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현가능성 넘치는 사회주의론"으로 제목을 바꾸면 어떨까요. 사회주의가 뭔지부터 한 번 시작해보시죠. 사회주의가 뭔지 제대로 정의하기도, 또 그 정의가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인정받기도 어렵다면, 글쓴이가 주장하는 것보다는 기본소득이 훨씬 실현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겠지요. 계급투쟁, 계급투쟁, 반자본, 반자본... 길거리에서 이렇게 외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니요. 그것이 기본소득이든 무엇이든 수많은 매개가 필요하겠지요. 기본소득을 통해 계급투쟁의 필연성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각인된다면, 그게 맨몸으로 드러나는 구호보다 훨씬 더 계급투쟁적인 게 아닐른지요.
'기본소득론들'에서 제기하는 이런저런 '이행전략'에 대한 비판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비판 이면에 깔려있는 이런저런 전제들에는 불쾌합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기본소득을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누려야할 '생존권'에 대한 무조건적인 보장이라고 이해/주장하는 사람으로서, 생존권조차도 사회의 필요적노동에 참여하는 댓가로소만 보장된다는 글의 취지에는 몹시 불쾌합니다.
"...끝으로 무조건적인 현금형태의 기본소득이 사회주의적 원칙을 충족시킬 수 없다면, 고용과 보장의 사각지대에 있는 실업자 등 도시빈민과 사회적 부불노동인 가사노동에 대한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고, 당면한 현실에서 빈곤층을 포함한 대중을 결집시킬 담론과 요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구요?
즈으윽, 자본주의를 변혁하자는 말은 입에 담기 쉬워도, '사각지대'는 글쓴이의 시야에도 역시 사각에 있군요. 글쓴이가 보기엔, '사각지대'를 해결하는 것 보다, 자본주의를 홀라당 뒤집는 쪽이 더 빠르고 간편한가 보죠?
덧붙여, 진보의 전략을 논하려면, 정말 이런식의 논쟁술은 좀 자제하는 게 옳습니다. 누가, 어떤 논리로 이야기를 했건, 존재하는 문제는 존재하는 문제로서 그것에 대해 답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러나, 이 글은 - 이제껏 기본적으로, 누가 맘에 안드는 주장을 하니 일단 까고보자는 이야기일 뿐, 결국은 '문제' 자체에 대해선 일말의 대책도 없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 글의 글쓴이에게는 '사각지대'에 대한 사고나 문제의식이 원래는 없었고, 다만 누가 - 다른편이 - 그걸 근거로 뭔가 주장하니, 일단 까고 구색꺼리로 글 끄트머리에 '에- 그럼에도' 한마디 붙였을 뿐이라는거죠.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위 글은 <진보전략회의>의 공식 입장인지요?
화폐발행권을 민간금융업자에서 정부로 옮겨오면 재원조달에 관한 논쟁은 불필요할 것이여 빈부귀천을 따지않고 한 사회의 구성원이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무조건적으로 주는 것이 기본소득보장의 취지일것이며 기존의 사회 체제가 아닌 새로운 사회를 만들수있을 것이다
긴 댓글을 지웁니다. 먼저, 토론회의 내용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내용이 같은 글이 올라 와서 매우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긴 댓글은 형식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 앞으로 틈이 나면 기고로 대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유해하다'는 표현은 본문에도 나옵니다^^
"실현가능성 넘치는 사회주의론"으로 제목을 바꾸면 어떨까요. 사회주의가 뭔지부터 한 번 시작해보시죠. 사회주의가 뭔지 제대로 정의하기도, 또 그 정의가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인정받기도 어렵다면, 글쓴이가 주장하는 것보다는 기본소득이 훨씬 실현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겠지요. 계급투쟁, 계급투쟁, 반자본, 반자본... 길거리에서 이렇게 외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니요. 그것이 기본소득이든 무엇이든 수많은 매개가 필요하겠지요. 기본소득을 통해 계급투쟁의 필연성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각인된다면, 그게 맨몸으로 드러나는 구호보다 훨씬 더 계급투쟁적인 게 아닐른지요.
내용을 입력하세요
내용을 입력하세요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일자리는 저절로 나누어질 것이고 노동시간은 저절로 단축될 것이다(?) 앞뒤말 잘라먹고, 이렇게 인용하는 건 참으로 거시기 하네요. 문맥상은 일자리창출 비판하는 글이던데.
마치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한 논리인 '자원의효율적배분'과 닮아보이는 건 저뿐일까요.
"사회주의사회에서 무차별적인 기본소득은 필요없다"는 말은 보편적 인권에도 반하는 것 같군요.
잘 읽고 갑니다
'기본소득론들'에서 제기하는 이런저런 '이행전략'에 대한 비판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비판 이면에 깔려있는 이런저런 전제들에는 불쾌합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기본소득을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누려야할 '생존권'에 대한 무조건적인 보장이라고 이해/주장하는 사람으로서, 생존권조차도 사회의 필요적노동에 참여하는 댓가로소만 보장된다는 글의 취지에는 몹시 불쾌합니다.
"...끝으로 무조건적인 현금형태의 기본소득이 사회주의적 원칙을 충족시킬 수 없다면, 고용과 보장의 사각지대에 있는 실업자 등 도시빈민과 사회적 부불노동인 가사노동에 대한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고, 당면한 현실에서 빈곤층을 포함한 대중을 결집시킬 담론과 요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구요?
즈으윽, 자본주의를 변혁하자는 말은 입에 담기 쉬워도, '사각지대'는 글쓴이의 시야에도 역시 사각에 있군요. 글쓴이가 보기엔, '사각지대'를 해결하는 것 보다, 자본주의를 홀라당 뒤집는 쪽이 더 빠르고 간편한가 보죠?
덧붙여, 진보의 전략을 논하려면, 정말 이런식의 논쟁술은 좀 자제하는 게 옳습니다. 누가, 어떤 논리로 이야기를 했건, 존재하는 문제는 존재하는 문제로서 그것에 대해 답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러나, 이 글은 - 이제껏 기본적으로, 누가 맘에 안드는 주장을 하니 일단 까고보자는 이야기일 뿐, 결국은 '문제' 자체에 대해선 일말의 대책도 없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 글의 글쓴이에게는 '사각지대'에 대한 사고나 문제의식이 원래는 없었고, 다만 누가 - 다른편이 - 그걸 근거로 뭔가 주장하니, 일단 까고 구색꺼리로 글 끄트머리에 '에- 그럼에도' 한마디 붙였을 뿐이라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