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판에는 정확한 독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 글 어디에, '온실에서 안주하던' 이가 좌파입네 하는 대목이 있습니까? 좌파의 무능을 비판하고 안티조선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라는 주장이 곧 스스로 좌파임을 내세우는 것과 같은 건 아닙니다.
2. 마구잡이 딱지붙이기는 곤란합니다.
한겨레가 노빠기관지라는 비판을 들을 때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걸, 독자님은 어찌 아시나요? 독자님이 한겨레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거죠. (혹시 독자님이 한겨레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쉽게 할 수 없을 뿐더러 님의 비판은 님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3. 비판을 하려면 명백하고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명백하게 저와 한겨레 구성원은, 조선일보를 비판할 도덕적, 윤리적, 이념적 우월성을 자신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것이 싫어서, 독자님이 저를 공격하는 거라면 번지수를 잘못 잡은 겁니다. 이 문제에 관한한 저는 한점 부끄러움도 없는 사람입니다. 좌파를 비판하는 게 눈꼴 사나워서 저를 공격하신다면, 필요한 것은 저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반성입니다. 오죽하면 15년동안 '온실에서 안주한' 저같은 사람에게까지 좌파들이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는 처지가 됐겠는지 말입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저는 좌파를 자처한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좌파란, 독자님이 은연중에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 좌파를 말합니다. 도덕적, 윤리적 우월성을 지니는 '훈장'과도 같은 '자랑할만한' 어떤 것 말입니다.
그러나 자랑할만한 어떤 것이 아니라 이념적 성향으로서 말하자면, 저 또한 우파에 속하는 사람은 아닐 겁니다.
처음 문화연대서 열었던 교사들 공붓자리에서 뵈었을 땐 좀 독특한 책상물림 좌파려니 싶었는데, 부안투쟁 첫날에 그 멋지고 질박한 부안사람들과 섞여서 함께 하고, 자율평론 일곱째 마당에서 우공의 글을 읽고 하면서 부안에서의 활동들을 접하게 되니, 처음으로 적실한 프락시스로서의 잇닿음이 느껴지더군요 더군다나 유행처럼 스윽 물러나온 줄 알았는데.... 고맙고 반갑습니다.
맞습니다. - 저 역시도 성정체성을 고민했을 때 그랬듯이 - 현실에선 굉장히 무거운 고민입니다. 단순한 고민을 넘어 사회의 위험요인으로 인해 개인의 정신건강 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굉장히 무거운 고민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기에 '가벼운 고민'이어야 한다라고 표현한 것은 개인의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우리가 흔히 커피와 녹차 사이에 무엇을 마실까 고민하는 것처럼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가족, 친구, 선생님, 직장동료 등 나를 둘러싼 많은 많은 사람들과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고민이어야 한다는 뜻에서 썼습니다. 그것은 성소수자들이 바라는 세상의 모습속에서 가장 기초적인 부분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겠죠.
가벼워야 '한다'는 거죠? 많은 노력과 실천이 필요한.
그러면 가벼운 고민일 수 있는 것이, 현실에서는 무거운 고민이 되는 거네요. 현실때문에 무거운 고민이 되는 걸까, 원래 무거운 고민인걸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 모두에게 가족의 달이 되기에는 갈길이 머네요.
저도 개인적으론 '텍스트 분석'이 없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그랬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원래 필자의 의도 자체가 텍스트 분석을 하겠다는 건 아니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텍스트 내부 구성요소의 분석이 아니라, 외부 정치지형이나 산업지형과의 맥락에서 접근할 수도 있는 거지요, 뭐. ^^
새로운 자파적 상상력 적극 동의합니다.
그래, 그냥 시끄러운 너네들끼리 해라고 물러날 일이 아니지요.
한겨레입사하여 15년동안 그럼 당신은 뭐했소?
한겨레가 노빠기관지였다(?)는 비아냥을 들을때 그때 당신은?
아직도 한겨레가 진보언론이라고 믿는거요?
조선일보가 한나라지지라면 한겨레는 우리당지지 아닌가요?
문화권력 참 좋네
주딩이로만 운동하지 말자
독자님,
항상 사람은 변하고 있고
완벽한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는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는 너는
그동안 뭐 했냐? 라는 식의 글이
제게는 너무 잔인하게 느껴지고
그사람의 입은 막는 행위라고 느껴지는군요.
그리고 한겨레가 우리당지지라...
더 생각해볼 문제라고 봅니다.
그걸 바꿔가는 것도
우리들의 몫 아닙니까?
신기섭씨는 신이 아니랍니다.
온실에서 안주하면서 공자와 맹자왈하면서 좌파입네 하는건
언어도단 아닌가요?
한겨레가 노빠기관지라는 비판을 들을때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고 나는 좌파입네하는건 기회주의의 변종입니다.
15년이면 강산이 몇번 바뀌는 세월입니다.
독자님/심정은 이해가 됩니다만, 몇가지만 지적하자면,
1. 비판에는 정확한 독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 글 어디에, '온실에서 안주하던' 이가 좌파입네 하는 대목이 있습니까? 좌파의 무능을 비판하고 안티조선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라는 주장이 곧 스스로 좌파임을 내세우는 것과 같은 건 아닙니다.
2. 마구잡이 딱지붙이기는 곤란합니다.
한겨레가 노빠기관지라는 비판을 들을 때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걸, 독자님은 어찌 아시나요? 독자님이 한겨레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거죠. (혹시 독자님이 한겨레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쉽게 할 수 없을 뿐더러 님의 비판은 님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3. 비판을 하려면 명백하고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명백하게 저와 한겨레 구성원은, 조선일보를 비판할 도덕적, 윤리적, 이념적 우월성을 자신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것이 싫어서, 독자님이 저를 공격하는 거라면 번지수를 잘못 잡은 겁니다. 이 문제에 관한한 저는 한점 부끄러움도 없는 사람입니다. 좌파를 비판하는 게 눈꼴 사나워서 저를 공격하신다면, 필요한 것은 저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반성입니다. 오죽하면 15년동안 '온실에서 안주한' 저같은 사람에게까지 좌파들이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는 처지가 됐겠는지 말입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저는 좌파를 자처한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좌파란, 독자님이 은연중에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 좌파를 말합니다. 도덕적, 윤리적 우월성을 지니는 '훈장'과도 같은 '자랑할만한' 어떤 것 말입니다.
그러나 자랑할만한 어떤 것이 아니라 이념적 성향으로서 말하자면, 저 또한 우파에 속하는 사람은 아닐 겁니다.
처음 문화연대서 열었던 교사들 공붓자리에서 뵈었을 땐 좀 독특한 책상물림 좌파려니 싶었는데, 부안투쟁 첫날에 그 멋지고 질박한 부안사람들과 섞여서 함께 하고, 자율평론 일곱째 마당에서 우공의 글을 읽고 하면서 부안에서의 활동들을 접하게 되니, 처음으로 적실한 프락시스로서의 잇닿음이 느껴지더군요 더군다나 유행처럼 스윽 물러나온 줄 알았는데.... 고맙고 반갑습니다.
개인의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기호식품을 선택하는 정도로 가벼워도 되나요? 저는 굉장히 무거운 고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맞습니다. - 저 역시도 성정체성을 고민했을 때 그랬듯이 - 현실에선 굉장히 무거운 고민입니다. 단순한 고민을 넘어 사회의 위험요인으로 인해 개인의 정신건강 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굉장히 무거운 고민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기에 '가벼운 고민'이어야 한다라고 표현한 것은 개인의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우리가 흔히 커피와 녹차 사이에 무엇을 마실까 고민하는 것처럼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가족, 친구, 선생님, 직장동료 등 나를 둘러싼 많은 많은 사람들과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고민이어야 한다는 뜻에서 썼습니다. 그것은 성소수자들이 바라는 세상의 모습속에서 가장 기초적인 부분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겠죠.
가벼워야 '한다'는 거죠? 많은 노력과 실천이 필요한.
그러면 가벼운 고민일 수 있는 것이, 현실에서는 무거운 고민이 되는 거네요. 현실때문에 무거운 고민이 되는 걸까, 원래 무거운 고민인걸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 모두에게 가족의 달이 되기에는 갈길이 머네요.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는 내용이네요. ^^
스타워즈 시리즈는... 그 '텍스트 내부'에서도 미묘하면서도 심각한 보수주의를 담지하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그 묘한 아우라란... @.@
텍스트 읽기는 구성 요소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 기본입니다. 산업적 지형이나, 문화, 정치에 대한 언술은 그 다음이지요. 선생의 글을 보면서, 스타워즈와 다스베이더를 어떻게 '읽'었다는지 모르겠네요. 글의 내용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개인적으론 '텍스트 분석'이 없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그랬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원래 필자의 의도 자체가 텍스트 분석을 하겠다는 건 아니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텍스트 내부 구성요소의 분석이 아니라, 외부 정치지형이나 산업지형과의 맥락에서 접근할 수도 있는 거지요,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