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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릴 막지 마!” 못하는 게 없는 HIV 감염인이 되기 위해

[어서 와요, 소소부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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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깨고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지만,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등 정부 주도로 열리는 에이즈의 날 기념행사에서 정작 당사자인 HIV 감염인의 목소리와 참여는 쉽게 배제된다. 에이즈의 날을 제외한 나머지 364일은 말할 것도 없다. 이에 인권 운동에서는 2006년부터 12월 1일을 ‘HIV 감염인 인권의 날’로 부르며 HIV 감염인이 주체가 되고 이들을 지지하는 이들이 연대하는 장을 만들어 오고 있다. HIV 감염인 인권의 날을 맞이하여 HIV 감염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12년 차를 달려가고 있는 HIV 감염인이자 현재는 소주가 활동하고 있는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의 상근활동가로 합류하게 된 ‘소리’가 소소부부네를 찾아왔다.

오소리 “HIV감염인 12년 차라고 했는데, 처음에 감염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어?”

소리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여러 가지 검사 중에 에이즈 검사가 포함돼 있었어. 그때 알게 됐지. 그런데 자기네들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큰 병원 가라고, 치료해주지 않고 그냥 돌려보내더라.”

소주 “그거 진료거부아냐? 의료차별이네!”

한국 사회에서 HIV 감염인은 숱한 차별을 경험하는데 그중 정말 심각한 것이 바로 의료 차별이다. 모든 병원이 지켜야 하는 일반적인 감염관리원칙만 지킨다면 병원에서 HIV 바이러스가 의료인이나 다른 환자에게 전파될 일은 없다. 그런데도, 가장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할 의료인들조차 HIV 감염인에 대해 진료나 입원, 수술을 거부하는 등 HIV 감염인을 치료해주지 않고 차별하는 일이 발생해온 것이다. ‘소리’가 HIV 확진을 판정받은 약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과거보다 현재 더 많은 HIV 감염인이 진료 거부나 의료 차별을 당할 때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차별에 저항하고 있지만, 의료 차별은 많은 의료기관에서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인 문제다.

소리 “어쨌든 그렇게 확진을 판정받았는데, 멍하더라.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고. 일주일 동안은 혼자 새벽에 나가서 술 먹고 들어오고, 인터넷을 되게 많이 뒤져봤던 것 같아.”

오소리 “그전에는 에이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어?”

소리 “중고등학생 때 성교육 시간에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언론매체에서도 침대에 누워 있는 사진이나 거의 죽어가는 그런 사진만 봤던 것 같고. 그래서 도대체 어떤 병인가 싶어서 찾아봤는데 워낙 안 좋은 말들만 쓰여 있고….”

소주 “그때 주변에 얘기할 사람은 없었어?”

소리 “첫 일 주일 동안은 혼자 끙끙 앓다가 너무 답답하니까, 아주 친한 형 한 명한테, 만나서 얘기할 용기도 없고 해서 전화로 얘기했지. 그런데 다행히 그 사람 주변에 HIV 감염인 친구가 있었던 거야. 그래서 그 형이 나한테 오히려 알려준 거지. 약만 잘 먹으면 괜찮고 건강할 수 있으니까 일단 보건소 가서 등록하고 제대로 검사받고 약부터 먹으라고.”

오소리 “처음 말한 상대가 그 형이라 다행이다.”

소리 “내가 운이 좋았지. 무엇보다 힘든 거 털어놓을 사람이 생긴 거니까.”

HIV 감염인의 경우 HIV 테스트 전후 초기 상담이 매우 중요하다. HIV/AIDS에 대한 낙인과 편견, 차별과 혐오가 견고한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된 정보나 정서적 지지가 없다면 내적 낙인에 매몰돼 치료 타이밍을 놓칠 수 있고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든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에 올바른 정보 아래 잘 상담받고 잘 치료받을 수 있어야 HIV 감염인의 건강과 인권을 지킬 수 있다. 이는 더 나아가 예방과 공공보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HIV가 전파되기 위해서는 노출된 바이러스의 양이 감염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정도여야 하는데,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바이러스의 양이 미검출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는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한 HIV 감염인의 경우 콘돔 없이 성관계해도 상대방을 감염시킬 확률이 0%라는 것이다. HIV로부터 가장 안전한 성관계는 치료를 잘 받는 HIV 감염인과 하는 성관계인 셈이다. 이를 알리는 U=U(Undetectable = Untransmittable, 미검출 = 전파 불가)는 현재 전 세계 105개 국가의 1,099개 단체가 연명하고 있을 정도로 전 지구적인 캠페인이며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위해 모든 사람이 조기에 HIV를 발견하고 치료를 빨리 받아 빠르게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치료접근권이 차별 없이 안전하게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에이즈에 대한 낙인과 편견이 심하여, 12년 전 소리의 경우처럼, 병원에서조차 초기 상담은커녕 진료를 거부당하는 경우가 아직도 발생한다. 때문에 HIV 감염인들이 마음 편히 찾아가고 상담하며 소통할 수 있는 감염인 인권 단체나 자조 모임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

오소리 “지금 활동하고 있는 ‘커뮤니티 알(알)’은 어떻게 찾아가게 된 거야?”

소리 “처음에는 인터넷에 있는 감염인 카페를 찾아봤어. 그런데 오프라인 모임을 하더라고. 갈까 말까 정말 엄청나게 고민하다가 나갔는데, 거기서 마침 친구를 만난 거야. 그 친구가 ‘알’을 소개해주더라고. 거기가 나이대가 좀 더 맞을 거라고. 그래서 찾아가게 됐지.”

소주 “찾아와보니까 어땠어?”

소리 “그때 당시만 해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분위기였지. 다른 사람들이 옆 테이블에 있으면 (아우팅 우려 때문에) 에이즈나 약 얘기도 못 꺼내게 하고. 그런데도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니까 너무 좋더라고.”

오소리 “그러다 어쩌다 운영지기까지 하게 된 거야?”

소리 “2014년에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신촌에서 열렸을 때 알이 처음으로 부스를 열고 참여했는데 부스 준비 TF팀에 참여하게 됐어. 열린 공간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알 부스에 참여하는 게 부담되긴 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재밌더라고.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웃음) 그 뒤에 알 여름 캠프도 같이 준비하고 하면서 점점 운영지기로서 뭔가를 해보고 싶더라고. 그때는 활동에 의의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재밌었던 것 같아.”

소주 “그즈음부터 회원들 사이에 서로 과도하게 경계하고 조심스러워하던 분위기도 조금씩 줄어들었던 것 같아.”

소리 “맞아. 알 활동이 더 많아지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2018년에 했던 알 도약 이벤트가 인상 깊게 남아있어. 미등록 단체였던 알이 단체 등록도 하고 상임활동가도 두기 시작하면서 인권 활동에 더 집중하는 단체로서의 도약을 기념하는 이벤트였는데, 매우 많은 사람이 축하해주러 왔잖아? 그걸 보는데 감정이 북받치더라고.”

오소리 “2018년에 소주가 상임 활동을 시작한 데 이어 이제 23년도부터는 소리도 함께 알에서 상임활동가를 하게 됐는데, 요즘 알에서 집중하는 의제는 뭐야?”

소리 “전파매개행위죄 폐지 운동.”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에이즈예방법) 제19조 전파매개행위죄는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의 조항인데, 이를 위반한 사람을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과 관련해 법정에서는 오로지 HIV 감염인의 ‘콘돔 없는 성관계’만을 쟁점으로 보기 때문에 HIV 감염인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성관계를 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 이때 HIV 감염인이 만약 자신의 HIV 감염 사실을 모르는 상황이었다면 처벌받지 않는데, 이는 사람들이 HIV 검진이나 치료를 회피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전파매개행위죄는 에이즈예방법으로서의 본 취지인 ‘예방’의 효과를 전혀 달성하지 못해 공중보건을 저해할 뿐 아니라, HIV 감염인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에 현재 헌법재판소에 전파매개행위죄 위헌 심판 제청이 된 상황이고 지난 11월 공개 변론이 진행됐다.

소리 “제19조 전파매개행위죄는 예방효과도 없을뿐더러, 정부에서는 에이즈 검사 전후 상담이나 의료 차별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상황에서 HIV 감염인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게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 무엇보다 콘돔을 끼고 말고는 상대방과의 협의와 동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지극히 개인의 사생활인데, 여기에 국가가 개입하는 게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같아.”

HIV 감염인도 엄연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들을 보장받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HIV 감염인은 의료 접근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노동권을 침해당하고, 성관계를 구속당하고, 낙인과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인권침해와 차별들은 HIV/AIDS라는 질병을 음지화하고 질병의 음지화는 예방을 저해한다. HIV 감염인에 대한 인권침해와 차별이 HIV 감염인뿐 아니라 비감염인에게도 해로운 것이다. ‘감염인의 인권 증진이 곧 에이즈 예방의 지름길’이라는 에이즈 인권 운동의 오랜 구호는 이런 맥락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소리에게 마지막으로 세상에 던지고 싶은 말을 물었다. 소리는 HIV 감염인도 못 하는 게 없어야 한다며 이렇게 외쳤다.

소리 “우릴 막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