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잔혹하고 무자비한 폭동덕분에
국민들의 폭도에 대한 증오는 하늘을 찌르고
청와대까지도 강력한 공권력 집행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제 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진 것입니다.
더이상 부상자 하나에 벌벌떠는 경찰이 아니라
온 국민과 청와대의 후원을 받는 경찰이 된 것입니다.
이제 경찰은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작전을 구상할 수 있는 재량이 무한대가 되었습니다.
이에 새시대에 맞는 새로운 폭동진압작전을 제안합니다.
제1선-폴리스라인을 적당한 장소에 칩니다.
하지만 시위대는 어차피 개무시하기에 굳이 사람을 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라바콘이나 공사장 노란펜스로 하면 충분할 것입니다.
제3선-1선에서 죽은 자들의 시체를 넘어온 시위대는
사과탄과 수류탄을 동시에 투척해 제압합니다.
시위대는 매캐한 연기속에서 공포에 휩싸이며 죽을 것입니다.
수류탄, 사과탄조는 투척후 바로 후퇴합니다.
제4선-시위대가 3선을 넘으면 기관총조가 사격을 개시합니다.
이때 시위대가 아닌 사람도 죽을 수 있으나
시위대의 재산을 몰수해(그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했으며, 따라서 재산권도 없다) 보상하면 될 것입니다.
제5선-4선까지 넘은 용감한 시위대는 월도로 목을 베어줍니다.
또한 3,4선이 겁에 질려 망설일 시에는 가차없이 목을 베는 독전관 역할을 합니다.
월도에는 三尺誓天山河動色 一揮掃蕩血染山河 이라는 멋들어진 한시를 적는 센스를 곁들여야 합니다.
3,4,5선에 각 1개 소대씩 총 1개 중대면 족하며
그 외 뒷정리나 퇴각로 차단 등 합쳐봤자 3~4개 중대면 족합니다.
지나치다고 헛소리하는 자들이 있을듯 하지만
국민이기를 포기하고 자유와 평화를 위협하는 자들에 대한
마땅하고도 옳은 처분일 뿐입니다.
군인이 적의 죽음에 기뻐하듯이,
경찰이 범법자의 죽음에 기뻐하는건 당연한거 아닙니까!
저는 사람끼리 싸우는게 아니라
사람과 폭도가 싸우는걸 이야기한 것입니다.
당연히 사람이 살아야하고 폭도가 죽어야합니다.
그것이 이땅을 지키는 것입니다.
어떠한 손실이 있더라도,
자원이 얼마나 들든지 상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다리를 폭파시키고 학교를 부수고
도로를 끊어놓을 수 있는 과감함이 필요합니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바로 국가안보이며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손실도,
어떠한 자원투입도 아깝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손실과 어떠한 자원투입도
국가안보 앞에서는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미국은 공권력에 대항하는 자에게 즉각 총으로 심판하는데
왜 우리 경찰은 얻어터지고 있어야 합니까?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자유시민 전체가 동의할 것입니다.
더이상 범법자에 약한 경찰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경찰의 화력무장만이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길이며
이것이 전세계적 추세이며 표준이라는 것은 증명되었습니다.
이제 이 사실을 알려 뜨거운 여론을 형성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간 우리는
전국팔도를 떠돌며
잔혹한 도적떼를 막아주었다
나라를 넘기려는 매국노들과 맞서싸워 이 나라를 지켜왔다.
너희들의 더럽혀진 영혼을 처단하였고
안전을 지켜주었다
너희는 우리가 만들어준 안전위에서
먹고 싸고 따뜻할 수 있었다
너희는 우리가 연결해준 안보를 통해서야
말하고 듣고 소통할 수 있었다
우리는 너희를 위해 결코 무너지지 않을
대한민국을 유지하기 위해 불순세력을 처단하였다.
아무말없이, 불평도 없이
하지만 너희는 그런 우리에게
착취와 모멸만을 주었다
우리의 밥은 늘 흙먼지 땡볕에 섞여졌고
우리들의 국은 늘 새벽진흙탕이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도 늘 개차반 인생이었다
맞아도 맞아도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국법의 마지막 사각지대
죽어도 죽어도 언론에는 단 한줄도 안나오고 타중대 전우들조차 모르는 암흑의 존재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이 버릇없게 구는 불량표지판
죽지못해 사는 인생이 우리의 자리였다
그런 우리의 요구는 소박했다
국가공권력의 절대성에 복종한다면
북괴를 찬양하지 않는다면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쉴 수 있다면
경찰관의 그 어떠한 요구에도 반항하지 않는다면
국가정책에 조건없이 절대복종한다면
노동의 의무를 지켜준다면
너희의 노예로 더 열심히 일하고
충성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너희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머리에 피도안마른 버르장머리없는 경찰들이 감히
신성한 우리 해방구를 뺏으려하다니
밀어버려, 끌어내, 목줄을 짤라 버려
수백명의 부상.
그리고 이름모를 전우의 죽음.
그래서 우리도 이젠 다르게 생각한다
전면전을 선포한 너희에게 맞서
우리가 그간 해왔던 건설과는
전혀 다른 건설을 꿈꾼다
더 이상 너희의 배부름에 봉사하는 건설이 아니라
일하지 않는 너희의 비정상적인 비만을 위한 건설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의 주인으로 우리가 서는
새로운 세계를 설계한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가 너희의 노예가 아니라
우리가 너희의 주인이 되는 전쟁이다
우리의 치안에 빌붙어 과실만을 따먹는
너희 인간거머리들, 독사의자식들을 박멸하는 전쟁
진정한 사회의 주인
민주주의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명백히 하는 전쟁이다
비켜라
비키지 않으면
이 믿음의 방패로 너희들의 썩고 굳은 머리를 깨부술 것이다
물러서라
물러서지 않으면
이 성령의 봉으로 너희의 이름을
역사의 페이지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말 것이다
사죄하라
사죄하지 않으면
우리 가슴에 박힌 대못을 빼내
너희의 정수리를 뚫어놓을 것이다.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며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것이니라.
더이상 강자앞에서 약하고
약자앞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
강자앞에서 강하고 약자앞에서 너그러운
이상적인 경찰상을 너희에게 보여주겠다.
새로운 접근이군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런 점은 어떤가요? 국가권력이 집회시위를 탄압하는 논리 중에 하나가 권리의 충돌-안온한 삶과 시끄러운 집회의 대비-인데 문화권으로서의 접근은 이런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습니까? 정치권리로서의 접근은 더 큰 공익이 있음을 해명하는 방식으로 반박하는데 문화권으로서의 접근은 어떤지요? 예를 들어, 집회 시위의 장소를 소유권자가 집회시위자에게 제공하는데까지 나갈 수 있을까요? 소유권자가 공공일 경우 사용료를 무료로 하는 방식, 소유권자가 민간일 경우 일시적으로 사용권을 무료로 할양하는 방식 같은 것 말입니다.
본문 글 뿐만 아니라, 나이테 님의 의견도 하나의 생각꺼리가 되는 군요. 그런데 집회를 문화권으로 이해한다면, 이것을 굳이 '시끄러운 집회'로 이해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집회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이므로, 결국 다른 형태의 문화가 동일한 장소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이것을 '충돌'로 표현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예를 들어 광장 한 켠에서는 노래자랑이 벌어지고, 다른 한 켠에서는 춤대결이 벌어지는 것을 굳이 권리의 충돌이라고 표현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또 사유지에서 벌어지는 노래자랑이나 무용대회와 같은 문화 행위를 허가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지금도 그 소유권자에게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요.
여러 잔혹하고 무자비한 폭동덕분에
국민들의 폭도에 대한 증오는 하늘을 찌르고
청와대까지도 강력한 공권력 집행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제 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진 것입니다.
더이상 부상자 하나에 벌벌떠는 경찰이 아니라
온 국민과 청와대의 후원을 받는 경찰이 된 것입니다.
이제 경찰은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작전을 구상할 수 있는 재량이 무한대가 되었습니다.
이에 새시대에 맞는 새로운 폭동진압작전을 제안합니다.
제1선-폴리스라인을 적당한 장소에 칩니다.
하지만 시위대는 어차피 개무시하기에 굳이 사람을 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라바콘이나 공사장 노란펜스로 하면 충분할 것입니다.
제2선-크레모아를 일렬로 깝니다.
시위대가 폴리스라인을 건드리면 일제히 폭파시켜
시위대 최선두는 쇠구슬이 온몸에 박힌채 고통스럽게 죽어갈 것입니다.
제3선-1선에서 죽은 자들의 시체를 넘어온 시위대는
사과탄과 수류탄을 동시에 투척해 제압합니다.
시위대는 매캐한 연기속에서 공포에 휩싸이며 죽을 것입니다.
수류탄, 사과탄조는 투척후 바로 후퇴합니다.
제4선-시위대가 3선을 넘으면 기관총조가 사격을 개시합니다.
이때 시위대가 아닌 사람도 죽을 수 있으나
시위대의 재산을 몰수해(그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했으며, 따라서 재산권도 없다) 보상하면 될 것입니다.
제5선-4선까지 넘은 용감한 시위대는 월도로 목을 베어줍니다.
또한 3,4선이 겁에 질려 망설일 시에는 가차없이 목을 베는 독전관 역할을 합니다.
월도에는 三尺誓天山河動色 一揮掃蕩血染山河 이라는 멋들어진 한시를 적는 센스를 곁들여야 합니다.
3,4,5선에 각 1개 소대씩 총 1개 중대면 족하며
그 외 뒷정리나 퇴각로 차단 등 합쳐봤자 3~4개 중대면 족합니다.
지나치다고 헛소리하는 자들이 있을듯 하지만
국민이기를 포기하고 자유와 평화를 위협하는 자들에 대한
마땅하고도 옳은 처분일 뿐입니다.
군인이 적의 죽음에 기뻐하듯이,
경찰이 범법자의 죽음에 기뻐하는건 당연한거 아닙니까!
저는 사람끼리 싸우는게 아니라
사람과 폭도가 싸우는걸 이야기한 것입니다.
당연히 사람이 살아야하고 폭도가 죽어야합니다.
그것이 이땅을 지키는 것입니다.
어떠한 손실이 있더라도,
자원이 얼마나 들든지 상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다리를 폭파시키고 학교를 부수고
도로를 끊어놓을 수 있는 과감함이 필요합니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바로 국가안보이며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손실도,
어떠한 자원투입도 아깝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손실과 어떠한 자원투입도
국가안보 앞에서는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미국은 공권력에 대항하는 자에게 즉각 총으로 심판하는데
왜 우리 경찰은 얻어터지고 있어야 합니까?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자유시민 전체가 동의할 것입니다.
더이상 범법자에 약한 경찰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경찰의 화력무장만이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길이며
이것이 전세계적 추세이며 표준이라는 것은 증명되었습니다.
이제 이 사실을 알려 뜨거운 여론을 형성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간 우리는
전국팔도를 떠돌며
잔혹한 도적떼를 막아주었다
나라를 넘기려는 매국노들과 맞서싸워 이 나라를 지켜왔다.
너희들의 더럽혀진 영혼을 처단하였고
안전을 지켜주었다
너희는 우리가 만들어준 안전위에서
먹고 싸고 따뜻할 수 있었다
너희는 우리가 연결해준 안보를 통해서야
말하고 듣고 소통할 수 있었다
우리는 너희를 위해 결코 무너지지 않을
대한민국을 유지하기 위해 불순세력을 처단하였다.
아무말없이, 불평도 없이
하지만 너희는 그런 우리에게
착취와 모멸만을 주었다
우리의 밥은 늘 흙먼지 땡볕에 섞여졌고
우리들의 국은 늘 새벽진흙탕이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도 늘 개차반 인생이었다
맞아도 맞아도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국법의 마지막 사각지대
죽어도 죽어도 언론에는 단 한줄도 안나오고 타중대 전우들조차 모르는 암흑의 존재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이 버릇없게 구는 불량표지판
죽지못해 사는 인생이 우리의 자리였다
그런 우리의 요구는 소박했다
국가공권력의 절대성에 복종한다면
북괴를 찬양하지 않는다면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쉴 수 있다면
경찰관의 그 어떠한 요구에도 반항하지 않는다면
국가정책에 조건없이 절대복종한다면
노동의 의무를 지켜준다면
너희의 노예로 더 열심히 일하고
충성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너희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머리에 피도안마른 버르장머리없는 경찰들이 감히
신성한 우리 해방구를 뺏으려하다니
밀어버려, 끌어내, 목줄을 짤라 버려
수백명의 부상.
그리고 이름모를 전우의 죽음.
그래서 우리도 이젠 다르게 생각한다
전면전을 선포한 너희에게 맞서
우리가 그간 해왔던 건설과는
전혀 다른 건설을 꿈꾼다
더 이상 너희의 배부름에 봉사하는 건설이 아니라
일하지 않는 너희의 비정상적인 비만을 위한 건설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의 주인으로 우리가 서는
새로운 세계를 설계한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가 너희의 노예가 아니라
우리가 너희의 주인이 되는 전쟁이다
우리의 치안에 빌붙어 과실만을 따먹는
너희 인간거머리들, 독사의자식들을 박멸하는 전쟁
진정한 사회의 주인
민주주의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명백히 하는 전쟁이다
비켜라
비키지 않으면
이 믿음의 방패로 너희들의 썩고 굳은 머리를 깨부술 것이다
물러서라
물러서지 않으면
이 성령의 봉으로 너희의 이름을
역사의 페이지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말 것이다
사죄하라
사죄하지 않으면
우리 가슴에 박힌 대못을 빼내
너희의 정수리를 뚫어놓을 것이다.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며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것이니라.
더이상 강자앞에서 약하고
약자앞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
강자앞에서 강하고 약자앞에서 너그러운
이상적인 경찰상을 너희에게 보여주겠다.
그리하여
믿음의 방패,
말씀의 전신갑주,
성령의 봉으로서
너희들의 지옥불인생을
주님의 뜻대로 심판하겠노라.
이 성스런 전투경찰의 법집행 앞에
돌이켜라. 썩은 시대여
항복하라. 낡은 시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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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접근이군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런 점은 어떤가요? 국가권력이 집회시위를 탄압하는 논리 중에 하나가 권리의 충돌-안온한 삶과 시끄러운 집회의 대비-인데 문화권으로서의 접근은 이런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습니까? 정치권리로서의 접근은 더 큰 공익이 있음을 해명하는 방식으로 반박하는데 문화권으로서의 접근은 어떤지요? 예를 들어, 집회 시위의 장소를 소유권자가 집회시위자에게 제공하는데까지 나갈 수 있을까요? 소유권자가 공공일 경우 사용료를 무료로 하는 방식, 소유권자가 민간일 경우 일시적으로 사용권을 무료로 할양하는 방식 같은 것 말입니다.
본문 글 뿐만 아니라, 나이테 님의 의견도 하나의 생각꺼리가 되는 군요. 그런데 집회를 문화권으로 이해한다면, 이것을 굳이 '시끄러운 집회'로 이해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집회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이므로, 결국 다른 형태의 문화가 동일한 장소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이것을 '충돌'로 표현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예를 들어 광장 한 켠에서는 노래자랑이 벌어지고, 다른 한 켠에서는 춤대결이 벌어지는 것을 굳이 권리의 충돌이라고 표현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또 사유지에서 벌어지는 노래자랑이나 무용대회와 같은 문화 행위를 허가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지금도 그 소유권자에게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