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은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1993년 4월, 심슨가족 인형을 만들던 태국의 한 완구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188명이 사망했다. 이렇게 피해가 컸던 것은 노동자들이 인형을 훔쳐 갈 수 있다는 이유로 문을 잠그고 작업을 한 데다 돈을 아끼기 위해 부실하게 지은 건물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6년 4월 28일, 국제노동기구와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에서 이 사고를 기리는 추모행사를 시작하면서 4월 28일은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 됐다.
우리나라 역시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이후 42년이 지났지만 2022년 한 해에만 250여 건이 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고 여전히 1년에 2,400여 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500여 명이 과로로 사망하고 있다.
재해는 낮은 곳, 소외된 곳에 있는 이들에게 더 가깝다. 노동에서도 낮은 곳, 소외된 곳,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에게 재해는 더 다양하고 깊다. 여성이 집중된 돌봄, 서비스, 상담 등 직종에서 나타나는 노동안전의 문제는 법률에서 배제되거나 주변화돼 있다. 하지정맥류, 생리불순, 요실금, 방광염, 근골격계질환, 유산, 성희롱, 괴롭힘, 감정노동처럼 여성에게 특정된 직업성 질환에 대한 연구도 턱없이 부족하다. 노동안전에 대해 성별을 나누어 특성에 따른 연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런 연구는 그저 성별 고정관념만 부추기고 결국 여성을 고용하지 않게 만들 것'이라는 경악 어린 목소리에 부딪힌다.
그나마 법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는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에도 벌칙 대상을 사업주로 한정하고 있어 행위당사자에 대한 벌칙 규정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법 개정으로 고객 등에 의한 성희롱 방지 법안이 신설됐지만 역시 행위당사자인 고객 등의 성희롱을 금지하거나 제재하는 조치가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폭력으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육체적 피해는 산업재해로 보상이 가능하지만 그것은 법조문이 제시하는 말일 뿐이다. 직장 내 성희롱과 성폭력 때문에 산재를 신청한 건수는 실제 상담 건수에 비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폭력이 산재보상 대상이라는 것을 모르기도 하지만 산재신청 과정에서 벌어지는 2차 피해와의 기나긴 싸움을 올곧이 피해노동자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모성보호라는 이름으로 많은 법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과 출산에 유해한 작업환경에 대한 안전기준이 없어 불임이나 유산, 미숙아, 선천성 장애 등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여성노동자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저출산이 심각하다며 각종 정책을 뱉어내고 있는 정부의 정책 속에 임신·출산과 관련된 여성노동자의 건강에 대한 조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여성노동자들의 증가에 따라 그동안 남성노동자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던 각종 안전에 대한 정책도, 현장 설비도 바뀌어야 한다. 현장에선 남성과 여성노동자는 각각의 차이와 특성에 맞게 개인의 안전과 건강이 보장돼야 한다. 여성노동자를 오직 모성이라는 틀 안에 가둬 임신·출산과 관련한 존재로만 있게 해선 안 된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급식조리노동자들의 폐암 발병을 예방하지 못한 이유 또한 조리노동 등 여성에게 집약된 노동을 포괄하고 있지 못한 산업안전평가 시스템 때문이다. 작업장의 위해 요인을 파악하고 안전조치를 취할 때 성별에 따라 차별받거나 간과되지 않도록 법령에 성별 요인을 고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업안전보건법은 제조, 중화학, 건설업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수십 년 전의 산업재해안전기준으로 위험성을 평가하다 보니 여성노동자를 위협하는 현실의 위험을 놓치기 일쑤다.
시대가 변했다. 그리고 변해가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에게 특히 열악하기 그지없는 노동안전의 문제는 여성노동자들의 낮은 지위를 그대로 보여준다. 여성들이 평등을 위한 투쟁을 지속하면서 일터에서 여성들에게 특정된 질환에 대해, 여성의 건강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대치되지 않지만, 대치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여성노동자들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여성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이야기는 더 가려질 것이고, 여성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은 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모든 노동자는 자신의 일터에서 출근한 모습 그대로 퇴근해야 한다. 자신의 일터가 자기 죽음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안전과 건강에 대한 기준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신체적, 사회적, 심리적 차이를 고려해서 평등하고 공정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남성노동자의 표준이 있다면 여성노동자의 표준도 있어야 한다. 현장에서 지급하는 안전화의 가장 작은 사이즈가 250인 것, 안전모의 크기를 아무리 끈으로 조절해도 곧 흘러내려 시야를 가로막는 것, 보호장갑을 꼈을 때 손가락 한 마디가 남는 것, 남성의 몸을 기본값으로 설계한 라인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가 겪는 근골격계 문제가 계속되는 것은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생물학과 교수로 성별 관점에 따른 직업 건강 분야의 국제 전문가인 캐런 메싱은 일하는 여성들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일그러진 몸'이라는 책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여성의 급여가 남성보다 낮은 이유는 무엇인가? 육체적 부담 때문인가? 그렇다면 왜 의사는 청소부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을까?'
'어떤 화학물질이든 그로 인한 건강 손상의 위험은 남성과 여성이 똑같은가? 모든 화학물질이 그러한가?'
'임신한 여성은 일할 수 없는가? 모든 직업이 불가능한가?'
'여성은 공장에서 밤에 일해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병원에서는 밤에 일하는가?'
'동등한 일이란 무엇인가'
모든 노동자가 남성처럼, 여성처럼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의 몸으로 일해도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일터를 그린다. 그러기 위해 모이고 말하고 싸우자. 모든 노동자를 위해 차이가 고려된 평등하고 공정한 산업재해안전기준과 위험성 평가지표를 가져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