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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인라인스케이트 세 켤레를 사 신기던 그 마음

김주익 열사 1주기, 한진중공업 현장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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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밤 부산의 어느 집에선 6학년 짜리 제주가 되어 제사상에다 술잔을 올리고 있었을 게다. 4학년 짜리 누이와 2학년 짜리 동생이 형이 든 잔에 술을 채우고 있었을 게다. 명절 차례는 경험해봤지만 온전한 기제사에 제주로 서는 건 처음이라 술병이 무거워 한두 방울쯤 흘리기도 했을 테고 음복을 빼먹으면 뒤에 선 큰아버지가 나즈막히 가르쳐주기도 했을 테다.

김주익 열사가 129일간 고공농성하던 85호 크레인 운전실

17일은 김주익 열사가 35M 높이의 크레인에 제 몸을 매달아 저 세상으로 간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1주기 행사가 벌어진 지난 15일, 행사 시작 전에 아침 일찌감치 한진중공업에 나가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아침부터 뜨거운 햇볕에 눈살을 찌푸리며 85호 크레인을 올려다보니 까마룩하게 성냥갑만한 운전실이 보이더라. 186센티미터에 100키로가 넘는 김주익 지회장이 129일 동안 지냈던 바로 그 곳. 김주익 열사는 작년 6월 11일부터 10월 17일까지 그 곳에서 싸웠고, 10월 17일부터 11월 15일까지는 숨이 끊어진 채로 그곳을 지켰다. 그리고 마침내 11월 17일에야 선배 박창수 위원장이 기다리고 있던 양산 솥발공원 묘역에 지친 몸을 뉠 수 있었다.

가을 햇볕도 그늘 없이는 성가신데 35M 상공의 쇠로 된 성냥갑만한 운전실을 한 여름 내내 어떻게 지켜냈을까? 씻지 못하는 게 가장 불편하다며 웃음 짓던 그 속내는 어땠을까? 밧줄에 묶여 올라온 “내가 일자리 구해 줄께요. 아빠 그 일 그만하면 안 돼요? 다른 애들은 아빠 자랑도 하는데...” 라는 어린 딸의 편지를 읽는 마음은 어땠을까?

그 해 임단협도 아니고 그 전해 임단협을 해결하기 전에는 조합 간부들조차 만날 수 없노라고 안에서 문을 잠그고 또 로프로 묶었던 그 결의는 도대체 무엇일까? 태풍 매미가 크레인을 다섯 바퀴나 돌려버렸을 때도 못 내려가게 한 그 의지는 무엇일까?

농성 126일이 되는 날 새벽, 85호 크레인에서 빤히 내려다보이는 4도크에서 조합원의 필사적 저지도 소용없이 회사가 6,000Teu급 컨테이너선을 진수시켜버리고 허탈함과 손배가압류에 내몰린 조합원들이 우수수 빠져버려 불과 70여 명의 대오가 참여한 다음 날 아침의 투쟁보고대회에 공중에서 휴대폰을 통해 투쟁사를 외치던 그 심정은 어땠을까?

결국 곰 같은 사나이는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나의 주검이 있을 곳은 85호 크레인이노라’며,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는 나의 무덤은 85호 크레인이라’는 말을 남긴 채 129일간 하늘로 밥을 묶어 올리던 그 밧줄로 제 몸뚱아리를 쇠난간에 매달고 더 높은 하늘로 가버렸다.

추모제 참석을 위해 걸어오는 한진중공업 조합원들

노동계급 그 자체를 나타냈던 ‘대공장 생산직 노동자’라는 말이 외려 기득권의 상징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요즘이지만 지난 15일 추모제에 참석하려 투쟁광장을 가득 메우고 힘지게 걸어 들어오는 작업복의 물결에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추모제를 둘러싼 사측과의 신경전이 무난히 마무리되어 유급처리까지 된 행사 시간 동안, 망치소리는 멈췄지만 광장 저 너머 크레인 위, 한참 건조중인 컨테이너 선 위에서 몇몇 작업모들이 광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산 지역의 장기투쟁 사업장, 비정규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까지 함께한 추모제 자리였지만 막상 한진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 조합원들이 비운 작업장을 외롭게 메꾸고 있었다.

비정규 투쟁에 나서는 것이 진정한 열사정신 계승이 아니겠냐고 따져 물었을 때 ‘간부들도 답답하다. 현장 조합원들이 일단 우리가 먼저 편하고 봐야 하지 않냐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는, '사측에서 비정규의 비짜만 언급해도 대화를 중단해 버린다'라는 한 숨 섞인 답변들이 돌아왔다.

그래 어디 정규직이라고 호강하고 살더냐? 정규직이 죄더냐? 하지만 우리가 판판이 벼랑 끝으로 밀리는 건 작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추모사 대로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음으로 깨지는 것” 이란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 않나?

휠리스를 아이들에게 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유서를 읽고 덜 위험한 인라인스케이트 세 켤레를 사서 김주익 열사의 아이들에게 신겨준 아이 키우는 어느 보건의료 조합원들의 마음, 그 마음을 되찾아야 하지 않겠나? 열사가 또 생겨야 후회하고 울먹이며 거리로 나설까?

추모제 광경을 내려다 보고 있는 하청 노동자

추모식을 마치고 구내식당에서 밥을 타기 위한 긴 줄이 늘어섰을 때 추모리본을 안 단, 여기저기 얼굴에 구리스를 묻힌 기름 때 전 작업복들 몇몇이 사이 사이에 끼어 있었다. 추모식에 참석하고 온 사람들을 호기심 어리게 훔쳐보던 눈길은 이내 앞 사람 뒷통수로 향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컨테이너 박스 매점에서 비닐 봉지에 든 빵과 우유를 사든 이주노동자 하나가 매점 뒤로 사라지더라.

85호 크레인, 그 노동해방의 십자가에 달린 김주익이란 깃발
[논평] 열사를 생각하는 10월
“우리 복직은 교섭이 아니라 김주익 열사의 죽음으로 따낸 것”
"열사투쟁 계승, 예정된 총파업으로 연결"
심상정 의원이 국정감사 일정을 빼먹은 까닭은
  • ㅠㅠ

    막히게 만드는 글이다.

  • 열사정신계승!

    그리고 이전 글에 대한 답글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