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는 누가 살까

[유하네 농담農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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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친구들과 함께 노는 유하와 세하 [출처: 이꽃맘]

시골 :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 주로 도시보다 인구수가 적고 인공적인 개발이 덜 돼 자연을 접하기가 쉬운 곳을 이른다.

시골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봤습니다. 유하네가 도시에 살 때 지방으로 놀러 가면 ‘시골에는 누가 살지? 뭐 먹고 살지?’ 하는 질문을 많이 했었습니다. 특히 도시에서 나고 자란 유하 엄마는 이런 질문을 더 많이 던지곤 했습니다. 유하네가 도시를 떠나 시골에 온 지 햇수로 8년째. 이제 다시 이 질문을 던져 봅니다.

“10년 후를 생각하면 잠이 안 와”

언젠가 마을 어른이 “10년 후를 생각하면 잠도 안 와”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벌써 일흔이 다 됐는데 10년 후에는 누가 있겠어. 저 형님도 벌써 일흔이 훌쩍 넘었어”라며 한숨을 쉬십니다. 지금도 젊은이가 없는데 10년 후를 생각하면 더 걱정이라는 겁니다. 유하네가 사는 영산마을에서 유하네는 막내입니다. 유일한 40대입니다. 유하와 세하가 유일한 아이들입니다. 50대 중반을 달리고 계신 앞집 형님네가 그나마 말동무 상대입니다. 18가구가 사는 우리 동네에서 이 두 집을 빼고는 모두 예순을 넘기셨고 여든을 넘기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다수입니다.

마을길 제초작업이며, 쓰레기장 정리 등 마을 일이 생기면 유하 아빠가 나서야 합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무거운 걸 드는 등 힘쓰고 몸 쓰는 일은 몽땅 유하 아빠 담당입니다. 얼마 전 마을 입구 폐비닐 모으는 곳에 외지인들이 온갖 쓰레기를 몰래 버려 담을 치는 마을 공사가 있었습니다. 예순이 넘은 마을 반장님이 유하 아빠를 데리고 갔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모였지만 사다리에 올라 무거운 양철 지붕재를 옮기고 담을 치고 나사를 박는 일은 유하 아빠 독차지입니다. 땡볕에 시뻘게진 얼굴로 돌아온 유하 아빠는 “막내가 들어와야 하는데”하며 한숨을 쉽니다.

<강원일보>에 따르면 강원도 내 65세 고령인구 비중이 전국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출생률은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또 지난 한 해 동안 강원도 청소년 중 2600여 명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일자리도 부족하고 교육 여건도 좋지 않으니 젊은이들이 다 빠져나가고 노인들만 남는다는 것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10년 후, 20년 후 강원도에 요양원만 가득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아이들이 사는 시골

유하네는 이런 시골을 선택했습니다. 유하네가 시골에서 재미나게 열심히 살면 많은 젊은이가 시골에서 함께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유하는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닙니다. 전교생이 17명까지 줄었던 우리 학교는 한때 폐교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동네에 아이들이 없으니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새로 부임하고, 학교 측의 결심으로 가까운 시내에 스쿨버스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유하네 동네에서 20분만 나가면 아파트가 많은 시내가 나옵니다. 시내의 어린이들이 스쿨버스를 타고 자연과 함께 하는 학교, 적은 숫자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운다는 우리 학교로 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학년에 한 반씩, 한 반에 딱 10명만 받는 우리 학교는 지금 6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학교가 북적거리니 우리 마을에도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유하네 반 친구들이 시골로, 유하네로 놀러오기 시작했거든요. 도시에서만 사는 친구들에게 유하네 집은 별천지, 신나는 놀이터입니다. 학교를 마치고 우르르 몰려와서는 방아깨비를 잡는다며, 블루베리며 딸기를 따 먹겠다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이 없습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반가우셨는지 마을 어르신은 “사람 사는 것 같다”며 아이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구경합니다. 유하와 같은 반 친구네는 유하네 밭 한 귀퉁이를 빌려 주말 텃밭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쌈 채소며, 고추, 토마토를 심어놓고 주말마다 유하네에 옵니다.

노동자가 사는 시골

유하네 바로 앞집에는 50대 중반의 부부가 삽니다. 남편분은 우리 동네에서 언덕만 넘어가면 있는 횡성 어느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귀농 후 닭을 키워 달걀을 팔다 수차례 AI를 겪고 지쳐 그만두셨습니다. 아내분은 원주생명농업에서운영하는 반찬공장에 다닙니다. 마포에서 생활협동조합 활동을 열심히 하다 우리 동네로 온 뒤 마을을 살리고 농업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반찬공장에 힘을 보태고 계십니다. 쉬는 날이면 고추농사며 텃밭농사에 힘을 들이고 계시구요.

옆 동네에 사는 학교 선배네 부부는 작은 카페와 민박을 하며 시골놀이터를 운영합니다. 치악산 자락, 좋은 숲속에서 사는 선배부부는 민박손님을 상대로 자연 놀이터를 만들었습니다. 콩을 모아 오재미를 만들기도 하고, 옥수숫대와 잎으로 배를 만들어 계곡에 띄우기도 합니다. 나뭇가지를 모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작은 집을 지어보기도 하고, 버려진 나무를 깎아 숟가락을 만들기도 합니다. 주말이면 그 동네도 시끌벅적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유하 엄마는 요즘 특성화 고등학교 등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합니다. 학생들을 만나며 “나의 본캐는 농민인데 농민은 노동자일까”라고 질문합니다. 쭈뼛쭈뼛 대답하지 못하던 학생들은 2시간의 강의를 함께한 후 “농민도 노동자”라고 말합니다. 유하 엄마는 모든 노동은 가치가 있고, 모든 노동은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는 모두 노동자이기에 함께 살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태백 어느 산골에서 만난 한 고등학생은 “나도 함께 사는 노동자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예비노동자인 고등학생들이 공부해서 시골을 얼른 떠나야지, 하는 것이 아니라 시골에서 희망을 찾길 소망해 봅니다.

누구나 함께 사는 시골

유하네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치는 시골을 꿈꿉니다. 어느 시골에는 예술가들이 모여 작품 활동을 하고, 어느 시골에는 미디어 활동가들이 모여 마을 방송국을 만들고, 어느 시골에서는 젊은이들이 모여 도시의 경쟁을 떠나 작은 집을 짓고 소박한 삶을 살고, 어느 시골에는 작가들이 모여 작은 책방을 열었다고도 합니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유하네는 희망을 봅니다. 유하네도 우리 시골동네에 커피가 함께하는 작은 농가식당을 만들어 누구나 편안히 시골생활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유하네 대추밭에는 테라스가 예쁜 작은 농막 하나가 있습니다. 유하 할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셔서 유하네와 함께 살기 위해 지은 집입니다. 이곳에서 1년을 사신 유하 할아버지는 건강을 회복하셔서 더 좋은 집으로 옮겨 가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빈집입니다. 유하네는 이곳에서 함께 살 이웃을 찾고 있습니다. 농사에 관심이 있어 유하네와 함께 농사를 지어도 좋고, 글을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하는 예술가도 좋습니다.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시 쉬러 와도 좋습니다. 시골에서 살 수 있을지 미리 경험해보려는 젊은이도 대환영입니다! 유하네와 함께 시골에서 살지 않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