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세월호참사 1년,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가

[세월호1년](4) 진실을 밝히는 것은 험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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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났다. 4월 16일 가족들은 추모제를 취소했고, 대통령은 가족들이 없는 빈 팽목항에서 진상규명 의지라고는 하나도 담겨있지 않은 담화문 한장 달랑 읽고 해외로 나갔다. 4월 16일 ‘약속의 밤’ 행사 이후에 광화문 분향소에 꽃을 놓으러 가는 유가족과 시민들을 경찰은 차벽과 캡사이신으로 막아섰다. 유가족들은 광화문 현판 앞에 주저앉았고, 18일까지 화장실도 못가게 하는 모욕을 참으며 시민들을 기다렸다. 4월 18일 세월호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에서 시민들은 경찰의 차벽을 걷어치우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유가족들과 만났다. 유가족을 고립시키고 진실규명을 방해하며, 돈을 흔들어 유가족을 모욕하고, 이제는 함께하고자 하는 시민들마저 폭력으로 막아서는 이 정부는 정부로서의 자격이 없다. 세월호 1주기를 우리는 참담함으로 맞이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아직도 진실은 규명되지 않았다  

304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가 벌어졌다면 진실 규명이 첫번째 과제일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려면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인 원인만이 아니라 침몰 직후부터 벌어진 정부의 잘못된 대응을 밝혀야 한다. 해경의 구조과정과 부실한 대응, 언론통제, 부실한 수사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밝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도 밝혀내야 한다. 그래야 한국사회가 달라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모두 규명되지 않고 있다. 세월호 침몰 원인과 관련하여 검찰이 최종 수사결과를 내놓았고 광주지방법원에서 판결도 내렸고, 감사원도 감사결과를 내놓았다. 무리한 증개축, 과적, 고박의 문제, 평형수의 문제, 경험 없는 조타수의 실수로 인한 급변침이 원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사고 발생 시간과 장소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왜 그날 기상이 안 좋은데도 세월호만 출항할 수 있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항적도를 계속 숨기거나 수정한 이유는 무엇인지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구조과정과 관련해서도 검찰수사결과에 따르면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가 부실하게 관제를 했고, 목포해경과 서해지방해경이 부실하게 대응을 했고, 해경 소속 123정이 선원들만 먼저 구조하고 퇴선명령을 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경은 왜 외부지원을 배제했는지, 수색과정에 대해서 왜 언론은 왜곡보도를 했는지, 수사과정에서 왜 선장을 해경의 집에 데리고 가서 재웠는지, 123정장만 기소한 이유는 무엇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심지어 검경합동수사본부에 해경이 구성원으로 참여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나오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세월호와 국정원의 관계도 밝혀지지 않았다.

구조적인 원인을 밝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세월호는 안전규제를 전혀 지키지 않고 운항했다. 그런데 이것이 청해진해운이나 선원들의 개인적인 불법비리인가. 선박연령 기준을 완화하고 노후 선박에 대한 안전기준을 완화하며 여객선에 대한 안전점검 기준, 차량적재 기준 및 선박 컨테이너 안전점검 기준을 완화한 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였다. 선장의 조종지휘 대행 및 내부 심사 보고의무를 면제해준 것은 박근혜 정부였다. 관리감독은 일찍부터 한국해운조합에 떠넘겨져 있었고, 수난구조를 외주화하고 민영화한 것도 2012년의 일이었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여전히 험난하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나서 6월부터 국정감사가 진행되었으나 시작부터 논쟁이었다. 청문회는 증인채택 문제로 논란만 벌이다가 열리지 못했다. 감사원도 감사를 진행했지만 그들은 대상을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에 한정했고 국방부와 국정원, 청와대는 대상이 되지 않았다. 청와대에 자료를 요청해놓고도 줄 수 없다는 말 한마디에 자료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규제완화 등 문제의 근원적인 검토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검찰수사가 진행되었다. 검찰은 2014년 10월 6일 대검찰청 명의로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사고원인과 구조과정, 실소유주 및 해운비리 관련 의혹에 대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총 399명을 입건하고 그 중 154명을 구속하여 현재 재판을 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수사는 세월호 선원과 선장, 유병언일가와 측근, 청해진해운의 임직원, 선박안전 감독기관 실무자, 해운조합 실무자를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각종 비리와 민간유착 문제는 제대로 다루지 않았고, 수사 대상과 범위도 좁혀졌다. 특히 해경이 구조를 하지 않은 문제에 대한 책임은 제대로 묻지 않았다.

국정감사로도, 검찰의 수사로도, 감사원의 감사로도 제대로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피해자의 자력구제라면서 협박하고, 유가족들이 돈을 더 원해서 특별법을 요구하는 것처럼 왜곡하기도 했다. 무려 5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특별법에 서명을 했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의 요지부동을 넘지 못해 수사권과 기소권이 빠진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그 특별위원회 구성 과정에서도 새누리당은 유가족 모욕 글을 일베에 퍼나른 사람,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막말을 한 사람 등 특위위원으로 결격사유가 분명한 사람들을 내세워서 결국 진상규명을 방해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해수부는 특위 위원들의 임명절차를 늦추고, 새누리당 추천 위원들은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보를 흘리면서 ‘지나치게 많은 인력과 경비가 소요된다’고 떠들기도 했다. 이는 결국 김재원 의원의 ‘세금도둑’ 발언으로 이어졌다. 특별조사위원회와 무관하게 정부는 시행령을 일방적으로 내놓았다. 그 시행령은 정부가 파견한 공무원이 특별조사위원회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조사 내용도 정부의 조사를 검증하는 것으로 한정했으며 안전대책도 해상사고로 국한했다. 이 시행령으로는 전혀 진실을 밝힐 수 없다. 세월호 인양 결정만 간신히 내렸지만 그나마 9월부터 시작된다 하고 제대로 진행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다시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면서 싸움을 시작하고 있다.

안전사회에는 가까이 가고 있는가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이 곧 안전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그렇지만 진실을 밝힘과 동시에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진행되어야 한다. 세월호참사 이후 정부는 ‘안전대진단과 안전산업발전방향’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안전을 지키겠다고 해경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도 만들었다. 그런데 세월호참사 이후에도 참사는 계속되었다. 고양터미널 화재, 왕십리역 지하철 충돌사고, 장성요양병원 화재, 501오룡호 침몰사고, 판교테크노밸리 참사, 가거도 헬기 추락사고, 의정부 도시생활주택 화재, 인천강화도 캠핑장 화재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참사의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위험의 근원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위험을 양산하는 규제완화 정책을 전혀 바꾸지 않고 있다. 말로는 ‘안전’을 이야기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안전규정을 없애는 작업은 지속되었다.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 기준이 완화되었고, 안전관리기술자들 교육도 원격으로 대체할 수 있게 했다. 유해화학물질 취급과 설치기준도 완화했고, 위험도가 높은 수직증축도 허용했다. 철도와 지하철의 안전기준도 완화되고 있다. 안전기준 중에서 불합리하고 중복되는 것은 없애겠다는 공언도 여전하다.

3월 30일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제출했지만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에는 한참 모자랄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전합동참모처장을 국민안전처의 수장으로 앉힌 박근혜정부는 ‘안전’과 ‘안보’를 동일하게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체도 불분명한 특수기동구조대를 신설하고, 설명 과정에서 ‘9.11테러’를 예로 드는 것을 보면 정부가 이야기하는 안전은 결국 정권의 안위라고 의심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안전’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만드는 ‘안전산업 활성화대책’도 지속되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안전이 공적인 것이 아니며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안전펀드를 조성해서 안전산업에 투자하고, 민간손해보험을 활성화시키고, 안전관리업무를 외주화하는 내용을 안전산업발전방향으로 내놓고 있다.

세월호참사가 벌어진지 1년,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위험해지고, 더 많은 노동자와 시민이 기업의 돈벌이에 희생되고 있다. 그런 위험한 상황에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졌다. 계속되는 재난과 참사에 점차 무덤덤해지고, 사람의 생명이 돈벌이에 희생되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안전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세월호참사로부터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교훈 중 하나는 이윤보다 사람의 생명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희망은 있다

세월호참사 1년, 정부가 한 일은 진실을 은폐하고, 진실을 요구하는 시민들과 유가족에게 물대포와 차벽과 최루액으로 답하고, 안전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만드는 것뿐이었지만, 시민들은 달랐다. 시민들은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의지 아래 물러서지 않았다. 세월호 특별법 서명이 시작되고 무려 5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명을 했다. 지역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명을 받기 위해서 뛰어다닌 평범한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광화문 농성장에서 같이 단식을 하고 밤을 지키고 물대포에 맞섰던 시민들도 있었다. 이런 의지들이 진실을 향한 열망을 계속 일깨우고 있다.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각 지역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간담회를 진행했고, [금요일엔 돌아오렴] 북콘서트를 진행해왔다. 여기에는 눈물과 위로와 한숨과 의지가 있었다. 일렁이는 투쟁의 흐름은 보이지 않았지만 바닥에서부터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의지들, 세월호 문제를 이렇게 끝낼 수 없다는 흐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시민들에 대해 신뢰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가질 수 있었다. 이 신뢰가 쓰레기 시행령 폐기를 위해 싸울 때 더 많은 힘을 낼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국가란 무엇인지를 질문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소중한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보다는 기업의 이윤을 위해 안전을 팔아먹고, 진실을 밝히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재갈을 물리며, 진실을 은폐하기에 바쁜 정부를 보면서 국가가 모든 시민들을 위해 존재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은 깨졌다. 대신 어떻게 해야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 힘은 약하지만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묻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런 요구는 세월호참사를 ‘인권침해’의 문제로 바라보고, 안전하고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를 위해서 우리에게 부여되어야 할 권리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4.16생명의 존엄과 안전을 위한 인권선언 운동’으로 발전했다. 재난과 참사로 희생된 이들이 누려야 할 권리,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 노동자와 시민이 누려야 할 권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세월호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모든 것을 잊고 돌아가는 것은 ‘사람’으로서의 삶을 ‘이윤을 위해 바쳐지는 희생물’로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고통스럽고, 유가족과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해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존엄함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5월 1일과 2일 다시 한 번 많은 이들이 광화문에 모인다. 정부는 이 움직임을 두려워하여 온갖 종류의 악선동을 할 것이고 또다시 구속과 연행으로 답할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추모는 마음을 다해 304명의 영혼을 위로하고 진실을 밝힘으로써 이 죽음을 억울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추모는 온힘을 다해 싸우는 것이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박수미

    세월호의 영혼들을 모독한 한일량국(세월호를 잊지 않는 사람들의 사랑의 마음에 더 이상 상처를 주지마세요)

    2015년 4월 13일 서울에서 청와대 안보관계자와 일본외무성 관리와의 비밀회담이 있었다.
    비밀회담에서는 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7시간동안이나 치정관계가 있는 정윤회와 만났다는 의혹을 언론에 공개하여 본국에로의 출국금지결정을 받은 일본 “산케이신붕”의 서울 지국장 가토에 대한 문제가 주요 의제로 논의되었다.청와대는 일본측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해 철저히 비밀을 지키며 일체 보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담보하는 조건에서 가토의 출국금지결정을 철회한다는 안을 제기하였다.일본측에서는 자위대의 해외파병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국제평화지원법” 개정과 관련하여 한국정부가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지 말데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비밀회담은 양측 관리들의 이해관계가 잘 조화되어 만족스럽게 끝났으며 그 결과 가토의 출국금지가 해제되었다.

  • 박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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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회담은 양측 관리들의 이해관계가 잘 조화되어 만족스럽게 끝났으며 그 결과 가토의 출국금지가 해제되었다.

  • 박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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