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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반도체 故 박지연씨 최후진술문 공개

"삼성을 선택한 제가 원망스럽고 후회스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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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9년 5월15일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에서 열린 자문의사협의회에 참석한 박지연씨가 최후진술한 내용이다. 자문의사협의회는 박지연씨의 백혈병이 업무상 얻은 재해인지에 대해 2:3으로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아픈 몸을 이끌고 어렵게 투병 중인 노동자가 직접 호소하는 이야기를 듣고도 3명의 의사는 아픈 노동자의 간절한 소원을 외면했다. 삼성을 선택한 자신이 원망스럽고 후회스러웠다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온다.(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


  생전의 박지연씨 모습
저는 2004년 12월27일 온양반도체(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하여 2년8개월간 QA그룹이라는 검사과에서 일하다 급성 골수성백혈병(M1)이라는 암에 걸려 2년째 투병중인 피해자 박지연입니다.

입사한지 2년8개월만인 2007년 9월12일 21살의 젊은 나이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5번의 항암치료를 받아 2008년 4월29일 골수이식을 어렵게 받았습니다.

이식 후 합병증으로 응급실을 3번이나 갔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도 있었지만 고비는 넘겨 이식한지 1년이 지난 지금 2주에 한번 서울 성모병원으로 통원치료를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1년여동안 병원비로만 수천만원을 썼고 어려운 형편에 부모님께 효도해 보고자 대학도 포기하고 삼성이라는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3년도 안되어 저에게 돌아온 결과는 TV 드라마에서나 나오던 백혈병이라는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건강했던 제가 하루아침에 생사를 넘나드는 병에 걸렸다는 게 꿈만 같았고 삼성을 선택한 제가 원망스럽고 후회스러울 뿐이었습니다.

한참 젊은 나이에 병에 걸려 충격은 더욱 컸고 감당하기조차 힘이 들었지만 주위 사람들의 격려와 엄마의 지극한 정성과 보살핌에 꿋꿋히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제가 몸담아 일했던 곳은 1라인으로 Dram Front 공정부터, Mold, Finish, Gate, Test 공정까지 lotation을 돌아가며 조립, 검사공정에서 제품의 외관검사 및 X-Ray 검사, Finish 공정의 품질 실험 특성검사인 도금 접착성 실험 등 제품의 불량 유무를 검사하는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Mold 공정에서 X-Ray 검사가 비중이 제일 컸고 더군다나 X-Ray 설비는 10년이 넘은 노후설비라 안전장치등 잠금장치조차 없어 바쁘게 일하다보면 설비가 켜져 있는지도 모른 채 문을 열고 닫고 작업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Finish 공정에선 도금공정이 끝난 Lead Frame 자재를 날개로 잘라 Bake oven 2HR, Steam aging 8HR 넣어 놓은 후 FLUX라는 끈적끈적한 노란색 접착제 역할을 해주는 약품에 제품을 담구었다가 245도씨의 녹아 있는 납에 담구어 솔더(납)을 입혀 제품에 솔도가 잘 입혀지는지 테스트하는 도금접착성 검사를 했습니다.

솔더가 입혀지면 세척제 역할을 하는 141B 약품에 담근 다음 SCOPE 검사를 하는 작업을 수없이 했습니다.

납에 제품을 담글 때, 하얀 연기가 나는데 그 연기는 코로 바로 흡입이 되어서 역겹고,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으며, FLUX 용액과 141B 용액을 교체하며 다루는 과정에 화학약품이 손에 묻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장갑이라고는 면장갑을 착용했지만 약품이 그대로 손에 스며들었고 물로 씻어도 약품이 남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거의 마스크를 하지 않았고 실험시 필요한 안전보호장비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솔더 포트 장치의 연기가 빠져나가는 후두에서 불이 난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위험하고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일하며 건강만 잃고 제 인생은 송두리째 날아가버려 지금은 부모님께 불효자식이 되어서 큰 상처만 남긴 채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에 진단을 받았던 병원 교수님께서는 '화학약품을 다뤘냐'는 질문을 하셨으며, 주위에 유산을 경험한 동료도 있었고, 병이 나기 몇 달 전 생리불순은 물론 하혈을 하여 방진복에 피가 묻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4조 3교대가 원칙이지만 사실상 2교대 근무에 2주 연장 야간일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고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면역력이 저하되고 방사선과 화학약품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업무상 질병으로 충분히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산업재해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향후 5년을 바라봐야 완치가 되는 병이라고 하는데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며 살아가야 하고 재발이 되기라도 한다면 더이상 치료할 비용도 없을 뿐더러 밥벌이도 못하고 이대로 병원비, 약값으로 엄마가 식당일로 벌어오는 생활비를 다 쓰기만 한다면 생계 유지가 안될 것 같고, 살 수가 없을 것 같아 아프고 불편한 몸 이끌고 답답한 마음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더이상 저와 같은 병에 걸리는 사람이 나오지 않길 바라며 앞으로 제가 병원비, 생활비 걱정만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근로복지공단은 치료비 보상과 생존권 보장을 마땅히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5월15일
천안 근로복지공단 자문의협의회 에서 박지연 진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