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 좌파 지식인 슬라보예 지젝 류블라냐대 교수는 이날 '미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강연하면서 좌파의 역할로 비전을 제시할 것을 역설했다. 지젝은 문화, 문명비판가로서 사회의 여러 현상에 대한 새롭고도 급진적인 해석을 던졌을 뿐 아니라 현실 정치에 대한 참여와 사회의 폭발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현장에서 참여자들과 대화하며 자신의 이론을 검증하며 발전시켜 나갔다. 대표적으로 2011년 뉴욕 월가 점령시위가 발생하자 지식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월가 점령 참여자들과 직접 대화하며 그 운동의 변화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했다.
또한 지젝은 한국에서도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연대의 뜻을 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2년 6월 방한했을 때 서울 대한문 앞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분향소를 찾아 “투쟁을 멈추지 마세요. 그대들이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라는 글을 방명록 남겼다. 2014년 12월 쌍용차 노동자들이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벌일 당시에는 지지 메시지를 보내 “당신들의 견결함과 끈질김은 우리 모두의 귀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젝은 정작 본인이 강의하고 세계적인 지성인으로 초대받은 경희대의 해고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눈과 입을 닫았다.
![]() |
▲ 경희대 소모임 ‘경희현재리포트’ 학생들이 지젝을 기다리며 경희대 시간 강사 부당 해고와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부당 노동 행위를 알리고 있다. |
지난해 12월 해고된 채효정 강사와 경희대 소모임 ‘경희현재리포트’ 학생들은 이날 지젝이 오는 시점에 맞춰 피켓을 들었다. 이들은 피켓에 경희대 시간 강사 부당 해고와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부당 노동 행위 내용을 담았다. 이들은 오후 6시부터 “Hello, Zizek? : What you must know(지젝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라는 피켓을 들고 지젝을 기다렸다. 강연회 관계자는 피켓시위 주변에서 이어폰을 낀 채 대기하고 있었다. 경희대 관계자는 채효정 강사에 “(시위는) 저 밑(강연장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진행했으면 좋겠다”며 “예의를 지켜달라”고 말했다. 지젝은 강연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피켓 시위가 진행 중인 정문으로 오지 않고 돌아가 강연장으로 들어갔다.
이날 채효정 씨는 “지젝은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젝이 서 있는 이 대학에서 얼마나 많은 연구자, 지식인,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해고당하고 차별당하고 지금도 억압당하고 있는지”라며 “밖으로는 연대와 공존을 함께 외치며 안으로는 비정규직 차별에 동조하고 침묵하는 지식인들이 지젝의 강연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지젝을 불러 여기서 쇼를 하게 하고, 신문에 광고를 하고, 그 다음에는 노동자의 목을 자르는 곳. 이 불온한 세계의 무대에서 지젝은 광대가 되고, 청소부가 된다”고 했다.
또한 채효정 씨는 “저명한 학자에게는 그토록 존경을 표하면서, 이 나라, 이 대학 현안에 대해 실천적 목소리를 끊임없이 발산하고 있는 사람들은 탄압한다. 어떤 사람은 환영받고, 어떤 사람은 축출된다”며 “이 대학에선 먼 외국에 사는 객원교수에겐 시민권을 주지만, 정작 여기서 가르치고 배우며 살아가고 살아내야 할 대학 강사는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라고 호소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는 작년 12월 24일 45명의 시간 강사를 해고(계약해지)했다. 해고된 강사 중 한 명인 채효정 씨는 6월 23일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했다.
이날 지젝 강연은 경희대학교와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가 주최했다. 경희대는 2013년 경희대 외국어대학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저명한 학자(Eminent Scholar:ES)’로 지젝을 임용했다.
![]() |
▲ 슬라보예 지젝은 7월 5일 오후 7시 경희대학교 크라운관에서 “문명전환과 아시아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