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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70주년, 노동법의 목적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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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무게

지난 5월 10일은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진 지 70년이 되는 날이었다. 제정 70주년을 맞아 여러 매체에서 특집기사를 다뤘으며, 각종 단체에서 성명이나 논평을 발표했다. 노동법을 돌아보는 토론회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60년이 지나면 새로운 주기가 시작된다며 이를 ‘환갑’이라 부르는데, 근로기준법은 환갑을 넘어 강산이 변하고도 남는다는 10년의 세월을 더 지나왔다. 이럴 때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가 노동법의 생성 배경과, 법의 취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노동법의 탄생 : 사실적인 불평등의 공식화

노동법은 계약공정의 원칙, 무과실책임의 원칙, 소유권 상대의 원칙이라는 시민법 원리의 수정원칙을 가진다. 즉, 노동법은 근대 민법의 3대 원칙(계약자유의 원칙, 과실책임의 원칙, 소유권 절대의 원칙)으로는 실질적 평등을 이룰 수 없다는 반성에서 탄생한 사회법으로서, 당사자 간의 자유의사에만 맡기지 않고 사회적 사정과 법적 보호 필요성을 고려해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약자유의 원칙’의 수정이다. 민법은 대등한 당사자 사이에서 의사가 합치돼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계약의 내용이 다소 불평등하더라도,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한1 계약의 효력을 유지시킨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현실은 경제적 강자의 ‘소유의 자유’로 하여금 ‘소유물에 대한 처분의 자유’를 넘어 ‘인간에 대한 처분의 자유’에 이르게 했다.

이에 노동법은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근대 민법으로는 구조적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아가 노동권을 소유권에 대립시킴으로써 ‘소유권 절대의 원칙’을 붕괴시키고, 노동계약의 기준을 통제2하고 이를 강제함으로써 ‘계약자유의 원칙’을 수정했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상시 근로자 수, 잘못 세운 울타리

노동법의 탄생을 이야기할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러나 노무사로서 법을 적용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바로 상담 초기 상시 근로자 수를 물어볼 때다. “사업장 규모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은 “당신은 법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나요?”라는 질문과 본질적으로 같다. 우리 노동법이 근로기준법의 핵심 조항을 단지 상시 근로자 수라는 단일한 조건으로 배제하기 때문이다. 사업장에서 직접 고용하는 노동자가 5인이 넘지 않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업주가 노동자를 강제로 해고할 수 있다.

누군가는 영세사업장을 보호하기 위해 5인 이상과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차등을 두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이야기할지 모른다. 그러나 해외 입법례를 보더라도 ‘상시근로자 수’를 근거로 법을 달리 적용하는 것은 사례를 찾기 어려우며, ‘5인’이라는 숫자에 대하여도 그 누구도 명확하게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법의 일부만 적용하는 것이 진정으로 영세사업장을 보호하는 것인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5인 미만 사업장이 영세하다는 것은 타당한 명제인가? 주어진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법 기술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여기에 의문을 던져야만 한다.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주장하며 해고를 통보한 00벤처스의 감사보고서 [출처: 필자 제공]

00벤처스 주식회사는 업력 50년이 넘는 중견기업인 00실업이 벤처투자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만든 자회사로, 00실업의 유상증자를 통해 120억의 자본금을 소유하고 있다. 사무실 역시 00실업의 계열사들과 같은 건물에 있고, 00실업의 상무가 대표를 겸임하고 있다. 이렇게 사업의 영세함과는 거리가 먼 회사도 상시 근로자 수라는 단일한 조건으로 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00벤처스를 별개의 법인으로 간주한다면 근로기준법의 온전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것이 흔히 볼 수 있는 근로기준법 제11조를 악용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때 비로소 해답이 보인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에 따르면 고용보험상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등록된 사업장에 사업소득자를 합산할 경우 5인 이상이 되는 사업체의 수는 모두 10만 3,502개에 달했다(2021년 기준).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분류되어 있으나 사업소득자를 합산했을 경우 300인이 넘는 사업체도 250개나 적발됐다. 직원을 노동자가 아닌 사업자로 만들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한 사업체가 10만 개가 넘고, 사업장을 쪼개는 방식으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한 사업체가 몇 개인지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이들을 보호가 필요한 ‘영세 사업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출처: 필자 제공]

민법상 고용관계와 달리, 노동관계에서 타인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사업주에게 노동법적 여러 책임을 묻는 이유는 계약의 거래대상이 단순한 상품이 아닌, ‘인격을 가진 인간’의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노무를 제공받아 이익을 누리는 자는 거기에 맞는 노동법상의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상시 근로자 수와 영세사업장 보호라는 패러다임에 갇혀서는 노동법의 목적을 살리기 어렵다. 근로기준법 제정 70주년, 이제는 숫자놀음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각주>
(1)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2) 근로기준법 제15조(이 법을 위반한 근로계약) ① 이 법에서 정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한정하여 무효로 한다. ② 제1항에 따라 무효로 된 부분은 이 법에서 정한 기준에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