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자체가 진보성을 담보할 수 있으므로 논술은 강화되어야 한다? 오히려 논술로 밥벌어먹고 사는 운동권들을 위해 논술이 중요하다고 강변하는 것처럼 들리네요. 현실적으로 구더기가 무서우면 장을 담그면 안됩니다. 지금 사교육 구더기가 좀 무섭나요? 그걸 몰라서 하는말인가요?
논술교육이 '해방적 사유의 흐름'을 만드는 긍정적인 측면엔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이해됩니다. 또한 진보교육운동이 평가권력의 평가시스템에 대한 체제적 비판과 함께 '참교육/지식'의 본질적 접근(성찰)과 생산을 위한 실천적 대안 역시 모색되야 한다는 중요한 일침도 깔려져있다고 이해됩니다. 좀더 이해한다면 과거 사지선다형 학력고사 평가수준에서 '학교지식 바깥'으로 열려있도록한 열린교육과 수능고사 평가수준이 일진보했다는 맥락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토론의 여지가 있는 이런 이해들을 바탕으로 '서울대입시안을 본고사로 섣불리 재단해 부정함으로써 논술교육의 혁명성을 놓치지 말자'는 이 글의 취지에 대해 대화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서울대입시안은 해방적 사유의 흐름을 우리 교육과정에 교육혁명으로 혹은 단초로, 논술교육의 혁명성으로 작동되는 것과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논술이 교육혁명을 가져올 수 있다는 취지의 이 글이 서울대입시안에서 출발한 점은 적절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쉽게 말하면 그건 결국 '입시논술'일 수밖에 없으며, 또한 단 1%에게만 파급되는 것이며, 국민교양교육과정인 중등교육에서 0.1%를 선발하고자 하는 평가체제로 (논술이 사용되어) 작동될 뿐입니다. 그래서 서울대입시안이 본고사냐 아니냐를 지켜볼 필요도 없이, 설령 본고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공교육에서 해방적 사유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논술교육의 혁명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혹 서울대라는 무소불위의 평가권력이 논술을 평가방식으로 채택함으로써 공교육과정에 논술교육이 강화된다면, 기대된다면 이는 '위로부터의 혁명'으로 '아래로부터 그리고 넓게' 라는 운동방식과 배치되는 건 아닐까요.
둘째, 논술 그 자체가 해방적 사유의 흐름을 만들거나 그래서 교육혁명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학교지식/학교체제가 테두리해 놓은 사유의 틀을 상대화하고 학교를 넘나드는 해방적 사유의 흐름으로 작동되는 데에는 반드시 동시에 짚어야 하는 '열린교육', 즉 학교가 밖으로 열리는 것뿐만 아니라 밖(시장)이 학교로 열리는 문제에 대한 전략적 대안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열린교육이 태동되면서부터 시장에 잠식되어 가고 있는 걸 목도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즉, 도시의 공기가 자유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째, 고길섭님의 글을 보면서 진보교육운동의 두과제를 떠오르게 합니다. 하나는 사유와 지식, 세계적 감수성을 가장 진보적으로 생산하고 공유/공감함으로써 사회공동체의 일진보를 책임져야 하는 교육주체들이 문화/환경/여성/노동 등 실천적 현실운동에서 생산하고 있는 진보족 사유와 지식, 감수성을 수용하는 문화적/이론적/실천적 대화의 부족 나아가 이들을 공교육과정에 편재시키는 제도적 틀거리의 부재가 떠오릅니다. 설령 이런 실천들이 있다하더라도 교육주체의 개별적 성과로 남아있을 뿐, 진보교육운동의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의제로 실천운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인 듯합니다.(물론 참실운동에선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한편의 또하나는 진보교육운동이 제기하는 사회적 의제와 실천적,전략적 맥락(운동발전단계/흐름)들에 대한 '연대적 대화'의 부족입니다. 고길섶님의 '논술을 두려워 하는가?'라는 이글은 진보교육운동의 연대적 대화의 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합니다. 이는 진보적이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많은 '학교비평/풍자'들에서도 나타납니다. 이 두과제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진보교육운동의 '공교육강화, 교육시장화반대'는 폭넓은 대중적 연대를 이끌어내는 어려움뿐만 아니라, 교육운동의 중심에 있는 전교조가 대안적 교육체제까지 이끌어가는 변혁적 교육운동의 지향을 잊고 학교를 수호하는 조합주의적 교사운동의 위험성을 경계해야하는 상황에 이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에서 제가 충분하게 글을 쓰지는 못했습니다.
‘논술’이라는 부분만 툭 떼어다가, 그것도 시사적인 맥락에서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생각이 옳든 그르든, 오해의 소지가 많을 것입니다.
사회진보적인 교육운동의 현 쟁점들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럼에도 저는 논술교육 문제는 진보교육운동과 연동되어야 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댓글들 특히 ‘지나다’님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하여 조만간 다다음 칼럼에도 이 주제로 다시 쓰고자 합니다. 죄송합니다만 그때까지 대화를 기다려주시면 어떨가 합니다.
논술 자체가 진보성을 담보할 수 있으므로 논술은 강화되어야 한다? 오히려 논술로 밥벌어먹고 사는 운동권들을 위해 논술이 중요하다고 강변하는 것처럼 들리네요. 현실적으로 구더기가 무서우면 장을 담그면 안됩니다. 지금 사교육 구더기가 좀 무섭나요? 그걸 몰라서 하는말인가요?
그 막돼먹은 경쟁사회, 일렬사회가 두려울 뿐이죠. 근데, 이 글은 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같네요. 그래서 어쩌라구요? 지금은 다른 이야기를 할 때입니다. 이런.
본지 디게 오래 됐네요. 부안집도 보고싶고 아새끼도 구경시켜드려야 하는데... 저는 요즘 정기용샘이 밀어넣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도시건축연구소에 근무함당. 서울 오시면 언제 함 연락주세요~ 제가 핸폰을 잃어버려서 연락처가 없어요. 요기 이멜도 없어서 댓글 달아요~ 제 이멜 주소는 ggagul앳chiiim쩜net임당. 연락처 좀 보내주십셔~
논술교육이 '해방적 사유의 흐름'을 만드는 긍정적인 측면엔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이해됩니다. 또한 진보교육운동이 평가권력의 평가시스템에 대한 체제적 비판과 함께 '참교육/지식'의 본질적 접근(성찰)과 생산을 위한 실천적 대안 역시 모색되야 한다는 중요한 일침도 깔려져있다고 이해됩니다. 좀더 이해한다면 과거 사지선다형 학력고사 평가수준에서 '학교지식 바깥'으로 열려있도록한 열린교육과 수능고사 평가수준이 일진보했다는 맥락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토론의 여지가 있는 이런 이해들을 바탕으로 '서울대입시안을 본고사로 섣불리 재단해 부정함으로써 논술교육의 혁명성을 놓치지 말자'는 이 글의 취지에 대해 대화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서울대입시안은 해방적 사유의 흐름을 우리 교육과정에 교육혁명으로 혹은 단초로, 논술교육의 혁명성으로 작동되는 것과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논술이 교육혁명을 가져올 수 있다는 취지의 이 글이 서울대입시안에서 출발한 점은 적절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쉽게 말하면 그건 결국 '입시논술'일 수밖에 없으며, 또한 단 1%에게만 파급되는 것이며, 국민교양교육과정인 중등교육에서 0.1%를 선발하고자 하는 평가체제로 (논술이 사용되어) 작동될 뿐입니다. 그래서 서울대입시안이 본고사냐 아니냐를 지켜볼 필요도 없이, 설령 본고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공교육에서 해방적 사유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논술교육의 혁명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혹 서울대라는 무소불위의 평가권력이 논술을 평가방식으로 채택함으로써 공교육과정에 논술교육이 강화된다면, 기대된다면 이는 '위로부터의 혁명'으로 '아래로부터 그리고 넓게' 라는 운동방식과 배치되는 건 아닐까요.
둘째, 논술 그 자체가 해방적 사유의 흐름을 만들거나 그래서 교육혁명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학교지식/학교체제가 테두리해 놓은 사유의 틀을 상대화하고 학교를 넘나드는 해방적 사유의 흐름으로 작동되는 데에는 반드시 동시에 짚어야 하는 '열린교육', 즉 학교가 밖으로 열리는 것뿐만 아니라 밖(시장)이 학교로 열리는 문제에 대한 전략적 대안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열린교육이 태동되면서부터 시장에 잠식되어 가고 있는 걸 목도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즉, 도시의 공기가 자유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째, 고길섭님의 글을 보면서 진보교육운동의 두과제를 떠오르게 합니다. 하나는 사유와 지식, 세계적 감수성을 가장 진보적으로 생산하고 공유/공감함으로써 사회공동체의 일진보를 책임져야 하는 교육주체들이 문화/환경/여성/노동 등 실천적 현실운동에서 생산하고 있는 진보족 사유와 지식, 감수성을 수용하는 문화적/이론적/실천적 대화의 부족 나아가 이들을 공교육과정에 편재시키는 제도적 틀거리의 부재가 떠오릅니다. 설령 이런 실천들이 있다하더라도 교육주체의 개별적 성과로 남아있을 뿐, 진보교육운동의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의제로 실천운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인 듯합니다.(물론 참실운동에선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한편의 또하나는 진보교육운동이 제기하는 사회적 의제와 실천적,전략적 맥락(운동발전단계/흐름)들에 대한 '연대적 대화'의 부족입니다. 고길섶님의 '논술을 두려워 하는가?'라는 이글은 진보교육운동의 연대적 대화의 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합니다. 이는 진보적이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많은 '학교비평/풍자'들에서도 나타납니다. 이 두과제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진보교육운동의 '공교육강화, 교육시장화반대'는 폭넓은 대중적 연대를 이끌어내는 어려움뿐만 아니라, 교육운동의 중심에 있는 전교조가 대안적 교육체제까지 이끌어가는 변혁적 교육운동의 지향을 잊고 학교를 수호하는 조합주의적 교사운동의 위험성을 경계해야하는 상황에 이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에서 제가 충분하게 글을 쓰지는 못했습니다.
‘논술’이라는 부분만 툭 떼어다가, 그것도 시사적인 맥락에서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생각이 옳든 그르든, 오해의 소지가 많을 것입니다.
사회진보적인 교육운동의 현 쟁점들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럼에도 저는 논술교육 문제는 진보교육운동과 연동되어야 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댓글들 특히 ‘지나다’님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하여 조만간 다다음 칼럼에도 이 주제로 다시 쓰고자 합니다. 죄송합니다만 그때까지 대화를 기다려주시면 어떨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