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남기 농민의 빈소 [출처: 참세상 자료 사진] |
며칠 전 고(故)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야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판단을 받았다는 기사를 봤다. 무려 8년 만이다. 이 판결로 구 전 청장은 업무상 과실치사가 인정돼 벌금형을 받았다. 기사를 보며 백남기 농민의 가족들은 어떤 마음일까 생각하며 내 마음도 여러 갈래로 얽혀 8년 전 그때로 돌아갔다.
나는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현장에 있었다. 집회를 금지하고 갑호비상명령을 내렸기에 공격적으로 집회를 억압할 것이 예상됐다. 공권력을 막을 순 없어도 어떤 행위를 하는지 기록해야 했기에 인권활동가들과 인권침해감시활동을 했다. 광화문광장 차벽 뒤 살수차가 발사하는 매캐한 물줄기는 마치 총을 겨누듯 사람들을 겨냥했다. ‘물대포’라는 이름은 과장이 아니었다. 정말 무기 같다고 생각했는데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한 사람이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병원에서 치료받고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사람이 쓰러졌는데도 멈추지 않는 물대포에 분노하면서도 또 다른 누군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제발 멈춰주길 바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백남기 농민이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회가 끝날 때까지 현장을 기록했다.
백남기 농민은 수술 후에도 의식불명이었다. ‘죄송해요’라는 말이 되뇌어졌다. 백남기 농민을 쓰러트린 것은 경찰이지만 물대포를 진작에 없애지 못해서, 직사살수는 절대로 할 수 없게 만들지 못해서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것만 같았다. 이 위험한 장비는 그전에도 사람을 다치게 했다. 그때 더 열심히 싸워 물대포를 퇴출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죄송한 마음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 나는 내 몫의 책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책임은 다시는 누구도 집회에서 물대포를 맞지 않도록, 폭력적인 공권력 행사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대포의 위험성을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날의 집회에 대한 폭력과 불법의 낙인을 벗겨내야 했다. 왜 사람들이 차벽에 저항하고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거리를 떠나지 않았는지 설명해야만 국가의 폭력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각자의 몫을 다해 애쓴 덕분인지 더디지만 변화는 있었다. 2017년 경찰개혁위원회는 살수차 사용 요건을 ‘소요사태 또는 핵심 국가 중요시설 공격행위’로 제한하면서 집회·시위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권고했고, 2018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원회’)가 백남기 농민의 사망은 과잉진압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경찰이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2020년 헌법재판소는 백남기 농민에게 가해진 직사살수가 ‘집회시위 참가자의 자유와 생명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리고 2023년 4월 13일 대법원은 구 전 청장을 집회·시위와 관련해 경찰 인력·장비의 운용, 안전관리의 총괄 책임자로 보고, 그가 “지휘권을 행사해 적절한 조처를 했더라면, 과잉 살수로 인해 피해자 사망이라는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집회·시위 현장에서 불법·폭력 행위를 한 참가자들이 그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을 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찰 쪽이 집회·시위에 대응해 적정 수준을 초과한 수단을 썼다면 그에 따른 법적 책임도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뒤늦은 판결이지만 책임을 확인했으니 다행일까? 그간 우리는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해도 이를 지휘한 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판결들을 보아왔다. 지위가 높을수록 더 무겁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으로부터 멀어지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그래서 책임자의 책임을 확인한 당연한 결과가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먼저 다가왔다. 하지만 한 사람을 잃게 한 책임의 무게가 벌금 1천만 원이라는 것에 씁쓸함이 뒤를 잇고 벌금형의 이유가 집회의 불법·폭력적 행위 때문이라는 것에 억울함이 남는다. 몇 년에 걸친 이 과정들이 백남기 농민 가족에게는 어떤 의미와 시간일까? 그리고 당시 집회에서 쏘아대는 물줄기를 맞으며 버틴 사람들, 집회 이후에 수사와 재판을 겪은 사람들에게 이 결과가 조금은 위로가 될까?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지연된 시간만큼 연장된 피해와 고통에 대해서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나흘 뒤 나는 경찰의 책임을 요구하는 또 다른 자리에 참석했다. 진상조사위원회가 과도한 공권력 행사였음을 확인한 사건의 당사자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기자회견이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경찰에게 인권침해에 대해 사과하고 쌍용차 조합원 등에게 낸 손해배상 소송을 철회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소송을 취하하지 않았고 13년의 세월은 손해배상 비용을 30억으로 불려놓았다. 2022년 11월 30일이 되어서야 대법원이 경찰 장비를 위법하게 사용한, 적법한 직무수행의 범위에서 벗어난 진압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더불어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를 면하기 위해 직접 대항하는 과정에서 경찰장비를 손상했더라도 이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판결 이후 4개월이 지나도록 경찰은 여전히 손해배상 소송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조합원들은 다시 파기환송심을 앞두고 있다.
정년을 앞둔 조문경 조합원은 기자회견에서 위법한 공권력 행사라는 판결에도 또다시 재판을 해야 한다는 소식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다시 시작되는 재판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다며 제발 그만 괴롭히라는 그의 목소리가 비통했다. 그 곁에 함께 서 있던 동료들의 표정이 그의 목소리에 포개졌다. 판결이 나오기까지 그들이 보낸 시간은 보통의 일상이 아니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에 마음이 무너지고, 경제적 궁핍으로 늘 불안했지만 절망하지 않기 위해 애써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야 했다. 그럼에도 노동과 삶의 권리에 대한 요구가 범죄로 둔갑한 억울함과 분노는 짙어지기만 했다. 그래서 너무나도 오래 끌어온 법정의 시간은 원망스럽다. 대법원판결에도 정작 국가폭력을 지시한 책임자인 조현오 전 경기청장에겐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소멸시효가 끝나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찰청장이 일곱 번 바뀌었고 사과도 있었지만, 경찰은 여전히 2009년 그때와 다르지 않다. 사과는 하지만 소송을 취하하지 않는 것은 사실 위법한 공권력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사과는 의미 없는 형식적인 것이 됐다. 경찰은 노동자들의 불법집회를 강조하면서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손해배상을 고집하는 것이다. 경찰은 자신의 임무에 실패했으나 그 실패를 부정하고 있다. 국가도 자기 몫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시간을 끌지 않도록, 피해자들의 고통이 지속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했다. 그보다 먼저 파업 진압 이후 국가는 당시 경찰이 임무에 실패했음을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경찰의 인권침해에 대해, 폭력적인 공권력 행사에 대해 수사하고 경찰 진압의 책임자들이 처벌받고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조치들이 이뤄졌어야 했다. 경찰의 실패에 이어 국가 책임의 실패가 지금, 이 시간을 만들고 있다.
▲ 고 백남기 농민의 딸 백민주화 씨 [출처: 참세상 자료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