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에게 가는 길〉 스틸컷 속 부모모임 활동가 비비안 님 |
성소수자들이 인권을 외치는 광장과 거리에서 항상 존재만으로도 든든하고 편안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성소수자 부모모임(이하 부모모임)’의 부모 활동가들이다.
2014년 초 어느 날,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에 전화를 걸어왔다. 당신처럼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을 만나고 싶다는 내용의 통화였다. 알음알음 성소수자 자녀를 둔 어머니 세 명이 모이게 됐고, 셋은 저마다의 고민과 바람을 나누었다. 모임은 더없이 소중했고, 이들은 매달 정기적으로 모이자고 약속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탄생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부모모임은 2014년부터 지금까지 매월 정기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2023년 4월부로 벌써 92번째 정기모임을 맞이했다. 부모모임을 찾는 성소수자 부모들의 발걸음도 계속 이어지는데 그들은 부모모임을 처음 만든 세 명처럼 자녀에 대한 고민을 가득 안고 찾아온다. 자녀의 커밍아웃으로 인한 혼란과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그들의 제1 목표다.
그들은 먼저 자녀의 커밍아웃을 경험한 다른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그렇게 혼란을 해소한 부모들은 “지구가 뒤집어져도 엄마는 네 편이야”라며 성소수자 자녀의 가장 큰 지지자가 된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간 몇몇은, “잘못된 것은 성소수자인 내 아이가 아니라,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우리 사회”라며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사회를 바꾸기 위한 활동에 뛰어든다. 그들이 바로 부모모임의 부모 활동가들이다. 그들은 당신의 자녀를 떠나 모든 성소수자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된다.
2014년 신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의 일이다. 당시 혐오선동세력은 행진을 물리적으로 방해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종종 방해가 있었지만, 조직적으로 막아선 건 2014년이 처음이었다. 모두가 당황하고 분노하고 좌절할 때, 부모모임 활동가 한 명이 홀로 피켓을 들고 혐오선동세력에 맞선다. “아들아 엄마는 있는 모습 그대로 널 사랑한다.” 혐오선동세력이 “사랑하니까 반대한다”며 거짓 사랑으로 매도할 때, 부모모임 활동가는 참된 사랑으로 성소수자들을 포용하고 혐오선동세력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 <너에게 가는 길> 스틸컷 속 부모모임 활동가 지월 님. 2018년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폭언을 내뱉는 자 앞을 묵묵히 막아섰다. |
일 년 뒤인 2015년 서울 시청광장에서도 부모모임의 활약은 계속된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점차 증가하는 축제 참여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서울 시청광장의 문을 열게 된다. 경찰은 축제 참가자를 보호한답시고 축제가 열리는 광장을 울타리로 둘렀다. 혐오선동세력은 이 울타리를 빙 둘러싸고 축제 참가자들을 향해 혐오의 말들을 쏟아낸다. 개중에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라’, ‘집에서는 알고 있냐’며 겁박하는 말들도 있었다. 이에 부모모임 활동가는 “자녀와 가족에 대한 사랑을 차별선동에 이용하지 말라!”며 추악한 자들을 용기 있게 막아섰다.
2016년 6월 12일 새벽, 서울퀴어퍼레이드를 마친 뒤의 이야기다. 행진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미국 올랜도 지역에 있는 성소수자 클럽 펄스에서 총기난사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성소수자 증오 범죄였고, 이로 인해 50여 명이 희생됐다. 참사 소식에 전 세계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큰 충격과 비탄에 잠겼다. 그때,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위로해 주는 영상 하나가 공유된다. 바로 전날 서울문화축제 때 부모모임에서 진행한 프리허그 영상1)이었다. 부모모임 활동가들은 사랑한다고, 잘 왔다고, 힘내라고, 당일 축제에 찾아온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비탄에 잠겨 있던 성소수자 커뮤니티 구성원들을 온 마음을 다해 꼭 안아줬다.
2018년 동인천역 북광장, 처음 열린 인천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는 유례없는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300여 명의 축제 참가자들을 1천여 명이 넘는 혐오선동세력이 둘러싸고 고립시켰다. 폭언은 기본이고, 신체적 폭력과 성희롱을 일삼았다. 깃대를 부러뜨리고 피켓을 빼앗고 퍼레이드 차량 바퀴를 펑크내는 등 재물손괴도 서슴지 않았다. 축제 참가자들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도,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없는 환경에서 고립됐다. 경찰은 그저 축제 참가자들과 혐오선동세력 사이에 서서 폭력을 방관하기만 했다. 오히려 축제 참가자가 밖으로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 없게 막아서면서 고립을 더욱 심화시키기까지 했다. 한국 성소수자 운동 역사상 처음 경험한 집단적 린치 사건이었다.
부모모임 활동가들은 “성소수자가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며 한탄하고 슬퍼하면서도, 위축되지 않고 축제 참가자들의 든든한 방패가 돼주었다. 반대 측의 피켓이 보이지 않도록 부모모임의 피켓으로 가리며 앞을 막아서기도 하고, 다른 참가자들이 악독한 자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몸으로 나섰다. 당신은 욕받이가 될지언정, 그자의 앞을 묵묵히 막아서며 소수자를 위한 인간벽이 돼주었다. 어딘가에서 린치가 가해지고 있으면 다 같이 달려가 보호해 주고,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려던 축제 참가자가 경찰에 의해 제지당하면 “내 자식”이라며 감싸주었다. 위축된 참가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발언을 하고, 고립된 상황에서도 프리허그를 하며 참가자들을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 오소리의 부모모임 활동을 마무리하는 송별회, 부모모임 운영위원들과 함께 [출처: 소소부부] |
2019년 5월, 서울 대방동 어느 예식장에서 소소부부의 ‘소소한 결혼식’이 열렸다. 부모모임에서도 많은 분이 하객으로 참여했다. 결혼식에 참여하지 못한 오소리의 부모님을 대신해 부모모임 대표 하늘 님이 혼주석에 착석하고, 축사를 통해 우리의 사랑을 축복해 주셨다.
이렇듯, 부모모임 활동가들은 성소수자 인권을 외치는 현장이라면 그게 언제든, 어디든 가리지 않고 찾아가 성소수자의 지지자로서 효과적인 스피커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우는 투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앞서서 돌을 맞는 방패막이를 자처하기도 하고, 때로는 성소수자들에게 따스한 품을 내어주기도 하면서, 소소부부의 대소사는 물론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대소사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
2014년 행성인의 소모임으로 시작했던 부모모임은 2018년, 하나의 어엿한 인권단체로 독립했다. 이후 도서 〈커밍아웃 스토리〉를 출판하고, 다큐 〈너에게 가는 길〉을 개봉하는 등 다방면에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부모모임의 활동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많은 곳에서 러브콜이 쇄도하는 것이 단순히 한국에서 가족주의가 먹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당신 가족의 문제로 시작했으나 이제는 그 누구보다 (어쩌면 성소수자 당사자보다도) 성소수자 인권 향상을 위해 헌신하고 이바지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들이 모인 곳이 바로 성소수자 부모모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모임에는 사랑이 넘친다.
소소부부 중 오소리는 그런 부모모임의 모습에 매료돼 지난 2015년부터 행성인의 부모모임 담당 활동가로서 부모모임에서 함께 활동해 오다가 얼마 전부터 부모모임에서의 활동을 그만두게 됐다. 오소리의 부모모임 활동은 여기까지지만, 부모모임의 활동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이제는 담당 활동가가 아닌 동료 활동가로서 연대하며 함께할 순간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