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이 있었다면 연좌제를 적용한 비판이라는 지적이 타당하겠으나 이 기사에는 이준희 지국장에 대한 비판은 없습니다. 단지 매일신보와 조풍연에 대한 것을 상기시키고 되새겨보라는 것 뿐입니다. 기사의 핵심은 "이준희 지국장 잘못했다"가 아니라 "이준희 지국장은 조상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조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외조부 조풍연의 영향을 받아 기자의 길을 걷게 됐다"는 이준희 지국장에게는 아주 적절한 조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에게 "할아버지가 친일파였다"면서 "할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하는 것은 적절한 조언입니다. 어떤 면에서 적절치 못하다는 것인지 지적해주셨으면 합니다.
여기에 친일파의 후손은 '친일과 같은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명제가 왜 끼어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그저 막연한 인식에 기반하는 편견에 불과할 뿐, 필연적이라 증명된 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들은 대개의 친일파의 치적이 청산되지 않은 채 부와 기득권이라는 형태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하며 친일파의 후손들에게 '적어도 조상들의 부끄러움을 기억하고 반복하지 말라'는 조언을 할 뿐이죠. 기사의 초입에 이준희 지국장은 외조부의 영향을 받아 기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기사의 문맥상 이 "영향"과 그가 가진 "외조부에 대한 기억"이라는 것이 이 기사가 의도하는 바의 것과는 관계가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음..따끔합니다. 덕에 매일신보와 조풍연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준희 지국장이라는 분이 꼭 읽었으면 하는 기사입니다.
연좌제를 적용한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준희 신임 지국장이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당신네 할아버지가 친일파였으니 당신일 잘하라는 비판이 타당한 것인가요?
할아버지가 친일파였다는 것이 이준희 신임 지국장을 향한 논거가 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비판"이 있었다면 연좌제를 적용한 비판이라는 지적이 타당하겠으나 이 기사에는 이준희 지국장에 대한 비판은 없습니다. 단지 매일신보와 조풍연에 대한 것을 상기시키고 되새겨보라는 것 뿐입니다. 기사의 핵심은 "이준희 지국장 잘못했다"가 아니라 "이준희 지국장은 조상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조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외조부 조풍연의 영향을 받아 기자의 길을 걷게 됐다"는 이준희 지국장에게는 아주 적절한 조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음/ 글쎄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당신 할아버지가 친일파인거 기억하라며 "할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말았으면 한다"고 이야기하는게 과연 적절한 조언입니까? 할아버지가 친일파였던 사람은 친일과 같은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어떤 이에게 "할아버지가 친일파였다"면서 "할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하는 것은 적절한 조언입니다. 어떤 면에서 적절치 못하다는 것인지 지적해주셨으면 합니다.
여기에 친일파의 후손은 '친일과 같은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명제가 왜 끼어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그저 막연한 인식에 기반하는 편견에 불과할 뿐, 필연적이라 증명된 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들은 대개의 친일파의 치적이 청산되지 않은 채 부와 기득권이라는 형태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하며 친일파의 후손들에게 '적어도 조상들의 부끄러움을 기억하고 반복하지 말라'는 조언을 할 뿐이죠. 기사의 초입에 이준희 지국장은 외조부의 영향을 받아 기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기사의 문맥상 이 "영향"과 그가 가진 "외조부에 대한 기억"이라는 것이 이 기사가 의도하는 바의 것과는 관계가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