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출처: 연정] |
공장 화재를 핑계로 일방적인 청산을 통보하고 정리해고한 일본 자본에 맞서 공장재건·고용보장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17명의 노동자가 있다. 경북 구미시 구미4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노동자들(민주노총 금속노조 구미지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소속)이다.
일본 닛토덴코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주)는 노트북 등에 사용되는 LCD용 편광필름을 생산하여 LG디스플레이에 납품해왔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한국옵티칼’)는 2003년 11월 입주 당시 구미시로부터 50년간 토지 무상 임대와 법인세·취득세 감면 등 각종 혜택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러한 혜택과 입사한 구미 지역 노동자들이 12시간 맞교대를 견디며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한국옵티칼은 매년 2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챙겨왔다. 지난 20년간 한국옵티칼 구미공장에서 일본 본사로 배당한 돈만 3600억 원에 달한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4일 공장에 대형화재가 발생해 생산동이 전소하는 일이 발생했다. 노동조합이 화재보험 내역과 고용안정 방안 논의를 요청했지만, 한국 공장 대표는 본인에게 결정권이 없다며 일본 닛토덴코 본사 최고 경영진들이 결정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한 달 후인 11월 4일 회사 측은 회사를 청산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회사는 ‘화재보험 내역은 알려줄 수 없고, 고용이 아닌 위로금 논의만 가능하다’며, 공장재건과 고용에 관한 교섭을 거부했다. 더불어 12월 16일까지 희망퇴직하지 않으면 정리해고하겠다고 역시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리고 12월 13일 해산 결의안에 관한 주주총회를 열어 이 안을 통과시키고, 대표이사를 청산인으로 선임했다. 다음날 회사는 청산 등기를 한다.
지난해 12월 16일까지 생산직 노동자 150여 명 중 130여 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그리고 남은 17명의 노동자가 희망퇴직을 거부하고 공장재건·고용보장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출처: 연정] |
회사가 일방적으로 통보한 고용관계 종료일
2월 1일 오전, 입춘을 사흘 남겨두고 있지만, 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하다. 경북 구미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안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건네고 이야기를 나눈다. 일을 하다가 식사나 휴식 시간에 잠시 바람을 쐬러 나온 노동자들의 일상인 듯 그저 평범한 날인 것만 같다. ‘한국옵티칼 하이테크 청산 철회와 고용 보장 촉구 기자회견’이 시작된다.
“오늘은 회사가 일방적으로 통보한 고용관계 종료일입니다. 아직 화재보험 손해사정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뭐가 그렇게 급한지 모르겠습니다. 17년 넘게 청춘을 바쳐 일한 공장입니다. 노동조합과 상의도 없는 일방적인 청산 결정에 억울하고 분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투쟁 발언을 하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최현환 지회장의 목소리에서 울분이 느껴진다. 한국옵티칼 설립 2년 후인 2005년에 입사한 최현환 씨는 이 회사가 첫 직장이라고 했다. 현환 씨는 필름 롤을 검사하는 공정에서 첫 업무를 시작해, 롤을 자르는 설비 오퍼레이터로 일했다. 그 뒤, 조장을 거쳐 반장으로 근무하다가 지난해 초 2대 지회장으로 당선됐다. 현환 씨 입사 이후 회사는 여러 고비를 겪었지만, 점차 규모를 키워 1조 넘는 매출액을 달성하기도 했다.
“2008년도에 위기가 있었지만, 잘 넘기고 다시 사업 확장을 하면서 2010년 무렵에는 매출 1조 2천억 원을 달성한 적도 있습니다. 정말 엄청났습니다. 국내 1000대 기업 안에 들어갔으니까요. 전체 사원은 8백 명을 넘었습니다. 3조 2교대로 근무를 하는데도 주차장이 부족했어요.”
필요하면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닛토 자본
“작년 봄에 저희는 전례 없이 일주일 만에 임단협 잠정합의를 했어요. 고용안정을 최우선으로 논의하기 위해 임금 등 회사 안을 전면 수용했습니다. 2016년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때만 해도 직원이 517명이었는데, 2018년 2019년을 거쳐 90%에 해당하는 400여 명이 회사를 떠났거든요. 폐업한다, 정리해고한다는 협박에 못 이겨 다들 나가고 57명만 남았습니다.”
한국옵티컬은 2018년 고객사인 LG디스플레이의 구조조정 시기에 맞춰 대대적인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한국옵티칼이 구미지역 매출 순위 4위를 차지할 때였다. 2022년 봄, 노동조합은 다른 어떤 것보다 고용안정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회사는 물량확보와 신규 채용을 약속했고, 지난해 4월 100여 명의 노동자가 입사했다. 코로나와 관련한 중국의 봉쇄 정책으로 중국 공장 납품이 중단돼 물량 공급에 차질이 생기자, 사측은 생산과 납품이 안정적인 한국 공장에 물량을 넘겼다. 회사는 기존에 희망퇴직한 노동자들에게 직접 연락해 신규 채용에 지원하게 했다. 입사 즉시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숙련된 경력직 노동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6개월 뒤 화재사고가 나자, 이를 핑계로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에게 회사를 떠나라고 했다.
“닛토 자본은 사람이 필요하면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마인드예요. 저희 공장이 구미·평택·중국에 있는데, 다 똑같은 제품을 만들거든요. 납품하는 고객사만 달라요. 우리 공장이랑 중국 공장은 LG에 납품하고, 평택 공장(평택 한국니토옵티칼)은 삼성에 납품합니다. 구미 공장 화재 발생 후, 우리가 하던 걸 평택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여기를 평생의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재입사를 한 분들도 있는데….” 최현환 지회장
우리라도 청소하겠다는 마음들
올해로 입사한 지 16년이 되는 박미주(가명) 씨는 오늘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불과 넉 달 전만 해도 집과 회사를 오가며 일하기 바빴기 때문이다. 암실에서 필름 검사하는 일을 하다가 최근에는 포장 업무를 해온 미주 씨는 이 회사에서의 추억이라고는 일한 것밖에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교대근무도 만만치 않고, 외워야 할 것도 많아 힘이 들었다. 한 자세로 오랜 시간 근무하다 보니 목과 손목 등 근골격계 질환은 예사였고, 수량 압박 때문에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업무가 익숙해지고, 불량 없는 깨끗한 제품을 고객사에 보낸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해 왔다. 그런데 10월 4일, 미주 씨의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17시 20분경, 주간조 대부분의 노동자가 퇴근하고, 일부 잔업 하는 노동자들이 사무동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2층 생산설비에서 발생한 스파크가 인화성 자재들에 옮겨붙으면서 대형화재로 번졌다. 한국옵티칼은 화재 다음 날인 10월 5일부터 임시 휴업에 들어갔고, 미주 씨는 화재가 발생한 지 2주가 지나고 나서야 공장을 볼 수 있었다. 클린룸과 휴게실 등이 있는 생산동의 전면부는 비교적 양호해 보였지만, 생산 기계와 원자재가 있는 뒤쪽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돼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으니까 눈물도 안 나와요. 매일 공장에 와서 울고 간 직원도 있어요. 만약에 회사가 돈이 없다고 하면, 우리라도 와서 청소하자는 얘기도 했어요.” 박미주 조합원
▲ 공장을 사수하며 체육대회 중인 노동자들 [출처: 연정] |
고용만은 협의할 수 없다는 회사
미주 씨를 포함한 한국옵티칼 공장 노동자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회사가 재건될 것이라 믿었다. 공장 재건에 드는 비용이 천억 원 정도인데, 공장 재건 시 화재보험 보상금으로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이 1,300억 원이었기 때문이다. 재건 기간 노동자들은 구미 공장 물량을 생산하게 될 평택 공장에 가서 일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지난해 회사 측이 직접 노동자들에게 고용안정을 약속한 바 있다.
“작년에 100명 신규 채용을 하고 나서, 일본 본사 정보재사업부 본부장이 구미 공장에 와서 전체 직원이 모인 조회 시간에 얘기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꺼져가는 촛불에 새로운 희망을 지폈다’, ‘향후 고용안정이 되도록 물량을 확보해 주겠다’라고 했어요. 필름 사업 전체를 관리하는 분인데, 구미공장 사장보다 더 높은 직위에 있는 분이거든요. 우리도 고용안정을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임단협도 일찍 마무리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믿고 한 달을 기다린 거죠.” 최현환 지회장
한 달이 지난 11월 4일. 일본 본사 대표와 한국 공장 대표, 사측 노무사가 구미 한국옵티칼 공장에 ‘회사 방침’이라는 제목의 공문 한 장을 들고 왔다. 이 공문에 노동자들이 요구한 고용방안은 한 줄도 적혀있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교섭과 대표자 면담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회사는 희망퇴직과 위로금에 대한 협의만 하겠다며, 이에 대해선 사측에서 위임한 노무사와 논의하라고 했다.
“향후 복구에는 3년이 소요되며, 한국 디스플레이 시장은 향후 추가 해외 이전이 진행돼 복구 후 경영유지가 어려워 검토를 거듭한 결과 매우 고민스러운 결단이지만 회사를 청산하기로 정식으로 결정했습니다. 회사로선 직원들의 그동안 회사에 대한 막대한 노력에 위로금 형태로 보답하기로 했습니다.”
-2022년 11월 4일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대표이사 배재구, 하기와라 미치히로 명의의 공문-
나는 이렇게는 못 물러난다
“재건은 꼭 될 거라고 믿어요. 여기 재건이 안 된다면 평택공장에 고용승계라도 해 줄 수 있는 거잖아요. 평택 공장을 오가면서 업무를 지원하는 경우도 있었고, 평택 공장에서 구미 공장으로 지원왔다가 구미 공장에서 근무했던 분도 있었거든요. 근데 이제 와서 법인이 달라서 안 된다고 해요. 저도 처음에는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어요. 근데 나는 이렇게는 못 물러나겠어요. 당연히 재건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청산한다고 하니까 승질이 나더라고요. ‘원래는 안 줘도 되는 위로금을 줄 테니까 이거 받고 나가라’고 하잖아요.” 박미주 조합원
▲ 구미시청 앞에서 선전전 중인 조합원들 [출처: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
사측의 일방적인 청산 통보 이후 17명의 한국옵티칼 노동자들은 어느 해보다 추웠던 겨울을 거리에서 보냈다. 인동·옥계 사거리 등 지역 선전전과 구미시청 앞 선전전, 평택 니토옵티칼 공장 선전전·집회, 연대집회 등에 참석하며 투쟁을 알리고 사측과 관계기관에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그사이 부서가 달라 서먹했던 동료가 조금은 가까워졌고, 처음에는 하나도 맞지 않던 함께 외치는 구호의 박자가 맞게 되었다. 손끝이 시린 겨울날 아침, 선전물을 받아주지 않는 시민들의 모습에 서럽기도 했다가, 힘내라며 건네준 과자 한 봉지 음료수 한 병에 힘이 나기도 했다. 사흘 전에는 공장을 지키기 위해 아사히글라스 해고노동자들의 도움으로 천막농성장도 만들었다.
하지만 사측은 여전히 변화가 없다. 고용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시민들의 세금으로 회사 측에 무상 임대와 세제 혜택 등을 지원해준 구미시는 한국옵티칼의 ‘먹튀 행각’을 수수방관하고 있다. 구미시청 담당부서에 전화해도 ‘노력하고 있다’와 ‘경영방침’이라는 답변만 반복적으로 들었다. 계약 기간을 못 채우고 나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위법 소지가 없으며, 강제할 수 있는 법도 조례도 없다고 했다.
지난해 6월, 류호정 의원이 ‘부정한 방법으로 임대료 감면이나 현금지원을 받은 경우에는 징벌적 의미로 그 부당이득에 더한 추가금액을 징수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외국인투자 촉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류 의원이 제안 설명을 한 이후 논의조차 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는 현실이지만, 이미 큰 산 하나를 넘은 한국옵티칼 노동자들에게서는 담담함과 담대함이 느껴진다.
“17명의 조합원이 어렵게 투쟁을 선택하고 결의했습니다. 우리 조합원들, 끝까지 싸워서 고용 보장 받겠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일만 했던 제가 지회장이 되자마자 이렇게 된 것을, 저는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가 우리 조합원들 끝까지 싸울 수 있게 지지해줘야죠. 회사는 구미 공장을 버렸지만 우리는 피땀 어린 소중한 일터를 버릴 수 없습니다. 구미공장 재건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투쟁을 다 할 겁니다.” 최현환 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