피해를 감수해야 했던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아래로부터 조직된 운동이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정부와 지자체, 전문가와 인플루언서에 의해 위로부터 주도된 맥락의 차이가 분명하다. 게다가 2018-19년을 지나며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해외 ‘기후운동’이 소개되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그레타 툰베리의 ‘학교 기후파업’이나 영국 멸종반란의 비폭력 시민불복종 기후행동 등을 언론에서 생소하고 자극적인 소재로 활용하거나, ‘그린(뉴)딜’과 같은 미국과 유럽 제도 정치권의 정책 영역으로 다뤘던 측면이 강했다. 이 과정에서 풀뿌리 당사자가 생존의 위협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국제 기후정의운동의 역사적 맥락은 생략되었다.

그러나 역사적 요인만 탓할 건 아니다. 기후정의동맹으로 대표되는 ‘급진적’ 기후정의운동이 치고 나가면서 당사자 중심성 원칙이 강화되고 또 운동의 외연도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더 큰 기후(정의)운동에 분열의 분위기가 감지되는 것도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한국에서 가장 폭넓게 참여 단체를 포괄하는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인데, 기후정의동맹의 약진이 기후위기비상행동이라는 큰 ‘몸통’을 전제하지 않고는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이는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행히 두 연대체가 협력을 유지하며 기후위기 대응과 거꾸로 가는 정부 정책에 공동 대응을 하고 있다. 그런데 둘 간의 관계를 내용과 요구의 온건함과 급진성과 같은 잣대로 보면서, 운동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보다 온건한 요구를 내걸어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정말 그러할까?

대중적 확장을 꿈꿨던 멸종반란 영국의 실험

영국에서 시작된 멸종반란 운동은 비폭력 시민불복종 행동을 전개하고 대규모 연행 사태를 만들어 내면서 기후위기와 그 뿌리를 이루는 부정의한 체제를 고발해 왔다. 멸종반란은 도로나 교량 점거, 화석연료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회의 방해, 페인트로 건물 외관을 훼손하거나 유리를 깨는 것과 같은 전술로 지금까지 4,000명에 가까운 연행자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멸종반란은 영국 사회에 위기와 긴장을 조성하며 엄청난 백래시도 불러왔다. 여론은 양분되고 비난도 거셌지만 그만큼 영국의 기후위기 담론은 주류화했고,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었음에도 다른 나라에 비해 앞선 기후정책을 채택할 수 있었다.

이랬던 영국 멸종반란은 2022년 마지막 날 깜짝 놀랄 선언을 발표했다. 2023년에는 대중의 일상을 교란하는 불복종 행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스스로도 “논쟁적”이라 표현한 이 결정의 근거는 영국에서 변화를 위한 긍정적 조건이 조성되었기에 이 속에서 누구도 빠뜨리지 않는, 모두가 참여하는 대중적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4월 21일부터 4일간 의회 앞에서 10만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군중을 모아 정부를 변화시키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4월 행동의 이름은 “큰 싸움(The Big One)”으로 붙여졌다.

언론은 멸종반란이 불복종 행동을 포기했다고 선전하며, 가중되는 탄압과 민심 이반을 이유로 지적했다. 악의적인 보도도 적지 않았지만, 이런 분석이 완전한 거짓말도 아니었다. 영국 우파는 오래전부터 멸종반란을 비롯한 급진 기후 단체를 ‘테러리스트’ 단체로 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었고, 작년부터 본격화된 경찰법 개정 논의에 따라 올해 5월부터 강력 접착제를 이용해 도로나 바닥에 손을 붙이거나 도로나 교량 등 ‘핵심 인프라’의 작동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최고 12개월의 실형을 선고할 수 있게 되었다.

전술상 애초 ‘이반’된 민심은 있을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멸종반란은 여론의 양분화를 통해 기후 문제를 이슈화하려는 전략을 택했다. 더 큰 문제는 연행을 감수할 활동가 조직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멸종반란은 2022년 10월 행동에서 ‘연행자 3,000명’을 조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처절하게 실패했고, 비폭력 시민불복종 전술의 효용성이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내부 논쟁은 더 커졌다. 또한 시간을 다투는 위기 대응에서 변화의 속도는 느리기만 했고, 멸종반란 외에도 급진적 전술을 펼치는 단체들이 늘고 있었다. 이런 맥락은 멸종반란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전술을 시도할 조건을 조성해 주었다.


멸종반란의 4월 행동은 참여를 극대화하기 위해 200개가 넘는 단체와 함께 누구나 안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준비되었다. 주최 측은 경찰의 협조를 받으며 행사를 진행했고 의회 광장과 주변 도로는 피켓을 든 시민과 부스, 무대로 가득 찼다. 나흘 동안 이 공간에서 다양한 연설회와 음악 공연이 열렸고 시민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큰 싸움’은 정작 큰 싸움이 되지는 못했다. 멸종반란은 10만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공언했지만 22일 생물다양성의 날에 맞춘 행진에 6만 명이 참여한 것이 최고점이었다. 멸종반란은 정부를 향해 마지막 날 5시까지 요구안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언론 보도도 거의 없었다.

그나마 가장 열심히 보도한 가디언은 4월 행동이 여러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급진적 에너지’를 대가로 한 것이었다며,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저항성만 보였다 평가했다. 멸종반란의 공식 매체인 글로벌 뉴스레터도 멸종반란의 열린 접근과 새롭게 만들어진 연대는 축하할 일이지만 체제에 제대로 도전하기 위해서는 규모가 더 커지고 불복종 행동도 곁들여야 할 거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실제 4일간의 행동을 마무리하는 ‘시민의회’에서 참가자 80%는 불복종 행동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5월 23일 화석연료기업 쉘의 주주총회에서 전개된 멸종반란 활동가들의 불복종 행동 소식은 멸종반란 영국(@xrebellionuk)의 공식 인스타 계정을 통해 전해졌다.

‘급진파 효과(radical flank effect)’

‘큰 싸움’의 경우 하나를 가지고, 그것도 지금 당장 멸종반란 영국의 실험이 실패했다고 단언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어떤 운동이 택한 전술과 전략의 효과는 항상 즉각적으로 관찰되는 것도 아니고, 대중성과 급진성의 관계가 단선적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멸종반란 영국의 실험을 통해 우리는 운동의 대중적 확장에 대한 열망이 어떻게 급진적이거나 온건한 행동과 상호관계를 맺으며 변화해 가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때 ‘급진파 효과’라는 개념은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급진파 효과’는 미국의 흑인 시민권 운동에서 급진파와 주류의 관계를 연구했던 허버트 헤인즈의 책에서 유래한다.1 이 책에서 헤인즈는 급진파가 등장하면서 온건한 주류 단체에 백인 후원금이 증가하고 시민권 확대와 관련된 입법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급진파 효과’라 이름 지었다. 급진파가 만들어 낸 긴장과 혼란으로 인해 이전까지 ‘급진적’으로 여겨지던 주류 운동이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수용 가능한 대안이 되면서, 주류 시민권 단체들의 영향력과 흑인 권리를 확대하는 데 “필수적”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책은 미국 시민권 운동에서 보다 급진적인 운동 분파가 등장한 결과 백인들의 백래시로 인해 주류 운동이 쇠퇴한다는 당시 지배적인 견해를 뒤집었다.

급진파 효과는 다양한 사회운동에서 관찰된다. ‘공산주의자’라 비난받고 헤인즈의 책에서는 ‘급진파’로 분류되었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말콤X나 블랙팬더와 같이 더 급진적인 분파가 나타나면서 상대적으로 온건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어 점진적 개혁이 가속화된 것, 혹은 한국에서 메갈리아의 활동이나 ‘불편한 용기’의 혜화동 시위로 인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페미니즘이 사회적으로도 주류화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급진파 효과 개념은 이처럼 비록 급진파 입장에서는 의도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할지라도 (그래서 성에 차지 않을지라도) 온건파의 입지를 강화해서 더 큰 운동의 진전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었는데, 멸종반란 영국의 ‘탈불복종 선언’도 급진파 효과 개념에 큰 영향을 받았다. 멸종반란은 2018년 출범 이후 끊임없는 내부 논쟁을 거쳤고 이 과정에서 동물반란(Animal Rebellion), 저스트스탑오일(Just Stop Oil, JSO), 인슐레이트브리튼(Insulate Britain, IB), 과학자반란(Scientist Rebellion) 등이 독자적인 행보를 시작했고, 멸종반란보다 더 급진적인 행동을 전개하며 정부와 보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멸종반란은 보다 대중적인 전술을 통해 ‘온건화’의 길을 걸으며 더 큰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4월의 ‘큰 싸움’은 분명 영국 기후정의운동이 가진 역동성과 잠재력을 보여주었지만 ‘성공’했다는 평가를 찾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멸종반란 주변에서는 ‘온건파(moderate flank)’ 강화를 통해 운동의 대중적 확대를 지향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이런 입장은 한국에서도 파장을 그리는 모양새다. 다양한 전략적 고민이 논의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철저히 전술의 문제로 시작된 ‘급진’과 ‘온건’의 구분이 내용과 요구에서의 차이로 확장될까 우려된다.

급진적 요구를 다층적인 전술로

‘급진파 효과’는 급진파로 인해 온건파가 득을 얻는, 그럼으로써 전체 운동이 진전하는 방식을 보여주지만, 종종 급진파가 전체 운동을 급진화 시키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주진 못한다. 처음 ‘플래닛 B는 없다’며 정부에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던 미래를 위한 금요일은 남반구 활동가와 교류를 통해 그 현실을 알게 되면서 요구를 급진화했고, 급진화는 멸종반란이나 썬라이즈의 급진 행동에 힘입어 더 큰 기후운동으로 확장되었다. 그린피스와 지구의 벗, 350.org는 물론 이전까지 ‘온건한’ 환경운동의 대명사로 불리던 시에라 클럽도 급진화 되며 기후위기의 역사적 책임을 묻고 체제전환을 요구하는 기후정의운동의 깃발 아래 모이게 되었다. 이렇게 기후정의운동의 몸통이 불어나고 또 정치적으로 급진화될 때 ‘급진파 효과’로 인한 변화의 폭도 더 커지게 된다.

영국의 멸종반란은 일시적 불복종 행동 중단을 선언하면서도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경제 시스템, 대중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권력에 책임을 묻는 일에 실패한 언론, 부정의에 항의할 권리를 억압하는 무모하고 부패한 정부가 기후와 생태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입장을 유지하는 가운데 위기에 대한 대응은 여전히 ‘급진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내용의 급진성이 기반이 되었을 때 이로부터 급진적 요구들이 도출되고, 이 요구들은 다시 다양한 공간에서 다층적인 전술을 통해 표현되면서 대중적 확장의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국제 기후정의운동이 대중적으로 확산한 시기가 급진적인 요구와 행동이 확산한 시기와 일치했다는 점은 대중성을 위해 급진성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방증한다. 우리는 작년 924 기후정의행진을 통해 수만 명이 기후정의, 체제전환, 심지어 ‘자본주의 철폐’와 같은 구호도 함께 외친 경험도 있다.

꼭 행동이 급진적인 것은 아니었어도 점점 많은 기후환경 단체와 기후 시민들이 급진적인 내용과 요구를 수용하고 함께 외쳤기에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를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기후정의의 문제의식이 조금이나마 진전될 수 있었다. 물론 시간은 없고, 갈 길은 멀다. 급진성에 기반한 기후정의운동의 대중적 확산이 더더욱 필요한 이유이다.


<각주>
(1) Herbert H. Haines. 1984. Black Radicals and the Civil Rights Mainstream, 1954-1970. The University of Tennessee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