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285리 평화행진 마무리, 저항은 계속될 것

  • 곳.

    방금 그곳에 있다가 빠져나왔습니다.

    한때 매우 긴장되고 무서운 상황이 벌어졌었습니다.
    평화행진단 본대열이 잠시 금문교 주유소에서 다리쉼을 하고 있었고, 선발대 차량이 원정리 상황을 보기위해 원정리 삼거리 근처로 갔다가, 술에 취한 용역과 원정리 상인들에 의해 차에서 끌려나와 집단 구타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행진단과 뒤늦게 합류하려고 개별적으로 이동하던 사람들이 용역들에게 검문을 당했던 모양입니다.

    갑자기 발생한 이런 돌발사태로 인해, 행진단은 40여분 주유소에서 대기하며 상황 파악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간 중간 각목을 든 상인과 고용된 용역들 150명이 주유소쪽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고요. 용역 서너명이 와서 행진단 동태를 파악해 갔습니다. 그때는 이미 형사들이 와서 150명이 몰려온다는 얘기를 하고 갔습니다.

    행진단은 무리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오늘의 행진은 주유소까지 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 다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11시 5분 경, 갑자기 원정리 쪽에서 각목을 든 술취한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행진단을 에워싸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무섭더군요. 잠시후 경찰이 와서 바리케이트를 치기는 했습니다만, 경찰이 왔어도 그들은 우리쪽에 돌을 던져댔습니다. 제 옆에 계신 분도 가슴팍과 다리에 돌을 맞았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30여분 경찰과 용역과 상인들에게 둘러쌓여 있다가, 상황이 종료되어, 내일을 기약하며 평택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상인측은 우리에게 돌을 던지려고 해서 긴장했습니다.

    평택역으로 온 행진단은 숙소를 배정받기로 했으나,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대추리 주민들이 아직 마을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해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촛불집회가 9시경 끝났으니, 그때 부터 현재 새벽 3시까지 계속 원정3거리에 묶여있는 상태입니다. 주민들이 탄 버스를 경찰이 겹겹으로 에워싼 상태고 계속 카메라로 불법채증을 하기 때문에 버스 창문도 열수 없어서 매우 덥다고 합니다.

    원정3거리를 막고 있던 경찰들은 주민과 함께 있던 농활대를 되돌려 보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즉, 주민만 들어가는 거죠. 안 그러면 학생들을 모두 연행해가겠다고 협박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3일전에 마을에 들어와 들일 하다가 잠시 촛불집회에 참가하려고 나온 농활대를 한 밤중에 내보내라니요. 게다가 농사일 도왔다가 잡아가는 게 말이나 되는 건지.

    현재 행진단은 숙소로 이동하는 것을 변경하여, 대추리 주민들이 마을에 들어갈 때까지 평택경찰서 앞에서 노숙투쟁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요일(9일)에는 1시부터 지킴이대회가 있습니다. 원정리까지 행진을 합니다. 내일 행진은 집회신고가 되어있다고 합니다.

    많이 내려오셔서, 원정리까지 함께 합시다.
    그리고 대추리와 도두리에 들어 갑시다.

  • 곳

    평택 경찰서 앞에서 노숙투쟁을 하려고 이동한 평화행진단 전원이 연행되었습니다. 연행에서 빠져나온 사람과 방금 통화를 했습니다만, 전원 연행되었다는 것 이외에는 더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큰일입니다.

  • 곳

    평택 경찰서 앞에서 항의하던 평화행진단을 경찰이 갑자기 에워싸 연행했다고 하는데, 몇몇은 도망나왔다고 하네요. 몇몇은 현재 민주노동당사로 갔지만, 골목으로 피한 사람들도 있는데 이 사람들을 잡기 위해서 경찰들이 각 골목까지 수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1980년대로 돌아간 거 같습니다. 공안정국이라는 유령이 살아돌아온 것인지.

  • 여자

    약 100여명의 행진대오 중에 40여명이 연행되었다고 합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수원남부서와 안성경찰서 등에 있는 것 같구요,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이 때리면서 연행을 하는 건 처음 봤다고 합니다. 연행된 사람들이나 연행되지 않은 사람들이나 많이 맞았고, 빠져나온 사람들도 너무 놀라서 분위기가 많이 다운 되어 있다고 하는군요. 가실 수 있는 분들은 많이 내려가셔서 모두 힘을 모아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 여자

    위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매우 폭력적이었다고 합니다. 방패로 찍는 건 예사고, 한 여성활동가는 발로 배를 채여서 2m나 나가 떨어져서 실신하였고, 여성분들의 경우 머리채를 잡혀 끌려갔다고 합니다. 악몽같은 5월 4일이 되돌아 온 것 같네요.

  • 지나가다가

    8일 밤, 평화 행진단 피습 상황
    팽성상인회-경찰 유대관계에 관심 모아져

    9일 새벽 1시.

    난데 없는 팽성상인연합회의 테러에 행진단은 일단 평택역 광장에 모여 숨을 고르고 있다.

    행진단은 일단 적당한 숙소를 찾아 오늘 밤을 보낸 후 9일 11시, 이날 사건과 관련된 기자회견을 평택역에서 가질 예정이며 오후 1시와 5시 지킴이 대회등 집회 일정도 지켜나간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여전히 원정3거리에서는 '전국학생행진'소속 농활대와 차를 함께 탄 주민들이 기어코 학생들을 데리고 가겠다며 이를 막는 경찰과 맞서고 있는 상황이라 행진단도 이들과 함께 움직임을 맞출 예정이다.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사태에 대해, 행진단 지도부나 범대위 측에서도 아직 경황을 추스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행진단은 여전히 '우리 목적지는 대추리'라며 대낮을 이용하여 다시 대추리로 향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급박했던 이날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밤 10시. 행진단이 평택역 촛불 집회를 마치고 대추리를 향하던 즈음. 이미 경찰이 지키고 선 원정리 3거리에 평택시내 방향으로 불과 낮은 언덕 하나 건너편에는 팽성상인회 소속 상인들 150여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들은 본대에 앞서 마을로 가려던 선발대 격의 행진단을 각목으로 폭행해 머리에 피가 흐르는 상처를 내는 등 테러를 도발했다.

    10시 20분. 기자가 상인연합회원들이 진을 친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들은 만취 상태에 있었으며 각목과 당구 큐대 등으로 무장한채 지나는 차들을 임의로 검문, 검색하고 있었다.

    평택 경찰서 관계자에 의하면 이들은 대부분 미군을 상대로 하는 클럽, 나이트 등 유흥업 종사자들.

    이때 평택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은 상황을 따져 묻는 기자에게 "오늘 따라 쟤들이 우리 말을 안듣는다", "쟤들에게 '이렇게 하는게 우리에게 도움 되는 일이 아니다'라고 설득했다"고 말하는 등 상인연합회와 '밀월 관계'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10시40분. 급기야 상인회가 "이렇게 있지만 말고 한총련 새끼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러 '사랑 주유소(행진단의 당시 대기처)'로 갑시다"며 방송을 통해서까지 선전을 하고, 건장한 체구의 남성들이 차량에 탑승 할 때 조차 경찰은 이들을 제지하지 않고 끝까지 '말로 달래는' 노력을 부단히 쏟았다.

    '불법 행위가 우려 된다'면서 대추리, 도두리 일대에 학생들의 출입을 고압적으로 금지하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11시 20분. 기어코 상인들이 '사랑 주유소'앞에 도착하여 둔기들을 소지한채 행진단에 성큼성큼 다가 설 때 조차도 경찰의 초동 대처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으며, 느슨한 틈을 타 상인들이 카메라를 소지한 행진단원을 중심으로 무차별 구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뒤늦게 경찰이 행진단과 상인회를 분리시켰으나, 상인들은 행진단을 향해 돌과 몽둥이를 집어 던지는 등 폭력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상인들을 지휘하는 방송차량 스피커에서 "자, 모두들 큰 것 작은 것 가리지 말고 돌을 집어 드세요. 제가 던지라고 하면 던지세요"라는 말이 나오고 상인들이 실제로 돌을 집어 들 때에도 경찰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날아오는 돌을 맞으면서도 여성 행진단을 보호하고 상인들의 도발에 침묵과 무대응으로 대응한 행진단 지도부의 냉정함이 빛난 상황이었다.

    상인들의 행위에 끝까지 인내하는 호의(?)를 아끼지 않은 경찰들 덕분에 상인들은 더욱 난동을 부렸으며, 결국 행진단은 경찰 병력으로 만든 길을 따라 평택역으로 후퇴해야 했다.

    새벽 1시. 행진단은 평택역에 모여 날이 밝는 대로 오전 11시에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이후 일정을 마저 치를 것을 계획했으나, 표정들은 매우 어둡고 무거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새벽2시가 되도록 원정3거리에서 농활온 학생들을 놓고 경찰들과 주민들의 옥신각신이 이어지고 있어 이들과 함께 싸우자는 의지를 가진 행진단은 숙소를 마련해 두고도 평택역 광장을 뜨지 않고 있다.

    상인연합회가 경찰의 코 앞에서 마음껏 난동을 부릴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한 궁금증과, 학생들에게는 고압적인 반면 '조폭스러운' 상인들의 행위에는 유들유들하기만한 경찰의 이중성에 행진단원들의 분노가 식지 않는 밤이었다.

  • 지나가다

    현재 상황 총화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40여 명이 연행되었고, 안성, 수원 남부, 군포, 분당경찰서에 각각 분산배치되어 있습니다. 특히 안성서에 있는 분들이 폭력에 많이 노출된 분들 같고요. 굉장히 심한 물리적, 언어적 폭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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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채를 잡혀서 끌려간 여자는 제 친구 인것 같습니다. 3시 30분 경 해산하려고 하는 시위대를 전경이 갑자기 에워싸기 시작했고, 일부가 전경에게 두드려 맞아서 그것에 항의를 하다 더욱 두드려 맞는 상황들이 벌어졌습니다. 전 어느 여자분과 전경 사이에 고립되어 있다가 틈사이로 빠져 나왔고, 빠져 나온 남자분들이 언덕에 있다가 연행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서 쪽으로 갔습니다. 그때, 사복 형사가 뒤에서 달려왔습니다. "달려!"라는 소리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두 정말 미친듯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달리다가 각자 흩어져 어두운 풀숲이나 건물 안에 숨었어요. 저는 건물 꼭대기층에 혼자 숨어 있었고, 창 밖으로 약 한시간 가량 사복형사가 건물 앞을 돌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연행된 사람들과 그 때 까지는 연락이 되었었는데, 실신을 해서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다시 서로 돌아온 사람도 있고, 너무 많이 맞아서 얼굴이 부어 알아볼수 없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