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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의 바보같은사랑](92) 현대중공업·미포조선 비정규직 이성호·전영수 씨 고공농성투쟁② 69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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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체가 일상화 된 거 같아요

연일 폭염특보가 전해지고 있다. 울산 미포조선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이성호 씨와 전화 인터뷰를 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 동안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나? 아침에 ‘5분만 더’를 읊조리다 마지못해 일어나 일터에 나가 일을 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밥을 먹었다. 그리고 마트나 편의점에 들러 생필품이며 먹을거리를 사갖고 귀가하기도 했고, 밖에서 밥을 먹거나 맥주를 한 잔 마시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간간히 운동을 하거나 아픈 몸을 치료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지상의 하루하루는 참 빠르게 흘러간다. 168시간, 10,080분, 604,800초가 그렇게 흘렀다.

내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고공의 한 주는 어떠했을까? 고공의 68시간, 10,080분, 604,800초는 어떠했을까? 전영수 씨(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조직부장)와 지난주에 못한 통화를 6월 18일 밤에 했다. 이성호·전영수 씨의 울산 북구 성내삼거리 인근 교각 고공농성 69일 차가 되는 날이다. 덥지는 않은지 묻자 바람이 불어 더위는 덜 하다고 한다. 이성호 씨와 전영수 씨가 있는 곳에서는 바다가 보인다고 했다. 예전부두에서 배에 자동차를 싣는 모습을 종종 본다고 했다.

[출처] 이한별 금속노조 울산지부 조직부장

“다리 밑이라 햇볕이 잘 안 들어와요. 자고 일어나면 습한 데서 자고 난 느낌이에요. 장마철 같은... 자고 일어나면 몸이 뻣뻣하죠.”

햇볕이 가려지는 대신 습하다는 단점이 있다. 자는 공간은 한 사람이 일자로 겨우 누울 수는 있지만, 편하게 잘 수 있는 공간은 못된다고 했다.

“일어나서 운동하고 아침 먹고 책 좀 보다가 짬짬이 잡니다. 페이스북 볼 때도 있고요. 기회 될 때마다 자고 일어나서 움직이고 일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장기화 될 거라고 예상은 하고 올라왔어요.”

이성호 씨와 마찬가지로 전영수 씨 역시 좁은 공간에서 근력을 잃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팔굽혀펴기나 제자리에서 다리 올렸다 내리기, 제자리 뛰기, 윗몸일으키기, 교각 위를 왔다 갔다 하는 등의 운동을 하고 있다.

지난 한주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했다. 방문했던 사람 중 기억나는 사람을 물으니 며칠 전에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3년 집회에 왔던 가수 류금신 씨가 고공농성장에 들러 노래를 3곡이나 부르고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처음엔 동지들이 연대를 많이 오시지만, 매일 오실 순 없잖아요. 다른 데도 많이 가셔야 하니까요. 조합원들도 그렇고 밑에서도 힘드니까 한 결 같이 지킬 수는 없죠. 다들 힘들고 본인들의 일상이 있는 거니까 탓할 수는 없는 일이에요.”

영수 씨는 연대 동지들에게도 자신의 삶이 있고, 울산 지역에 이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기 에 서운한 마음은 없다고 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함께 해주는 울산 지역의 노동단체들과 활동가, 시민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올라와보니 크게 할 게 없어요. 이 자체가 일상화 된 거 같아요. 사람들은 올라와서 건강하게 잘 버텨주는 게 잘 하는 거라고 얘기하는데, 위에서 뭘 해야 되나 고민이 많이 돼요.”

하청 노동자들도 힘 모으면 할 수 있습니다

전영수 씨는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해고 노동자들에게 ‘영웅주의’ 운운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자신은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올라온 것이 아니라고 했다. 본인이 하고 있는 게 노동운동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울산 시민이나 가족 중에 여기 조선소에서 일 안하는 분들 없어요. 근데 그분들도 조선소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모릅니다. 저는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알리고 싶어서 올라온 것뿐입니다. 비정규직 철폐 당장 안 돼도 좋아요. 하지만,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들이 임금이나 복지에서 동등한 대우 받고 해고는 당하지 말아야지요. 저는 그저 같이 먹고 살고 싶어서 올라온 겁니다. 하청 노동자들도 힘을 모으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6월 8일 고공농성 중에 생일을 맞이한 전영수 씨 [출처] 이성호

전 씨는 하청노동자들에게 다른 사람이 해고되어야 자기가 산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고 이야기했다. 사측이 현장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고 했다. 그런 현장이지만, 하청노동자들도 힘을 모으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영수 씨는 인터뷰 중에 “쪽팔리다”는 말을 자주 했다. 노동조합 간부로서 자신이 일하는 현장도 바꾸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이다.

전영수 씨도 이성호 씨와 같은 미포조선 하청업체 동양산업개발에 근무하다가 업체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그 역시 비정규직 노동조합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고용승계가 되지 않았다. 전 씨는 2005년에 조선소 일을 시작해 2011년 미포조선 하청업체에 입사했다. 미포조선에서 업체 폐업으로 몇 군데를 옮겨 다니다가 가장 최근에 근무했던 곳이 동양산업개발이었다. 원청과 하청업체의 계약기간이 6월까지였지만, 갑자기 하청업체 대표의 건강상 이유로 4월 9일 자로 폐업 공고가 났다.

결국 조합원 4명만 고용승계가 안 되었어요

“폐업 공고가 나고 우리 업체 노동자들을 만나 함께 싸우자고 했어요. 사람들이 쉽게 마음을 열진 않더라고요. 노동자들이 뭉치려고 하니까 회사는 싫어했죠. 업체에서 노동자들한테 다른데 소개 시켜주겠다고 하면서 뭉치려는 사람들을 빼갔습니다. 결국 조합원 4명만 고용승계가 안되었어요.”

조합원을 제외한 취업 의사가 있는 전체 노동자들이 고용승계가 되었는데, 고연령 등 일반적으로 타 업체에서 안받아주는 조건의 노동자들도 모두 고용 승계가 되었다. 영수 씨는 회사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단결하는 것을 깨려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노동조합 때문에 고용승계가 되었지만, 그게 계속 가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그는 지금도 사측의 그런 움직임이 있지만, 고공농성 때문에 섣불리 행동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본다.

이력서를 넣어보니 블랙리스트에 뜬 거죠

업체 폐업 공고 이후, 전영수 씨는 취업을 하기 위해 미포조선 내에 있는 다른 하청업체에 구직 활동을 했다. 이력서를 넣고 전화를 걸고 직접 찾아가본 하청업체만 40군데였지만, 취업이 되지 않았다.

“하청업체에서는 매뉴얼처럼 똑같이 얘기해요. 요즘은 옛날처럼 원청이 관여하는 거 없다고 하죠.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당신 같으면 받겠냐고 합니다. 한번은 10월까지 일이 많아 탄탄하다는 업체에 지원을 한 적이 있었어요. 매일 잔업 있고, 토요일도 근무하고, 월 300시간 근무가 가능하대요. 퇴직금도 주고요.”

전 씨를 포함한 하청지회 조합원 3명이 이 업체에 이력서를 냈다. 업체에서는 신체검사 받고 출입증 발급에 필요한 서류가 준비가 되면 연락 달라고 했다. 거의 합격이나 마찬가지였다.

원청인 현대중공업 정문에서 블랙리스트 철폐를 요구하는 선전전을 하고 있는 울산지역 노동자와 시민들 [출처]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근데 1시간이 지나 전화가 왔어요. 갑자기 일(물량)이 줄은 걸 깜박 했다고 죄송하다는 겁니다. 업체에서 원청에 이력서를 넣어보니 블랙리스트에 뜬 거죠. ‘건강이상자’, ‘일 잘 못하는 사람’ 이런 식으로 뜨거든요.”

영수 씨는 비정규직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STX 조선해양 등 대한민국 6대 조선소에 공유가 되어 취업을 못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그는 40번의 구직활동에 실패하고 결국 고공에 올랐다. 원청에서는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들을 포함하여 하청지회 활동을 하다가 해고된 모든 조합원과 간부들을 복직시켜야 한다고 했다.

“소모품 같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해고 되고 여기까지 올라왔습니다. 우리가 오죽했으면 이렇게까지 하는지,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올라왔는지 많은 사람들이 알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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