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에 상처가 난 채 병실에 누워 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 이00씨. 목 안까지 상처투성이라 겨우 죽만 입에 넣었던 그는 동료를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말문을 열었다.
“미안하다. 내가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쌍용차 77일 파업에 참여했던 이씨는 14일 새벽 2시30분경 자택2층 베란다에서 고무호스에 목을 매고 자살을 시도했다. 파업이 끝난 뒤 이어지는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괴로웠던 그는 동료,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입에서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점점 적어지는 말수….
동료가 “형이 무슨 죄가 있어요”라고 하자 이씨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강해져야 하는데”라고 반복했다. 그리곤 “목에 호스 감은 자국 많이 나냐”고 물으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무엇이 그는 ‘벼랑끝으로’ 내몰았는가.
그렇게 열심히 살았건만
“먹고 사는 게 뭔지. 회사에서 왜 잘렸는지 저는 이유도 몰라요. 남아있는 사람은 근태가 좋아? 그건 아니지… 노동자들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아는 형님들이 사업하자고 하는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지고. 그런 말 신경도 안 쓰이더라. 파업 뒤에 회사는 합의사항 다 어기고, 동료들은 구속되고. 동료들과 같이 투쟁하고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아버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먼저 찾는다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저는 매일 회사에 한 시간 먼저 나가서 공구 열고, 작업 준비하고, ‘오늘은 뭐할까’ 생각했죠. 그런데 내가 뭐 때문에 해고 대상자가 되어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어요. 정말 먹고 살기 위해서 77일간 열심히 투쟁했죠”
이씨는 해고되기 전 봉사활동을 꾸준히 한 사람으로 지역에서 유명했다. 금강, 평택저수지에서 쓰레기 줍는 작업, 마라톤대회 때 교통정리 활동 등 수십 가지 봉사활동을 했다. 특히 쌍용차 정문 앞에선 3년간 교통정리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건만’ 회사는 이씨를 해고 했다.
“내가 바닥에 쓰러져 있던 것을 아내와 아이들이 다 봤을 거예요. 제가 우울증인지, 불면증인지 몰랐어요. 베란다에 호스가 보여 목에 감았는데… 그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더라. 병원이었어요. 한 순간이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창피하다. 중학교 3학년, 1학년과 초등학생 아이가 있는데, 알아서 학교에 급식비 신청하고. 사춘기라 힘들었을 텐데… 미안하다”
보증금 5백만원, 월세 5십만원짜리 이씨의 월세 집에는 5명의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산다.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뒤 이씨의 아내가 일주일에 하루 쉬며 토요일까지 일하지만 고작 월급 120만원을 받는다. 5식구가 이 돈으로 살아가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이젠 50만원 월세조차 감당이 안 돼 이사를 가야할 형편이다. 이씨는 “이사 할 생각을 하니 깝깝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희망퇴직한 동료는 위로금을 못 받아서 PC방 예약했다가 중도금을 계산하지 못해 아무 것도 못하고 있어요. 저는, 지금 입원해 있지만 돈이 걸려 눈 뜨자마자 2인실에서 다인실로 바로 옮겼어요. 수많은 사람들은 구속되고… 이건 아니에요. 이렇게 쥐어짜면 썩은 게 터질 거예요. 왜 국민들을 계속 죽이고, 못사는 사람 벼랑끝으로 밀어 넙니까”
경찰수사로 아르바이트도 못해
생계문제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했던 이씨는 경찰 수사로 인해 안정적으로 알바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가까운 지인의 유치원에서 일을 도와주고 20만원씩 받았던 게 고작이다.
“경찰은 ‘집에서 대기하라’고 했어요. 언제까지 대기해야 합니까? 경찰이 욕하는 것도 참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뭘 잘못했기에... 아무리 강압수사라고 하지만 스트레스는 주지 말아야 할 것 아닙니까. 아르바이트도 제대로 못 했어요. 아르바이트 하다가 조사받으러 나오라고 할 텐데… 일하다 빠지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이씨는 경찰 수사로 많은 동료들이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료들이 관련해서 매일같이 전화를 한단다.
“경찰은 동료 한 명이 내 이름을 거론했다며 추궁했어요.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경찰은 성질내고, 욕하고, 비아냥 거렸죠. 무전기로 제가 말하는 거 다 들었다고 하고… 그러나 근거 자료는 하나도 없었어요. 마음 여린 동료들 꼬시고 윽박지르고…”
77일 파업 뒤 변한 나
이씨는 15일간 집을 나왔었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한 번도 욕을 한 적이 없었던 이씨가 어느 날 아이들에게 화를 내며 욕을 했다.
“아이들에게 한 번도 욕을 한 적이 없었는데... 한 번 말을 했는데 아이들이 안 듣고 방안을 돌아다니니까 저도 모르게 욕이 나오더라고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내 자신의 모습을 참지 못해서 집을 나와 버렸어요. 집에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아빠 다시는 욕하지 않을께’라며 약속했죠. 답답한 날의 연속이었죠”
파업이 끝난 뒤 이씨는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았다. 오토바이 소리와 냉장고 소리는 파업 당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려댔던 경찰 헬기와 회사측의 선무방송보다 사람의 신경을 훨씬 덜 자극했지만 그조차 이씨는 견디기 어려웠다.
“잠이 안 와 술 먹고 잘 때도 있었어요. 오토바이 소리만 들어도 환청이 들려 잠에서 깼어요.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하룻밤을 꼬박 새는 거죠. 낮에 꾸벅 꾸벅 졸 때가 있는데 그때 단잠을 자는 거죠. 혼자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많았죠. 집에 냉장고 소리가 거슬려서 꺼버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내가 냉장고를 밖에다 내놓기도 했었어요. 가는 귀 먹었다고 하나? 사람 얘기가 잘 안 들렸다. 얘기에 집중해서 귀를 기울이는 데도 웅얼웅얼 거리는 소리밖에 안 들리더라. 비오는 날 빗소리도 신경 쓰이고…”
무엇보다 마음이 다쳐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이씨의 속마음이 나왔다. 정리해고 선정기준조차 불확실해 납득할 수 없는 해고 통지, 생계문제, 강압적인 경찰 수사, 파업 뒤에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 그러나 이씨는 무엇보다 ‘마음이 다친 것’이 가장 괴로웠다고 했다.
“왜 같이 일했던 동료들과 이렇게 싸워야 하는지. 같은 노동자끼리 왜 새총을 겨눠야 하는지. 아무리 그 사람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지만 너무 비참했고 감당이 안 됐다. 같이 일하던 사람이 적이 된다는 게… 그래도 같이 살자고 열심히 싸웠다. 마음을 다치고 난 순간부터 모든 걸 혼자 생각하게 되더라”
77일간 노동자와 가족 6명이 스트레스로 인한 뇌졸중, 자살 등으로 목숨을 잃었고, 파업 뒤에 노동자 2명이 자살을 시도했다. 쌍용차 진압에 참가했던 전의경은 “세상이 역겹다”며 자살했다.
다른 이유의 죽음이지만 죽음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죽은 자와 그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본질적으로 세상을 향해 ‘더 이상 죽이지 마라’고 외치고 있지만 이 사회는 개인에게 세상에 적응해서 살 것을 강요하는 듯 보인다. ‘죽음’과 ‘자살’ 그 자체가 이를 보여준다. ‘자살’ 권하는 사회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과 책임이 사라졌다면, 끊임없이 되짚어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이 사회의 또 다른 몫이 아닐까. ‘역겨운 세상’이 자살을 강요하는 일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