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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으로 떠나는 희망의 여정(1)…“사람이 우선이다”

[파견미술-현장미술] 강병재와 김진숙을 찾아 떠난 파견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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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에 있는 대형 조선소 한진중공업은 2010년 12월 15일, 경영 악화를 이유로 생산직 노동자 400명을 희망 퇴직시키기로 결정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김진숙은 “정리해고 전면 철회”를 외치며 2011년 1월 6일 한진중공업 공장안에 있는 85호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85호 크레인은 2003년 당시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고공농성을 하던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 열사가 129일간의 농성을 이어가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2011년 3월, 전국의 노동자들은 거리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거제도에서는 전류가 흐르는 철탑 위에서 강병재가 목숨을 내걸고 있었고,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는 서울시청에서, 콜트·콜텍은 인천 부평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은 하루하루 그 숫자가 늘어가고 있었다.

한진중공업 김진숙의 고공농성이 100일이 다 되어갈 무렵 파견미술팀은 한진중공업 김진숙의 85호크레인을 찾아가기로 했다. 고공에서 한겨울을 보낸 김진숙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서였다. 크레인 아래에서 작업을 하다보면 저 높은 위에서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뭔가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 본다 생각하니 모든 것을 크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위에서 또렷하게 볼 수 있다. 현수막도 큼직하게 준비했고, 크레인에 올려 보낼 티셔츠도 준비하고 출발했다.

서울에서 부산 영도는 먼 길이다. 각자의 자동차에 그림 재료를 챙겨들고 모였다. 파견미술팀이라는 이름 때문에 미술인들만 모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이다. 시인, 병원관리인, 화가, 사진가, 선생님, 그리고 나 같은 활동가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늘 이야기 거리가 많고 의견도 많다. 서울에서 출발한 우리는 차안에서, 휴게소에서, 도착한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확대 재생산한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새로운 작업이 나온다. 하지만 늘 현장 상황은 우리의 상상과는 다른 경우가 많다보니 준비한 작업보다 현장에 도착해서 주변 사물과 상황을 보며 즉석에서 만들어 내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하다.

우리는 부산으로 가는 길에 거제도를 거쳐 가기로 했다. 거제도에는 대우조선 하청업체 출신 하청노동자 강병재가 공장정문 옆 높이 45m의 송전탑 18m 지점에 올라가 비정규직 철폐와 직접고용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하고 있었다. 한진중공업 85호크레인 농성 100일이 되기 이틀 전날 거제에 도착한 우리는 대우조선 노동자들과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다음날 이른 아침 설치할 파견미술팀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노동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역할도 나누고 작지만 우리만의 의식을 준비하며 밤을 보냈다.




다음날 이른 아침 강병재를 만나러 간 농성현장. 송전탑아래 작은 표식이 붙어 있다. ‘154kV’ 전류가 흐르고 있다는 표식이다.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은 어마하게 크고 높았다. 그 사이로 작게 사람의 움직임이 보였고 한 눈에 보기에도 위태로워 보였다. 우린 큰소리로 외쳤다. “힘내세요!” 그리고 우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산으로 출발하기 전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에서 준비해 건네받은 연대현수막을 송전탑 아래 여기저기 붙였다. 그리고 대형걸개 그림을 펼쳐 바닥에 깔고 송전탑 위 강병재가 볼 수 있도록 했다. “사람이 우선이다” 힘내서 같이 살자는 의미이기도 하고, 사측에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이윤엽과 나규환 그리고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은 걸개 현수막 거는 작업을 했다. 전미영은 안 쓰는 현수막을 잘게 잘라 리본을 만들고 주변 철조망에 거는 작업을 했고, 이윤정은 손수건에 <사람이 우선이다> 판화를 찍어 깃발을 만들었다. 이윤엽의 판화 <사람이 우선이다> 원판은 손수건과 티셔츠 등에 찍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했고 파견미술팀은 티셔츠에 찍어 미리 단체복처럼 입고 있었다. 전진경은 주변에 빨갛게 피어있는 동백꽃잎을 모아 이미지를 만들었고, 난 지난밤 노조 사무실에서 주워온 못 쓰는 피켓에 스프레이로 글자를 만들었다. 당시 TV에 나오던 광고가 있다. ‘피로는 간 때문이야’ 라는 약 광고였는데 난 노동자의 피로는 ‘갑’때문이라고 고쳐 쓴 피켓을 만들었고 송전탑에서 볼 수 있도록 각자 한 글자씩 들고 바닥에 눕는 퍼포먼스도 했다. 모든 설치가 마무리될 즈음 송전탑아래 농성텐트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연대집회(?)를 시작했다. 우리만의 집회였다. 마이크를 들고 강병재를 향해 우리가 여기 왜 왔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했고, 대우조선 노동자들은 지금의 현실과 응원 온 파견미술팀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강병재의 이야기도 들었다. 힘이 난다는 것이고 끝까지 투쟁해서 꼭 좋은 결과를 만들어 보겠다는 다짐의 목소리였다.












거제도를 떠나기 전 우리는 단체 사진을 찍었다. 2010년 문화연대는 보신각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매일 문화제를 진행했다. 그때 만든 이윤엽의 판화 <쓰러지는 사람/해고는 살인이다> 이미지가 있다. 이 이미지는 밑동이 잘려나가는 나무를 연상시키는 그림이다. 우리는 모든 작업을 마무리하고 난 후 <쓰러지는 사람/해고는 살인이다>의 이미지를 연상하며 단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쓰러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노동자를 상징하는 모습을 따라하는 우리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깔깔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현장 노동자들의 반응도 재밌다. 우리를 보며 멀리서 따라 해보기도 하고 쓰러지는 사람을 잡아주기도 하고 쓰러지는 사람을 밀어 넘어뜨리기도 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웃고 즐길 줄 아는 우리는 파견미술팀이다.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으로 떠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겨야했다. 송전탑을 향해 두 손을 모아 소리치며 이별을 고하고 나오는 발걸음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다시 텅 빈 농성장의 모습이 가슴 한 켠 쓸쓸하게 느껴졌다. 송전탑 위에서 손을 흔드는 작은 사람은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긴 시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차 소리가 멀어진 이후에도 아래를 응시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강병재는 이후 88일간의 농성을 계속했고 대우조선(협력사)에 다시 취업하는 조건으로 사측과 합의 후 땅으로 내려왔다.

거제를 출발한 파견미술팀은 마음이 바빴다. 한진중공업 김진숙을 만나러 가야했다. 바로 다음날이 85호 크레인 고공농성 100일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영도다리를 건너 도착한 공장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고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외부인의 출입에 살짝 긴장한 듯 보였고 정문 옆 경비실에서 한 참을 이야기하고 나서야 공장에 들어 갈 수 있었다. 공장 안에서 건조되고 있는 배를 보고 우리는 그 크기에 엄청 놀랐다. 그것이 배인지 벽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계속]






덧붙이는 말

이 글은 문화연대가 발행하는 이야기 창고 <문화빵>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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